뱉어버린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면, 뻥 차 버리자.

by 혁꾸

내가 했던 말이 갑작스럽게 누군가에게 독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순간 너무 허탈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만약 내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되어버리진 않았을 텐데. 지나 버린 순간이 후회스러웠다.


이 사실을 알기 전, 그냥 나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들을 염두 해 두고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쩌다가 나온 얘기는 말 그대로 어쩔 수가 없다.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해 쏟아내는 말들을 인식하는 그 잠깐 사이에, 당장 눈 앞에 없는 사람의 상황과 이미지를 지켜 주기는 정말 쉽지 않다. 내가 입으로 여기저기 뿌려 댄 독침들을 미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얘기다.


삶을 살아가면서 항상 듣게 되는 말 중 하나는 바로, ‘불조심, 그리고 입 조심’이다. 둘 다 조심해야 하지만, 뭘 더 조심해야 할지 정해야 한다면 쉽게 우열을 가릴 수 없을 것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세상에 말 잘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으면, 말조심하라는 속담만 찾아도 수백수천 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 (어우, 정말 섬뜩한 속담이다. 혀 아래 도끼가 들었다니…),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 화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죽마고우도 말 한마디에 갈라진다 등. 정말, 세상에 한 번도 말실수를 한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분명, 살면서 한 마디도 안 했을 것이란 걸 나는 확신한다.


살면서 말조심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거지만, 사실 너무 조심할 필요도 없다. 적어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는 말이다. 어느 정도 자극적인 말들은, 대화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그 자극적인 대화들 중, 우리가 즐기는 것들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연애사다. 친구들과 만나 공통된 지인의 은밀한 연애사를 떠들어대다가, 우연히 옆 테이블에 있기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친구들을 두고, 뛰쳐나가 버릴 테다. 물론,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샤덴 프로이데’라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다.


‘샤덴 프로이데’란 남의 불행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감정인데, 사람이라면 이 어지러운 세상과 세속적인 사회를 거치며 기본적으로 얻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감정에서 남의 불행이란, 커다란 불행이 아니다. 가령 평소 재수 없게 생각했던 사람이 연인에게 대차게 차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껴지는 꼬소함, 휴대폰에 집중하며 걸어가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는 사람을 봤을 때 흘러나오는 ‘푸흡’하는 조용한 폭소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그런 정보들을 통해 우리는 친구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며 공통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야야, 그거 들었어? 그 재수덩어리 차였대~”


하지만 우리끼리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그 재수탱이가 알아버렸다고 한다면, 심지어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나라는 것 까지 알아버린다면, 게다가 재수탱이랑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는 사이라면…! 혹은 그런 비슷한 류의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그러면 당신도 나처럼 후회의 미로 속을 걷게 될 것이다. 어디로 가야 나갈 수 있는지 모르는 채로.


하지만 이 미로를 벗어나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오만과 편견의 베넷씨가 말한다. “이웃들에게 놀림감이 되어주고, 우리 차례가 되면 그들을 비웃는 재미가 아니면, 대체 무슨 낙으로 살겠니?” 그렇다, 어디선가 우리도 누군가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고 있을 것이 분명하지 않는가. 아무리 밋밋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의 흠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그리고 그 흠은 이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똑같다. 내가 누군가로 인해 즐거운 것만큼,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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