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알혼섬을 나갈 채비를 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캐리어를 끌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역시나 새하얀 눈밭에 선선하게 차가운 아침 바람이 불어왔다. 아침부터 상쾌한 찬 공기를 들이마시니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호텔의 호스트 아주머니께서 호텔 앞으로 우리를 배웅해 주셨다.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여행 내내 우리를 에스코트해줬던 개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을 때, 함께 후지쯔 마을까지 들어왔던 한국인 여행객 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틀 전만 하더라도, 우왕좌왕하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서로에게 물어보는 모습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버스에서 다시 만난 우리의 얼굴에는, 걱정과 근심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동화 같았던 알혼섬의 즐거운 추억 속에 행복한 모습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후지르 마을을 빠져나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우리는 새 하얀 알혼섬의 기억과 소소한 여행의 재미를 주제로 이야기 꽃을 피우며 다 함께 추억을 나눴다.
돌아가는 버스는 생각 외로 한산했다. 다 같이 알혼섬을 찾았던 그 많던 여행객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덕분에 우리는 버스 좌석에 가로로 누워서 잠을 자며 편하게 이르쿠츠크로 출발했다. 중간에 휴게소에 내려서, 배를 채웠다. 얼마 전 여행했던, 이 볼긴 스키 다짠에서 먹었던 ‘후슈르’라고 하는 큰 튀김만두와, 계란빵이 먹을 만해 보였다. 확실히 러시아 음식은 매우 기름진 것 같다. 하지만 괜찮다, 러시아 음식점에는 다행히도 핫 소소, 간장, 칠리소스가 구비되어 있다. 현지인들에게도 느끼한 음식인 듯하다.
알혼섬을 나와 이르쿠츠크 시내로 돌아오는데만 하루 일정을 전부 소모한다. 이르쿠츠크 시내의 중앙시장에 도착하고 나니 벌써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오늘은 여행보다는 숙소에서 따뜻한 물로 몸을 녹이고, 맛있는 음식을 과하게 먹은 채로 침대에 몸을 던지고 싶다. 이르쿠츠크의 시내를 구경하며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 앞에 도착했을 때, 한숨이 절로 나왔다. 러시아의 여느 숙소를 가던, 엘리베이터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나를 반기는 것은 오로지 2층으로 향하는 높은 계단 턱이었다. 그래도 숙소는 깔끔하고 좋았다. 워낙 유명한 게스트하우스라서 그런지, 이미 많은 여행객들이 거실의 소파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당장 누울 침대와 음식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잠깐의 휴식을 가진 뒤에, 이르쿠츠크 시내의 유명한 고려 국시집을 찾았다. 오래전 고려인이 이르쿠츠크로 이주해와서 차린 전통적인 가게라고 한다. 여행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라, 메뉴판도 한글로 잘 되어 있었다. 고려 국시는 고려의 전통 국수 이름인데, 음식의 모습과 맛은 냉 메밀 비슷하게 생겼다. 나는 맛을 음미하며 비교한다기보다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먹는 편이라, 뺏길 새라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우기 바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아마 귀찮아서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을 것만 같은 내일 아침식사를 위해 , 그리고 내일 다시 오르게 될 3일간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정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하기 위해 마트에 들렸다. 열차에서의 생존 물품 이외에도, 아이스크림, 오늘의 피로를 잊게 해 줄 맥주 한 캔, 사실 두 캔, 그리고 저렴한 과일까지.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들을 집고 있었다. 우유를 고르다가, 알혼섬을 나오는 버스 안에서 만났던 여행객들을 다시 한번 마주쳤다. 신기하게도 동네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 한국인들의 여행 일정이 비슷비슷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낯익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여행을 시작한 지 벌써 8일이나 지났다. 행복한 시간들은 왜 이렇게 빠른 걸까. 아직 나에게 새로움을 안겨 줄 도시들이 많았지만, 지나온 여행들이 벌써부터 아쉬웠다. 아직 지나온 여행보다 헤쳐 나가야 할 여행이 많지만, 지나가는 한순간 한순간마다 새롭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