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운전을 할 때 노래를 틀어 놓던 나는, 어느샌가 차를 울려대는 노랫소리가 소음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루했다. 가요, 랩, 팝 여러 가지 장르의 음악을 번갈아 가면서 듣는데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인트로와 리듬이 지긋지긋했다.
최근에 귀가를 위해 택시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술에 취한 나는 여느 때와 같이 택시 뒷좌석에 앉아 몸을 비스듬하게 눕힌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반쯤 감았다. 술에 취해 택시를 탈 때마다 뒤척이며 얻어낸 최적의 자세였다.
택시 라디오에서는 어느 토크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의 이름 모를 사회자들이 청취자들의 사연을 하나씩 읽어주고 있었다. 평소에 듣던 노랫소리보다 훨씬 나았다. 듣기 좋은 목소리와 사소하지만 피식할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귓가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정신이 들게 되었을 때는, 택시 기사님이 다 왔다며 나를 깨웠을 때였다.
오늘 운전대를 잡고 평소와 다름없이 노래를 틀려고 할 때였다. 문득 얼마 전 택시에서 들었던 라디오 방송이 떠올랐다. 나는 조수석에 휴대폰을 던져 버리고 라디오를 만지작거렸다. 천천히 액셀을 밟으며 핸들에 달려있는 리모컨으로 라디오의 주파수를 옮겼다. 주파수를 한번 건드릴 때마다 주파수 번호가 촤르르륵 바뀌는 게 나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했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몇 개의 채널을 넘어가니 얼마 전 택시에서 들었던 라디오와 비슷한 토크쇼가 흘러나왔다.
토크쇼에서는 어느 70대를 달리는 여성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역시나 사연을 읽어주는 30대로 추정되는 여성 사회자의 부드러운 목소리도 듣기 좋았다.
"이번 여름은 정말 무덥네요. 몇십 년을 살아온 제 인생에서 가장 더운 여름입니다. 이런 무더위는 처음 맞이하는 것 같네요. 70년을 가까이 살아왔는데도 처음 맞이하는 일이 있다니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짧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어린 시절 쓴 글이 상을 타게 됐었고, 백일장에 나가게 됐던 유년시절. 늦깎이 다시 글을 쓰게 되고, 강연을 하게 되었던 그녀의 인생 얘기에 푹 빠져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일들을 겪으며 살다 보니까, 어느새 사소한 일들은 잊어버렸더군요. 이런 무더위도 처음 맞이하는 일이지만, 이 무더위를 친구와 함께하는 것도 처음이고, 원래 같으면 걸어가는 거리를 더위에 지쳐 버스를 기다리는 일도 처음 맞이하는 일이더라고요. 저에겐 하루하루 생기는 일이 처음 맞이하는 일이었던 거죠. 이 소중한 것들을 70이 다 되어서야 깨닫게 되다니 제가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내일은 어떤 일이 나에게 생길까'라는 기대감에 살고 있어요"
라며 그녀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러고 나서는 사회자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저는 13년을 [로빈슨 크루소]라는 책 하나만으로 독후감을 썼었는데요"
이 말에 나는 한껏 웃음을 터트렸다. 13년 동안은 아니었지만 학창 시절 책은 읽기 싫고 독후감은 써야 했던 경험들에 대한 공감이었다. 백일장을 나가거나 방학숙제로 독후감을 써야 할 때면, 나는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들의 기억을 떠올리며 독후감의 페이지수와 글자 수를 채워나갔다. '선생님은 어차피 읽지도 않으실 거면서'라는 생각에 마구잡이로 썼던 독후감을 제출하고, 다시 그 공책을 받아 볼 때면, 독후감의 마침표가 찍어진 페이지 밑에 빨간 글씨로 내 독후감의 내용을 귀여워하는 선생님의 한줄평이 쓰여있곤 했다. 그 한줄평을 봤을 때, 행여나 읽지도 않고 쓴 것이 들키진 않았을까 노심초사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참, 귀여운 상상력을 가진 시절이 있었었다.
아마 앞으로도 운전을 할 때면, 항상 라디오의 잔잔한 목소리가 귓가를 젖어들게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