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마을을 향하여

by 혁꾸

야간열차를 타고,


늦은 저녁시간 이르쿠츠크를 향하는 열차에 올랐다. 이번 열차는 2등석 칸을 예약했다. 잠만 자고 내리는 7시간짜리 열차였기 때문에, 힘들게 짐을 풀 필요 없이, 그대로 누워 롱 패딩을 덮고 누웠다. 울란우데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기차 안의 창문으로는 바이칼 호수를 볼 수 있지만, 늦은 시간 피곤한 상태로 기차를 타게 된 우리는 바로 잠에 들었다. 그리고 어처피 바이칼 호수를 향하는 여정이었기 때문에, 딱히 개의치 않았다. 확실히 2등석 칸의 침실은 넓고, 높았다.


창문에 서리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잠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해가 떠오르지도 않은 이른 새벽 우리는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캄캄한 새벽 역을 빠져나왔다. 이른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역 앞은 사람들이 내뿜는 입김으로 가득했다. 알혼섬으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트램이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트램을 타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분명 지도는 내가 서 있는 이곳을 가리키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며 트램을 찾았다. 그렇게 트램 정거장의 위치를 찾게 된 것은 공중에 이어져있는 전선줄이었다. 트램 표지판은 전선줄 중간 즈음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모여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아, 저기구나' 무단횡단을 하려고 하는 것인 줄 알았던 사람들은 도로 한 복판에서 트램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도로 위로 철로가 깔려있었다.


몇 분 뒤, 우리는 처음으로 트램이라는 교통수단을 영접했다. 전선과 이어진 이음새에서 전기 스파크를 튀기며 도로 위의 기찻길을 따라서 김을 내뿜으며 정류장에 정차했다. 이용 금액은 한 사람에 15 루블, 300원이다. 목적지까지 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돈을 걷는 승무원에게 우리가 내릴 역의 이름을 얘기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기다리라고 손짓했다. 트램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탑승했다. 아마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이르쿠츠크 출근길의 모습인 것 같다. 20분을 달리며 이르쿠츠크의 거리를 구경했다. 모스크바를 향하면 향할수록 점점 유럽 느낌의 건물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하차 지점에 거의 도착하자 승무원이 우리에게 내리라는 손짓을 보냈다. 계속 지도를 확인하고 있었던 터라,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친절한 승무원에 모습에 기분 좋은 시작을 하는 것 같았다.


내려서 지도를 폈다. 알혼섬으로 가는 매표소는 건너편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매표소처럼 생긴 창구는 보이지가 않았다. 갈팡질팡의 연속이다. 이리저리 둘러보다, 블로그에서 본 매표소의 모습이 번뜩 생각났다. 건너편에는 우리나라 길거리의 구두가게처럼 생긴 작은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혹시 나가 역시나, 알혼섬으로 가는 매표소였다. 혹시나 해서 옆에 서있던 중년의 여성에게 여쭸다. “즈디시 알혼 익스프레스 빠르빌나” (여기 알혼 매표소 맞나요?), 끄덕이는 그녀의 고개에, 마음이 놓였다. 섬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려면 약 한 시간 정도가 남은 시간, 매표소도 찾았겠다 더 이상 걱정이 없던 우리는 긴장이 풀렸는지 안 그래도 추운 날씨가 더 춥게 느껴졌다. 그러나 딱히 추위를 피할 장소를 찾을 수 없었던 우리는 그저 서로를 쳐다보며 덜덜 떨리는 턱으로 이빨만 부딪히고 있었다. 확실히 겨울 러시아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따뜻한 장갑과 신발이 꼭 필요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우리의 흰 양말에 운동화는 영하로 내려가는 러시아의 찢어지는 온도를 막기에 너무 버거웠다.



알혼섬으로 향하는 따뜻한 고속 침대.


