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냄새는 향기가 되고, 향기에는 추억이 담긴다.

아빠 냄새

by 혁꾸

출근을 앞둔 일요일 저녁이었다. 시간이 자정에 다다랐을 때쯤, 나는 차의 엑셀을 지그시 밀어 누르며, 운전석의 창문을 연채 밤공기를 가로질렀다. 밖에서는 푸릇한 냄새가 났다. 새싹과 흙이 뒤엉켜있는 잔디 냄새가 났다. 언제부터 봄이었던 걸까?


허겁지겁 생계를 꾸리랴 바쁜 일상 속에서도, 분명 천천히 봄이 다가오는 냄새가 났었는데. 지금은 마스크 속에 갇힌 삶을 보내다 보니 언제부터 봄이 었는지 느낄 수가 없었나 보다. 그래도 오랜만에 봄내음은 정말 반갑게 나의 코를 간지러 주었다.


얼마 전에는 그런 냄새를 맡았다. 오후 6시 일이 끝났을 때 몸과 마음은 지쳐있었지만, 회식이 이어졌다. 집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게 또 내 마음대로 할 수만은 없다 보니 정기적인 참석은 불가피하다. 그래도 막상 직장 상사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기울이다 보면, 나름대로 재미있기도 하고 정도 생기다 보니, 싫어도 막 싫지만은 않다. 그리고 요즘에는 위협적인 바이러스 때문에 회식은 항상 밤 10시를 넘어가지 못했다.


참, 코로나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나 망가져 버렸는데. 10시에 회식 자리가 끝나고 나올 때는 '코로나 덕분에 지금이라도 집에 가는구나'싶은 생각이 들었다. 진짜 나란 사람이란, 망가진 세상을 살며 이런 생각을 하다니, 이렇게 이기적이구나 싶기도 하다. 택시비를 아끼겠다며 대중교통을 타고 집에 도착한 나는,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져 하루를 마감했다.


다음날, 거짓말 같은 하루가 다시 시작됐다. 옷에서는 아빠 냄새가 났다. 어릴 적 가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던 아버지에게서 났던 냄새였다. 술과 기름, 먼지가 섞여있는 그런 냄새다. 지금 그때 아버지의 냄새가 나에게 나는 걸 보면, 아마 그건 아빠 냄새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냄새는 일을 마치고 피곤에 절어 있었지만, 누군가의 부름을 선뜻 거절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옷에 묻은 사회의 찌든 내였다.


사회의 찌든 내를 아빠 냄새 싫다고 저리 가라며 소리치던 나에게 아버지는 얼마큼 서운하셨을까. 아니면 그보다 '어디 나중에 너한테는 이런 냄새 안 나나 보자'라고 생각하셨을까? ㅋㅋㅋ


그런데 왠지 아버지한테는 가끔 사회의 찌든 내가 계속 풍겼으면 좋겠다. 그 냄새를 맡을 때면 어릴 적 아빠 냄새를 풍기며 집에 들어와 웃으며 나를 끌어안아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릴 때는 싫었지만, 지금은 구수하고 정감 하며, 포근함이 느껴지는 그런 향기가 되었다. 까칠한 턱수염을 내 볼에 비비적대던 그런 기억들이 그 향기에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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