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 깨.

by 혁꾸

가까운 사람과 특별한 일을 함께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게다가, 뭘 해도 죽이 척척 맞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요즘 여행 계획을 짜는 데에 푹 빠져있는 내가 그렇다.


나는 계획 없는 여행보다는 어느 정도 계획적인 여행을 지향한다. 물론 계획 없이 떠나,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골라하는 여행을 좋아했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의 여행은 내 인생에 있어서 더없이 도전적이었고, 인생의 어느 짧은 단편에 있어서 어떤 교훈을 얻기 좋은 여행이었다. 가령, 계획 없이 혼자 떠났던 여행에서 나는 불확실한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법을 배웠었고, 짧았지만 작고 소중한 인연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었다. 그리고 함께하는 여행이 행복하다는 것도. 혼자 하는 여행도 물론 행복하고 의미 있었지만, 함께라는 행복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때 당시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하루 온종일 닫혀 있었던 입은, 뭔가 나의 한쪽 구석이 외로웠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너무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에는 아쉬운 후회의 조각들도 속속히 박혀있었다. 어느 날, 이미 다녀왔던 여행지의 다른 후기들을 접했는데, 나는 있는지도 몰랐던 아름다운 명소들이 있다던지. 그 근처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짜릿한 액티비티가 있기도 했다는 정보를 접하고 나면, 어딘가 불편한 아쉬움들이 내게로 밀려들었으니까. 심지어 해외여행 같은 경우는 한번 다녀온 장소를 다시 또 가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필자 같은 경우는 같은 장소를 또 갈 바에는, 가보지 못한 새로운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 가벼워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국내 여행도 비슷하다. 국내 팔도만 봐도 지도에 채워진 가고 싶은 명소들이 무수히 많지만, 섣불리 발을 뗄 수 없는 건,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면 발목에 채워진 사회라는 족쇄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번 떠나는 여행인데, 함께하고, 특별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다. 그중에서도 잘 맞는 사람과 함께하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를 말하고 싶다.


최근에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는데, 의견의 물림 없이 일정이 착착착 일정표를 짜게 됐다. 뭐, 함께 떠나는 첫 여행이다 보니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어느 정도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기대 이상으로 계획을 짜는데 사소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아마 그녀와 나의 여행 스타일이 비슷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나는 여행을 가서 카페에 앉아 느릿한 시간을 즐기는 것보다 움직이며 느낄 수 있는 강렬하고도 특별한 자극을 좋아하고, 해가 지면 호텔 침대에 누워 포근한 저녁을 보내는 것보다 맥주잔을 부딪히며 어지러운 저녁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다음날 정상적인 하루를 보낸다는 가정하에서 말이다.)


이런 건 정말 중요한 부분인데, 이런 여행 캐릭터가 겹쳐지지 않으면, 별 세 개가 만점인 퀘스트에 별 두 개만 받게 되는 것 같은 아쉬운 여행이 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독단적으로 행동할 수도 없는 부분이고, 행복해야 할 여행에서 뭔가 아쉬운 티를 낼 수도 없었던 머릿속이 간질간질한 여행 말이다. 그렇지만, 나와 원하는 것이 정말 똑같은 사람을 만나기란 여간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잘 안다. 정말 5천만 인구 중에 똑같은 사람이 정말 하나라도 있을까?


그래서 뭔가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정말 정말 천운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의 공감을 얻으려고 노력했던 것 이외에 "어? 그거 좋아해?", "진짜? 나도 해보고 싶은데" 같은 비슷한 말들을 진심을 담아 해 본 적이 손에 꼽는 듯싶으니까. 그리고 함께 하자는 물음에 대한 상대방에 반응에 따라 여행을 준비하는 행복함과 기대치가 넘실대기도 한다. 나는 경험상 무언가를 같이 해보자고 권하는 물음에 "그래, 나도 좋아"와 같은 무감각함이 느껴지는 답변보다는, "헐 좋아, 나도 해보고 싶었어"와 같은 '나도 해보고 싶었는데, 너도 그래?'라는 의미가 담긴 답변을 들었을 땐, 상대방을 향한 호감도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치기 시작한다.


함께 준비했기 때문에 기대치가 높은 만큼, 돌아오는 즐거움과 행복감도 높다. 그리고 그 시간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언제까지나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함께하는 여행의 묘미다. 물론 여행을 떠나고 난 뒤 마주하는 문제가 분명히 있겠지만, 경험상 그건 배려함에 좌우되는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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