출발 한 시간 전, 매표소가 열리면서 우리는 예약표를 현물 티켓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창구에 예약내용이 인쇄된 인쇄물을 밀어 넣으니, 이름을 물어본다. “전. 혁. 구.” 헷갈리지 않도록 또박또박 말했는데도, “저. 냑. 우?”라는 이름이 돌아온다. 아무리 발음을 잘해도 정확히 전달되지는 않는구나. 다시 이름을 말하려고 “전!” 하는 순간, 직원이 손사래를 쳤다. 아마도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 뜻인 것 같다. 표를 주며 “빅 빠스~” 하고 큰 버스를 타라며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표까지 교환했겠다, 빨리 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버스가 출발하면 약 5시간을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근처 식당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근처에 빵집에서, 우리는 아침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침 메뉴는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딸기잼 파이를 선택했다. 딸기잼 파이는 정말 만화에 나오는 파이처럼 생겨서는, 어쩜 맛까지 완벽했다. 만화 캐릭터들이 먹던 파이가, 이런 맛이었구나 싶었다. 행복한 빵과의 시간을 보내며, 빵집 전기 콘센트를 이용해, 전자기기들을 충전한 뒤에 출발하기 10분 전, 빵집을 나와 고속버스에 올랐다.


고속버스를 타고 끝이 보이지 않는 눈 덮인 황무지를 달린 지 3시간이 지나갈 무렵. 우리는 휴게소에 도착했다. 음료를 구매하기 위해 휴게소로 들어간 우리는, 뜻밖에도 첫 번째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만났던 양산 친구들을 만났다. 문을 열자마자 서로 눈이 휘둥그레져 쳐다봤다. 버스는 달랐지만 우리는 함께 알혼섬으로 향하고 있었다. 곧 알혼 섬에서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그렇게 우리는 총 5시간을 달려서, 바이칼 호수 선착장에 도착했다. 후덥지근한 버스에서 내리고, 바이칼의 신선한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성진이는 나오자마자 바이칼이고 뭐고, 5시간 동안 버스에서 찜 구이가 될 뻔했다며 중얼거렸다. 원래는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지만, 호수가 얼어버린 탓에, 우리는 호버크래프트라는 수단을 이용했다. 벌써, 호수 위에는 굉음을 내며 섬과 육지를 왕복하는 호버크래프트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의 짐들은 ‘아니, 이게 안 떨어진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호버크래프트 위에 대충 얹힌다. 운전기사에게 이게 안전한 것이 맞는지, 한쪽 눈썹을 치켜뜬 표정과 손가락으로 OK 표시를 만들었더니, “오케이”라며 괜찮다고 자신한다. 난 안 괜찮은데…


호수가 얼어붙은 겨울 호버크래프트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당 400 루블 (약 8천 원)을 지불해야 했다. 이용료는 무조건 현금으로만 지불해야 한다. 카드도 안 되고, 달러도 받지 않는다. 무조건 루블. 우리 배에서는 딱 한 사람의 뉴질랜드인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교통비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 같았다. 뉴질랜드 화폐로 낸다는 그의 말에도, 운전기사는 냉정하게 문을 열며 나가라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비용을 지불해주고 싶었으나, 워낙 내 코가 석자인지라 시무룩한 뉴질랜드인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만약 돈이 없다면 걸어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섬까지 배로 이동해보니 ‘걸어가는 방법만 있구나’ 싶었다.


호버크래프트를 타고 신나게 호수 위를 달려, 섬의 입구에 도착했다. 호버크래프트는 우리를 대충 얼어붙은 호수 위에 내려줬다. 처음 마주한 알혼섬은 흰 눈으로 덮여있었다. 섬에 높은 산은 없었고 낮은 언덕들과 평야, 그리고 숲이 가득했다. 하지만 여기가 종착지는 아니었다. 여기서 30분가량 버스를 타고 섬의 중간에 있는 후지르 마을로 이동해야 한다. 육지에 오르자마자 보이는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면, 여러 대의 버스가 이미 우리를 태우기 위해 대기 중이다. 버스 앞에 도착한 사람들은 어떤 버스를 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 거렸다. 웃기게도 옆에는 답답했던 중국인 아줌마와, 그런 아줌마가 귀찮았던 러시아 버스기사님이 각자의 자국어로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를 미루어 보았을 때 아마 싸우는 게 맞았을 거다. 그 와중에 한국 사람들끼리는 서로 뭉쳤다. 이걸 타는 것이 맞는지, 어디에 타야 되는 건지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대화와 목적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있는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안심이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충분히 휴식을 취하신 기사님들이 우리를 버스에 나눠 태웠다. 버스 안에서는 기사님이 우리의 호텔을 체크하신 뒤에, 우리를 모두 각자의 호텔 앞에 내려 주실 예정이다.



