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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꾸 Dec 29. 2020

팔각정에서, 집에 오는 길

 북악산의 팔각정에는 오토바이가 엄청 주차되어있었다. 얼마나 내 자전거가 비루해 보이던지, 나는 허벅지가 터지도록 페달을 밟아 팔각정을 올라왔는데. 이 사람들은 오토바이의 스로틀을 당기는 것만으로 손쉽게 북악산을 올랐다.


 하지만, 나는 꼭 자전거를 타야 하는 걸. 미세먼지가 끼어 있는 서울의 야경을 바라봤다. 내 눈이 침침한 건지, 서울이 침침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땀을 뻘뻘 흘리고 나서 북악산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좋았다. 여기저기 거닐며 동생과 사진을 우애 샷을 남기고, 우리는 내려가기로 했다. 땀이 금방 식어 벌써부터 오한이 찾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북악산을 내려가는 길은 세상 시원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만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던 오르막길에 대한 보상인 것 같았다. 와, 이 짜릿함에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북악산을 오르는구나 싶다. 길고 긴 내리막을 즐겼다.


 우리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서촌에 들렸다. 딱히 밥집을 찾지 못해 거리를 서성이다. 시장에 가면 뭐라도 있겠지 싶어 통인시장에 들어섰다. 신기하게 어디서 엽전을 받아와 이것 저것을 구매할 수 있는 시장이다. 하지만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시장의 상점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러다 시장 어귀의 한 작은 골목에서, 흰색 간판에 쓰여진 국밥이라는 두 글자를 볼 수 있었다. 주저할 일이 뭐 있으랴, 우리는 바로 국밥집으로 들어섰다. 왠걸, 나름 소문난 맛집인지, 국밥집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이 차례대로 밥집에 들어섰다. 


 밥을 먹고, 커다란 도로를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를 찾고 있었는데, 차도의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 두 명의 자전거 라이더들이 보였다. '아 자전거는 차니까, 차도의 좌회전 차선을 이용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우리도 자전거 라이더들의 뒤에 자리했다. 신호가 바뀌는 동안, 여러 대의 차가 옆 차선과 뒤에 붙었다. 주위에 차가 생기니 덜컥 겁이 났다.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신호가 바뀌었다. 앞의 라이더들은 신호가 바뀌는 동시에 앞으로 튀어나갔다. 무슨 미사일인 줄 알았다.


 우리도 신호가 바뀌자마자 쏜살같이 튀어나갔지만, 그건 생존의 몸부림이었다. 자동차보다 빨리 튀어나가서, 맨 오른쪽 차선에 붙어, 인도와 함께 달리기 위한 페달질이었다. 안전하게 차도의 중심을 벗어난 우리는 다시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조금 앞에는 아까 그 두 명의 자전거 라이더들이 갓 신호가 바뀐 탓에 차가 없는 도로를 휘젓고 있었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자라니' 그 자체였다. 순식간에 두 차선을 넘어가거나 앞에 지나가는 버스를 앞질렀다. 하마터면 저 두 라이더들을 따라가다 황천길을 건널 뻔했으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꽤나 지쳐있었지만,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다. 남산 앞을 지나고, 전쟁 기념관을 지나서 한강에 진입했다. 집에 돌아가겠다는 의지 하나로 정신없이 페달을 밟았다. 그 와중에 보이는 한강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뚝섬 유원지 근처에 다다라서 우리는 휴식 시간을 가졌다. 한 여름이라 그런지, 뚝섬 유원지의 잔디 밭은 돗자리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돗자리마다 치킨과 맥주는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이온음료를 하나씩 산 뒤 파라솔이 펴져있는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귀엽다..."

"나한테 관심 있는 것 같은데?"


 재수 없는 동생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서로를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은 뒤, 우리는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30분 정도 동생의 뒷바퀴를 바라보며 페달을 밟으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어유, 온몸이 아프다. 특히 승모근과 가랑이 사이가 찢어지는 것만 같다. 이거 참, 국토종주를 잘 끝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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