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는 이야기

by 혁꾸

그거 알아?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사람이 어떻다더라.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평소에는 그에 대해 별 생각이 없다가도 어느샌가 그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한껏 빠져있다. 물론 어느 정도 입소문을 탄 이야기는 한껏 부풀려진 풍선과 같을 수도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과장과 사실에 대한 여부를 감안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들리는 이야기들 중에는 미담, 험담, 성공기, 실패기, 배신, 손절, 우정과 사랑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나의 짧은 인생기에 있어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내가 없는 어딘가에서 다른 사람이 말하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이다.

나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는 것을 전해 듣는 것이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이유는, 좀처럼 자주 들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관심 있어하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하며, 나에 대한 어느 집단의 총평을 어느 정도 알게 되기 때문인 듯하다.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로 나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며 갖가지 총평을 받았었는데, 그 시작은 사춘기 때였다. 그리고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 나에 대한 세상의 이야기는 끊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는 되게 귀엽게도 순수하며 간단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때 당시 키가 140에도 한참을 못 미치던 쪼꼬미들은 학년당 4반까지 밖에 없는 작은 학교 구석구석을 짧은 다리로 뛰어다니며 서로의 이야기들을 전했다. 옆반의 성진이가 달리기가 제일 빠르다느니, 1반에 형조가 영경이를 좋아한다느니, 학교 안에는 작은 인생을 공유하는 풋내기들의 이야기가 난무했다. 그때 당시 학교 내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최고의 이야기는 "혁구도 달리기 빨라"라는 친구의 이야기였다. 그 시절에는 달리기가 빠르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내 달리기가 왜 빠른지에 대한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친구들에게 칭찬을 받는 게 마냥 좋았었다. 이성에게 인기가 많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시절 이성에게 인기가 많다는 건 놀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었기에,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그렇게 썩 좋지 많은 않았다. (틈새 자랑)


그리고 언젠가 전 여자 친구가 했던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여자 친구가 있었다는 틈새 자랑) 나의 군인 시절을 기다려주던 그녀는 내 군 복무 기간이 절반이 넘어갈 무렵, 갑작스레 면회를 오겠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이건 이별 면회가 분명하다'라는 생각이 든 나는, 그녀가 면회를 오기 일주일 전부터 이별을 준비했다. 참,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빨랐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은, 내가 환승 이별을 당했다는 것이었었는데, 딱히 배신감이 든다거나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친구에게 그녀가 말했던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왠지 모를 쾌감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혁꾸는 이런 것까지 다 해줬는데, 지금 남자 친구는 이해 못하더라고. 근데 전역하면 연락한다더니 왜 안 한데?"

녀석, 벤츠를 놓친 거지 뭐.


그리고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난무한다. 갓 신입사원 시절 시시때때로 변하는 나에 대한 총평에 이리저리 휘둘렸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해탈의 경지에 이른 건지는 모르겠으나 나에 대한 어떤 이야기가 오가든 마냥 좋거나 우울해지지 않는다. 안 그래도 잔뜩 쌓여있는 업무량에 '그래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라는 마인드를 가진채 겉으로는 미소와 친절함을 잃지 않으며 살고 있으며, 업무가 끝나고 가까운 동료들과 누군가에 대한 총평을 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ㅋㅋㅋ.


예전에는, 내 이야기가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릴 때면 괜히 맘 졸이고, 아쉬운 말들에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하고, 날카로운 말들에 분통이 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보통 그런 이야기들은 과장이 섞여있고, 요점과는 다르게 와전이 되기 마련이다. 그걸 알게 되고 나서는 나에 대한 들리는 이야기에 딱히 감정을 쏟아내지 않는다. 그저 좋은 이야기면 감사하고, 감정을 약간 건드리는 이야기에는 "아 그런 이야기를 했어?" 하며 성공에 대한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들리는 이야기들은 나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사람은 풍문으로 판단하기엔 너무나도 어려운 동물이고, 풍문에는 오해가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가진 안경의 색과 고정적인 시선을 전부 버리고서 직접 눈을 마주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 듯싶다.


나도, 이 세상 모든 사람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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