후지르 마을의 따뜻한 크리스마스 오두막


집 한 채 볼 수 없는 호수를 옆에 낀 비포장 도로를 30분 정도 달렸다. 탁 트여 있는 섬의 전경에 멀리서부터 마을이 가까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눈 덮인 후지 마을의 모습은, 아담한 크기의 나무로 된 집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크리스마스 마을을 연상케 했다. 사람들이 서로의 즐거운 여행을 기원하며 하나둘씩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의 순서는 마지막이었다.


예약했던 우리의 호텔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마음에 들었다. 넓은 정원에, 깔끔한 목재로 지어져 있는 2층짜리 건물이 우리를 반겼다. 특히 우리가 배정받은 방에서 보이는 바이칼 호수와 후지르 마을의 풍경, 방에서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안정이 찾아들었다.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이칼 호수와, 반짝이는 하얀 보석으로 뒤덮인 나무와 풀, 그리고 지붕들. 이곳에서 지는 노을은 얼마나 아름다울지, 해가 지는 시간이 얼른 다가왔으면 좋겠다.


알혼섬에 도착한 첫날은, 오랜 대중교통 이용으로 인한 피로를 풀며 느긋하게 이어 나갔다. 후지를 마을에는 오직 하나의 레스토랑이 있는데, 운이 좋게도 숙소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따뜻하게 샤워를 마친 후,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알혼섬을 여행하면 바이칼 호수에서만 서식한다는 ‘오물’이라는 생선 요리를 먹어봐야 한다고 들었다. 이외에도 러시아를 여행하며 어느 식당을 가던 빼놓지 않았던 크림 파스타와, 갖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식당 안에 손님이 조금 있어서 그런지, 음식이 엄청 늦게 나왔다. 게다가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테이블에 올라왔다. 밥 먹을 때는, 흐름이 제일 중요한데, 하나씩 나오는 메뉴는 세 명이서 먹기에는 너무 순식간이었고, 우리는 먹다 쉬다를 반복했다. 하~ 뭐를 먹긴 하는 건지, 간에 기별도 안 온다. 게다가 마지막 순서였던 ‘오물’은, 말 그래도 ‘오물’인 듯싶다. 한껏 기대한 생선의 맛은, 밍밍하고 비렸다. 여행 온 김에 한 번쯤은 먹어 볼만한 맛 조차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마을에 하나뿐인 대형 마트에 가기로 했다. 마트로 이동하려면 숙소에서 15분 정도를 걸어야 했다. 너무 추운 날씨에 마스크를 끼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마을에는 이미 암흑이 들어차 있었다. 마을에는 가로등이 거의 없어서, 거리는 어두운 것 이상으로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게다가 뒤로는 떠돌이 개가 우리를 따라왔다. 후, 그래도 마트가 가고 싶었던 우리는, 개에게 공격당하면 꼭 도망치지 않고 서로 도와주기로 약속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뒤쪽에 서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며 자리를 선점하기 바빴다, 세상에 이런 의리 있는 친구들이 있나, 만약 내가 물리면 이미 나는 혼자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에 도착했을 때, 우리의 앞머리는 전부 얼어 있었다. 우리의 입김이 추워서 착용한 마스크 때문에 앞머리로 올라와, 그대로 얼어버린 것이다. 세상에 앞머리가 얼다니, 행여 앞머리가 부서 지기리도 할까 봐, 마트에서 앞머리를 살살 녹이기 바빴다. 우리는 마트에서 보드카 한 병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있을 섬의 북부 투어를 기대하며, 느긋하게 흐르는 밤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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