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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꾸 Sep 16. 2020

모래사장에서 바늘 같은 동반자 찾기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은 꼭 혼자 떠나고 싶었다. 과거에 혼자 내일로 여행을 갔을 때 좋은 추억들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일로는 어디를 가든 말이 잘 통하는 국내여행이었고, 이번 여행은 정보도 많이 없이 말도 잘 안 통하는 해외여행이라 그런지 두려움이 엄습했다. 괜히 너무 빨리 비행기표를 끊어버렸나 싶기도 하고, 지금부터 간단한 러시아어라도 공부해야겠다 싶었다. 은근히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3주도 안 남았는데.

 혼자 해외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3주 전부터 심장이 쿵쾅거렸다. 가슴속에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했다. 혼자 떠나려고 마음먹은 여행이었지만, 사실 같이 가고 싶은 친구 한 명이 자꾸 떠올랐다. 학창 시절부터 고마운 것도 미안한 것도 많은 좋은 친구였다. 분명 인생에 도움이 될 소중한 경험을 소중한 친구와 함께 나누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때 마침 친구의 생일이 다가왔고, 생일도 축하해 줄 겸 의견을 물어보러 주말에 서울에서 강릉으로 떠나는 버스에 올랐다.

 강릉 번화가의 한 횟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생일을 축하했다. 나와 친구의 생일은 겨우 이틀 차이밖에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서 짜 놓은 23일간의 횡단 열차 계획을 보여주며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열심히 학업에 열중하던 친구였기 때문에, 학업 큰 피해가 생길지도 몰라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다. 밤새 얘기를 나누고 나서야 친구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음날 맨 정신에 의사를 확인한 뒤 비행기표를 결제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자취방을 나섰다. 3주밖에 안 남았는데 되돌아 가는 길 같은 것은 없었다.

 주머니의 진동에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인웅이라는 오랜만에 만나는 이름이 보였다. 

“여보세요?”

몇 년 전 스키장에서 기숙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만났던 형이었다. 어제 내가 SNS에 올린 사진을 보고 보낸 연락이었다. 우연히 형도 근처에 놀러 왔다며 같이 아침식사 후 서울로 돌아가자는 말에 흔쾌히 “OK”라고 외쳤다. 그러고 나서 성진이에게 물었다.

“괜찮아?”

뭘 괜찮아… 이미 혼자 오케이 했으면서;;

그렇게 셋이 만나 강릉 길거리 국밥집에 앉아 뜨끈한 국밥을 주문했다. 밥을 먹으며 성진이에게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을 알려줬다. 그러자 옆에서 듣던 인웅이 형이 갑자기 자기도 가고 싶다며 같이 가도 되는지 물었다.

“으…응??”

뭐지? 내 계획에 없던 이 상황은? 

한 달 동안 베트남 살기를 계획했던 형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꼭 타보고 싶었다고 했다. 

사실 조금 불안했다. 성진이와는 여행을 한 번 다녀와서 서로 여행 스타일을 꽤나 알고 있었지만, 인웅이 형의 여행 스타일은 알지도 못 하거니와, 성진이와 인웅이 형은 처음 보는 사이였다. 

그냥 가고 싶어서 하는 말이겠거니 싶어, 알겠다고 대충 대답 후 아침식사를 마치고 성진이와 작별 인사를 한 뒤 서울로 향했다. 

하지만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은 인생에서 꼭 해보고 싶던 일 중 하나였는데, 지금 아니면 못 할 것 같다는 인웅이 형의 진심에, 이렇게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타이밍 좋게 만나게 된 것도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운명의 주인공인 인웅이 형은 확실히 여행 중 겪는 고난을 이겨내는 가장 큰 힘이 되어 줬다. 

세명의 청춘이 2주도 채 남지 않은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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