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유행하고 있는 힙합 경연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다. 많은 래퍼들의 무대를 볼 수 있는 그런 TV 프로그램 말이다. 그중 한 참가자의 무대를 보다가, 뭔가 낯익은 가사가 귀에 익었다.
"언젠간 네가 잘될 줄 알았다니까? 뻥치지 마" 공교롭게도 힙합을 들을 때면, 특히나 경연 프로그램을 볼 때면, 심심치 않게 이와 비슷한 뉘앙스의 가사를 들을 수 있었다.
"언젠간 네가 잘될 줄 알았다니까?"
묘한 말이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잘되길 바랐던 사람의 진심일 수도 있고, 상대방과 가까워지기 위한 허물을 뒤집어쓴 빈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이런 뉘앙스의 말들은 어떤 목적을 성취했을 때, 혹은 부자가 되었을 때 내가 남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의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약간 민망하지만 상대방의 환심을 사기에도 딱 좋은 말이다.
스무 살, 내가 대학에 합격했었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과분한 축하의 메시지를 받았었다. 그중에도 분명 "분명 네가 잘될 줄 알았다니까"라는 말도 포함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 비슷한 말들로 축하 메시지를 건넸지만, 사람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그 느낌은 유대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가까운가의 차이였다.
보통 유대관계가 가깝게 얽혀 있는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의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어떤 말을 해도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령 "네가 뭔데 그런 대학을 가!?"와 같은 인격 비하의 말들도, 상대방의 장난 섞인 축하의 메시지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장난으로 맞받아치며 웃을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의 관계로 이루어진 사람들에게 그런 인격 비하의 말을 듣게 된다면 기분이 매우 상할 것이다. 아마 이런 관계에서 "분명 네가 잘될 줄 알았다니까"라는 말을 듣는다면, "고마워"라고 말은 하겠다만, 속으로는 '네가 과연 그랬을까?'라는 의구심을 품게 될 것이 분명하다.
사실 이런 생각을 일일이 하게 되면 사람 보는 눈만 복잡해질 수 있다. 나에게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그런 아부성 빈말들에 대해 속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생의 실전에 있어서 아주 유용하다. 누군가 자신에게 웃으면서 살갑게 건네는 인사 한마디를,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다. 그에 대한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다. 인생은 혈연 학연 흡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회에서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꼭 필요한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 건네는 아부성 빈말에 동요하거나, 가증스러운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런 아부성 빈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관계 발전의 선택권은 내 손에 쥐어져 있다.
"언젠가 네가 잘될 줄 알았다니까!"
"아,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