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혼섬 북부 투어
밤 새 눈이 왔는지,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뒤 덮여 있다. 집, 나무, 길, 심지어 풀 까지도 하얗게 서리가 들어, 아침 햇빛에 온 세상이 반짝거렸다. 밤하늘을 가득 매웠던 별들이, 마을에 내려앉은 것 같다.
조식을 먹기 위해 호스텔의 식당을 찾았다. 조식은 의외로 양도 푸짐하고, 종류도 다양했다. 이상한 비주얼의 복숭아 잼도, 달콤하게 입 안에서 녹아내렸다. 오랜만에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호텔의 로비의 분위기 있는 목탁 의자에 앉아 쉬던 우리는 곧 도착한 섬의 북부 투어를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숙소에 도착한 첫날, 호스트를 통해 알혼섬 투어 예약을 진행할 수 있다. 숙소마다 다른 가격이지만 한 사람에 1000 루블 ~ 1500 루블 사이의 가격이다. 가격은 복불복. 우리는 전날 횡단 열차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연락해서 친구들의 숙소에서 예약을 한 뒤에, 북부 투어를 함께했다.
투어버스는 마을에서 나와 울창한 겨울 숲을 향해 나아갔다. 울창한 숲 들은 마치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모습이었다. 눈 사이로 녹아 있는 길을 따라 달리면, 성벽처럼 가지런히 솟아올라있는 숲을 만날 수 있다. 숲을 통과할 때, 나는 동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첫 도착 장소는 어느 작은 마을 앞 절벽이었다. 일출이라고 하기에는 늦은 시간 능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침 햇살의 따뜻한 온기를 맞으며 하얀 눈으로 덮인 바이칼 호수를 구경했다. 북부 투어의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두 번째 장소는, 마치 영화 ‘나니아 연대기’를 연상케 하는 눈 덮인 숲 속이었다. 평생 판타지 영화를 보면서, 하얗게 눈 쌓인 숲 속에 서있는 상상을 하던 내 모습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지금만큼은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었다. 바람이 불어와 나무를 건드리면, 차가운 눈이 하얗게 휘날리며 피부에 내려앉았다. 나무를 흔들면 나뭇가지 끝에 오밀조밀 뭉쳐 있던 눈덩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한바탕 눈으로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이며 맑아지는 것 같다. 하늘로 곧게 뻗어있는 나무들과 흰 눈 사이에, 어딘가로 향하는 길마저,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세 번째 도착한 곳은 바이칼의 호수변이다. 원래라면 호수의 물과 육지가 맞닿은 곳이지만, 얼어붙은 호수 위로 하얗게 눈이 깔려, 어디까지가 땅이고, 어디부터가 호수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어디부터가 하늘 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안개가 살짝 내려앉아 있는 걸까, 수평선이 모호했다. 하늘도 육지도 하얗고 호수도 하얗고 하늘마저 하얗다. 그 신비로운 모습에 감탄하며 나는 넋을 잃고 멍하니 호수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호수가 보이는 절벽 위, 우리는 네 번째 장소에 도착했다. 여기서는 점심을 먹는다고 한다. 장작을 가져와 화로를 만든 후, 기사님은 버스의 휘발유를 입으로 빼내어 장작에 뿌린 뒤 불을 붙였다. 기사님은 상남자 스타일인 듯싶다. 기사님은 우리를 위해 점심을 준비하셨다. 절벽 위에서는 더 넓은 바이칼 호수가 한눈에 담긴다. 호수의 모습은 어디서 보던 정말 넋을 빼갈 만큼 아름답다. 나는 혼자 절벽에 나 있는 길을 통해 호수로 내려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하얀 공간 앞에 서니, 두려움, 호기심, 신비로움이 교차했다. 그리고 호수로 걸어 들어가 무릎까지 들어가는 호수의 눈 밭에 누웠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장소였다. 하늘도, 바닥도, 머리 속도 전부 하얗다.
화로 앞에서 우리는 발을 녹였다. 뜨거운 불길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추위에, 발을 조금 더, 조금만 더… “야 너 발에서 연기 나는데?”, 발을 녹이려다가, 신발이 녹아 버렸다.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기사님이 끓여준 해물탕을 먹었다. 탕 안에 들어있는 생선은 분명, 오물이겠지? 사실 맛은 별로 없었다. 비린내가 나는 해물탕이 었지만, 따뜻한 국물이 내 손과 발을 녹였다. 맛보다는 생존을 위해 필히 먹을 수밖에 없는, 점심식사를 했다. 물론, 기사님께는 왜 이렇게 맛있냐는 듯이, 엄지를 치켜올리며 미소를 보여드렸다.
마지막 장소로 가는 봉고차 안, 엄청난 비포장 도로에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차인데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지쳤는지 모두 잠에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나게 커다란 바위가 보이는 부르한 곷에 도착했다. 부르한 곷으로 가는 길에는 세르게라는 알록달록한 기둥이 여러 개 세워져 있다. 세르게는 신과 인간세상을 이어주는 기둥이라고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부르한 곷에서는 커다란 샤먼 바위를 볼 수 있는데, 알혼섬에서 주술적인 힘이 가장 강한 상징적인 장소라고 한다. 이곳에 도착할 때 즈음 섬의 안개가 걷혔고, 논 앞에 새로운 바이칼 호수의 광경이 펼쳐졌다. 호수의 반대편에는 거대한 산맥이 횡렬을 이루고 있었다. 멀리서 보는데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맥이었다. 바이칼 호수에 오면, 호수에 누워 얼어있는 호수의 결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포인트이다. 우리는 눈 밑에 숨어있는 예쁜 호수의 크리스털을 찾으러 물을 뿌려 대며 눈을 파냈지만, 여행 시기가 한 겨울인 탓에, 너무 꽁꽁 얼어버린 호수만이 우리를 반겼다.
노느라 힘이 다 빠져서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차로 돌아왔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알고 보니 마지막 장소와 우리 숙소는 걸어서도 5분이 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는 숙소에 올라 가자 마자 침대에 누워 따뜻한 몸을 녹이며, 낮잠에 빠져들었다.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는 달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와서, 작은 식당이 나와 있는 지도를 따라 언덕을 올랐다. 높지 않은 언덕이지만, 탁 트인 전경에 작은 후지르 마을의 야경을 한눈에 담아낼 수 있었다. 군데군데 세워져 있는 가로등과, 작은 오두막집 창문에서 나오는 불빛들이 마을의 밤을 장식했다. 후지르마을의 야경에서는 작고 추운 마을 속의 따뜻하고 소소한 행복이 느껴졌다. 근처 식당으로 가서 닭고기와 수프 요리로 배를 채운 후, 아담한 마을의 평화를 느끼며 숙소로 돌아왔다.
신기한 게 있었다. 마을에는 커다란 개들이 많았는데, 각자의 영역에서 무리를 지어 활동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숙소를 나오면 항상 허스키들이 우리를 졸졸 따라다녔다. 배고픔에 허기를 채우기 위해 우리를 따라다니는 줄 알았던 녀석들은, 사실 우리를 안전하게 에스코트해주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마트에 들렀는데, 허스키들은 마트 앞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돌아오기도 했고, 다른 개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데도, 개들은 떠나지 않고 우리의 옆을 지켰다. 또 북부 투어 도중 부르한 곷에 들렀을 때, 우리 숙소 영역의 개들이 달려와, 우리의 곁을 지켜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물릴까 봐 무서웠지만, 개들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난 뒤에는 밤길을 걷는 것도 든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