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혁꾸 Dec 25. 2021

두 눈을 마주치면 느껴지는 것들

  한창 신나게 이야기를 풀고 있는 사람의 눈빛으로부터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무용담을 들려줄 때면, 그의 자랑스러웠던 행동들에 대한 자부심이. 자신이 들었던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새로움과 부러움 혹은 때애 따라 시기가 느껴지기도 하는 등, 이야기에 따라서 슬픔, 분노, 기대, 환희, 배신과 같은 갖가지 감정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친한 사람과 할 일 없이 자주 보는 것도,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대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의 말을 들으며 두 눈을 마주한 채로 그의 눈빛을 읽다 보면 느껴지는 그 만의 깊은 감정의 진액을 맛볼 수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인간관계가 대폭 줄어들었다. 학교에서는 복도만 나와도 다른 친구들이 있었는데, 사회에는 더 이상 학교의 복도가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는 모르는 사람들만이 걸어 다니는 대로변 한가운데에 서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한 명 마주칠 때, 괜히 반가워지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억 속에는 분명 별로 친하지 않았던 사람도, 불특정 한 어느 장소에서 갑작스레 마주치게 되었을 때는, 꽤나 반갑게 서로를 맞이한다. 하지만 그런 반가움의 표시들은 자신의 진실된 감정을 숨기려는 방어 기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찰나의 순간만으로 그의 눈빛을 전부 읽어낼 수는 없지만, 꽤 높은 텐션의 말투와 웃고 있는 눈꼬리를 보면, 그가 과거의 기억과 편견을 생각할 새도 없이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반가워하고 있구나'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면 그걸 따라 나도 기분이 꽤나 좋았다. 보통 그런 일들이 일어날 때면, 그에 대한 그저 그랬던 나의 평가들이 '그래도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라고 인식되어버리기도 했다. 아마 상대방에 대한 기억과 편견은 짧은 만남 이후 뒤늦게 찾아오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나에 대한 감정을 판단하는 것은 더 이상 나의 몫이 아니니까.


 올해 들어서 옛 기억을 같이 했던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가 꽤나 많았다. 직장을 다니며 여기저기 쏘다니다 보니, 졸업 후 뿔뿔이 흩어졌던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던 것이 계기였다. 거리를 걷다 어느 상가 옆에 세워진 홍보용 입간판 속에서, 무심코 들어간 식당의 종업원 혹은 사장님으로, 이번에 맡게 된 거래처 부서의 직원으로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술에 취해 거리를 거닐다 발을 헛디뎌 길바닥에 쓰러져 실실 웃고 있을 때 들렸던 익숙한 목소리였다. 


"... 혁구야 뭐해..?" 


 그 만남들 이후로 그들 중 몇 명과 만남을 이어나갔다. 요즘은 MBTI로 세상의 성격이 분류되어 있지만, 분명 개인마다의 그 깊고 세밀한 성격의 한 부분들까지 분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여태껏 단 한 명도 성격이 같은 사람은 만나본적이 없다. 분명 유형에 따른 그 성향은 비슷할 테지만.


 처음 만났던 친구는, 반짝거리는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오랜만인 나와의 만남이 신선하게 다가왔으리라 지레짐작을 해본다. 그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는 나와 면식이 없던 그간의 일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졸업 후에는 군대도 다녀오고 이것저것 일만 하느라 계속 가깝게 지냈던 친구가 없었다는 그는, 이런 반가운 만남이 즐거운 듯했다. 빈번한 만남으로 시들어가는 감정 속 시시콜콜해질 만한 이야기들도, 새로운 사람과 하는 같은 이야기는 봄에 피는 벚꽃처럼 달콤히 만개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그의 아쉽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할 때만은, 눈빛이 사그라들었다. 직장 상사에 관한 이야기, 여자 친구와의 다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 미간의 주름과, 흔들리는 동공들을 통해서 그의 안타까운 감정들을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검은 눈동자 속을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채운 친구들도 있다. 취업에 한창 고민할 때이기도 하지만, 실로 퀭한 눈빛을 보면 그가 느끼는 불안함과, 자존감을 짓누르는 사회의 문턱이 느껴진다. 그럴 때면 그의 눈동자가 더욱더 까맣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잘될 거야'라는 믿음으로 그 순간의 피폐한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다. 눈동자를 검게 채운채로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볼 때면,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웃는다는 건, 바등거린다는 것이니까. 


 사람들은 대화를 할 때 눈빛을 마주하면 부담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대화를 할 때 주로 미간과 코 사이의 부분을 보며 말한다. 눈을 맞추는 것과 같은 시선처리지만, 부담감은 덜하다고 한다. 그렇게 대화를 하며 그들의 눈빛에 담긴 감정을 살짝살짝 확인할 때면, 나는 그들의 깊은 감정과, 진심을 통해 더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는 듯싶다.


아, 또 하나 좋은 건. 그렇게 눈빛을 마주치며 그의 감정을 느끼려고 하다 보면, 그가 나에게 하는 말들이 진심인지, 거짓인지가 좀 더 잘 느껴지더랄까.



작가의 이전글 비가 온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