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두운 날이다.
대낮 내리쬐는 햇볕에, 세상은 이렇게나 밝은데 마치 눈을 감고 길을 걷는 듯 눈앞은 어둡기만 하다. 오늘도 어제와 똑같이 머릿속은 텅 비어있고 똑같은 걷는 모습이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출근길 가끔 지지직거리는 라디오에서 들리는 뉴스 속보에는 사회의 온갖 악행들이 가득하다. 아니, 당연한 것일 수도. 세상에 착한 사람은 많이 없고, 사람들의 관심은 누군가가 저지르는 자극적인 악행들을 향해있다. 정치권의 중학생 비슷한 다툼들이 난무하는 얘기, 분에 못 이겨 옆 사람을 무참히 살해한 범죄자의 이야기를 무심하게 들었다. 뒤이어 대출 규제인지 뭔 지하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어쨌거나 내가 앞으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허덕이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앞으로 허덕이게 될 거라... 사실 그렇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지금 당장 내게 닥칠 일도 아닐뿐더러 정책이라는 게 한두 번 바뀌는 게 아니니까.
자기 계발서를 보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미래를 지향하라는 등 찬란한 인생을 걷게 될 것이라는 것처럼 말하지만, 웃기는 소리다. 막상 사는 인생에는 어두운 날이 훨씬 촘촘하게 끼어 있으니까. 어두운 날들을 참아내며 열심히 하면 분명 볕 드는 날이 오긴 한다. 그런데 길었던 어두운 날에 비해서 참 짧게도 내리쬔다. 일 년을 참으면 세 달은 내리쬐려나. 그러다가 점점 다시 드리우는 그늘에 까딱하면 갈 곳을 잃은 미아가 되어 어두운 날들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 부자가 되겠다는 방대한 목적은 있으나, 그곳으로 갈 계획은 없다.
늦은 가을장마에 장대비가 쏟아진다. 밤을 더욱 아득하게 만드는 먹구름과 바닥을 내치리는 굵은 빗방울, 우울에 젖기 딱 좋은 날씨다. 잔잔한 영화를 한 편 틀고 가슴 아픈 이야기에 눈물을 잔뜩 쏟아내고 나면 기분이 좀 낫다. 우울함은 눈물에서 나오는 게 분명하다. 인생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로 눈물샘에 우울을 잔뜩 머금고 있으니 내가 우울해질 수밖에. 그리고 이왕 눈물을 짜낼 거면 차라리 영화를 보고 우는 게 낫다. 침대에 옆으로 누운 채 눈물이라도 흘리게 되면 비참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 게 분명하니까.
번민과 번뇌에 무참히 살해당하기를 반복하는 삶에, 목표와 계획마저 없다면, 그저 발버둥 치는 수밖에. 산에서 바다로 흐르는 물과 같다는 인생 속에서 발버둥이라도 쳐대야, 어느 모퉁이에 박힌 바위틈에 끼어 썩어가진 않을 테니까.
그냥 지금은 깜빡거리는 휴대폰 배터리와, 망가진 충전기에 미간을 찌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