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혹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사람들은 대게 누군가에게 호감을 얻고 싶어 한다. 그건 아마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것은 나의 자존감과 가치를 올려주기 때문이다. 그로써 자신은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그렇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호감을 산다는 것은 반대로, 상대방과의 관계의 거리를 수월하게 좁힐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면, 그가 특별히 엇나가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그가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대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며, 그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 꽤나 관대 해지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정반대로, 사람들은 어떤 누구에게도 비호감을 사고 싶어 하지 않는다. 회사 혹은 학교와 같은 일정한 바운더리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넓지 않은 사회관계를 가져야 하는 사람들은 웃는 가면을 쓰는 날들이 잦고, 입술이 부르트도록 침을 발라놓는 시간들이 많다. 직장 상사나, 소위 말하는 윗사람들은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지만 웃는 얼굴과 살가운 빈말들을 생각 이상으로 좋아들 하시기 때문이다. 깔끔한 웃음과 아부성 빈말은 필수, 상황에 따른 센스 있는 행동이 기본이 되는 세상이다.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 맞닥뜨렸을 때 적응하려고 하지, 소외되려고 하지는 않는다. 외로움은 삶의 가장 무서운 재앙이기 때문이다.
당장 본인의 주변만 돌아보더라도 외로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내가 500명을 안다면 그중 한 명이나 있을까.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집단에서 겉돌거나 소외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마음이 아프다. 뿐만 아니라 그런 모습을 제삼자로서 바라보게 될 때 또한 마음이 쓰리다.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에게 비호감을 얻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이전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평생을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처지에 처해있다. 하지만 인생은 짧고, 지나치는 사람은 많다. 약간의 이상을 포함에서 말한다면, 보기 싫은 사람은 안 보면 그만, 볼 수밖에 없다면 사람은 피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우리 삶에는 보기 싫은 사람도 볼 수밖에, 피하고 싶은 사람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되는 좁디좁은 세상에 살고 있다. 누구든 언제까지나 달콤한 호감의 맛이나, 떫디 떫은 비호감의 맛만 보고 살 수는 없다.
호감을 샀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호감이 있다는 것은 곧 누군가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치가 있다는 말이다. 당연히 호감이 높을수록 기대치가 높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낯선 누군가가 자신에게 호감을 표한다면, 이미 나에게 거는 기대치가 높다는 말이다. 나에게 거는 기대치의 종류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회사에서는 업무 효율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수 있고, 낯선 사회에서는 "이 사람에게 빨대를 꼽으면 얼마나 빨아먹을 수 있을까?"라는 악의적인 기대치가 있을 수 있다. 때문에 높은 호감도를 사게 될 때는, 어느 정도 긴장감과 경계심을 필수로 가져야 한다. 마음대로 타인의 호감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누군가 나에게 건네는 호감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인상, 학력, 경제적 능력, 외모 등 여러 가지, 자신이 손댈 수 없는 타인이 바라보는 기준들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비호감이라는 것은 그만큼 기대치가 없다는 것이다. 타인이 나에게 거는 기대가 바닥이기 때문에 나는 이제 무엇인가를 보여줄 일만 남았을까? 아쉽게도 그것 또한 아니다. 비호감은 손목과 발목에 차는 모래주머니와 같다. 비호감의 정도가 클수록 그 모래주머니는 무겁다. 그래서 비호감은 쌓일수록 더 무거워지고, 호감으로 향하기도 더 버거워진다. 또 비호감이라는 것은 일종의 낙인이다. 나에게 비호감을 가진 사람들은, 아마 내가 별 뜻 없는 행동을 하더라도 그 행동에 비관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마 내가 그냥 걷기만 해도, 왜 이렇게 건들거리며 걷냐는 말이 들릴게 분명하다.
호감과 비호감은 영원하지 못하는 개인이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타인이 나에게 보내는 호감에 대한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의 호감은 점점 줄어든다. 너무 높은 타인의 잣대를 강매당했기 때문에, 이제 점점 내려갈 일만 남은 것이다. 그렇다고 비호감이 반대로 올라갈 일만 남은 것은 아니다. 비호감을 호감으로 되돌리려 할 때, 잘못했다가는 비호감의 무게만 더 무거워질 것이다. 비호감을 떨쳐 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묵묵히 시간을 지나치는 것이다. 호감과 비호감을 비교했을 때 사람들의 관심은 호감으로 쏠린다. 기대치가 높은 누군가를 통해 작은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 때문이다. 비호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할 때, 모래주머니의 모래는 점점 가벼워진다. 그리고 충분히 시간이 흘렀을 때는 비로소, 타인의 나에 대한 비호감은 있었는 듯 없었는 듯 무뎌져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웃기게도, 호감과 비호감이 지속적이지 않다면,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또, 비호감에 대한 경멸보다는, 호감에 대한 기대치와 실망감에 더욱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건강한 정신생활을 위해서는 호감과 비호감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당연히 누군가에게 호감을 사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호감과 기대치는 비례하기 때문에, 나에게 주는 호감을 샀을 때 느끼는 기쁨만큼 그 뒤에 받게 되는 나에게 주는 실망감에 대한 아픔도 크기 때문이다. 나의 능력보다 높은 호감도를 사게 된다면, 삼키지 말고 입에 물고 있어야 한다. 어차피 곧 뱉어내야 할 호감도인데, 위장에서 끌어내는 것보다 입에 물고 있다가 "퉤!"하고 뱉어내는 것이 나으니까. 비호감을 샀을 때는 결국,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괜히 뒤집어 보겠다고 무리수를 두며 무리하는 것보다, 타인이 보내는 약간의 경멸의 시간을 감내하다, 어느새 나는 호감도 비호감도 아니었던, 무의 관계로 돌아오게 된다.
내가 호감이든 비호감이 든 간에, 우리는 그냥 묵묵히 내 앞의 길만 걸어가면 된다. 나를 평가하는 타인의 잣대는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는 갈대와 같기 때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