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안전장치

by 혁꾸

관계의 안전장치

삶에 있어서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나오는 말 한마디는 얼마나 중요할까. 우리는 어이없게도 대화 도중 어떤 비밀을 유추할 수 있을만한 말 들을 내뱉어 버린다던가, 상대방이 곤욕스러울 만한 말들을 실수로 뱉어버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없이 자책감을 느끼곤 한다. 뱉어버린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다는 걸 다시금 되뇌면서.

실수로 뱉어버린 말은, 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치명적인 말이기도 하다.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런 치명적인 말들을 고의로 내뱉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실수로 던져지는 대부분의 말들은 보통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말들 일지라도, 인간관계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 그렇다고 매 순간 한 마디 한 마디를 생각하면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나의 감정이 이성보다 빠르게 내 입을 움직일 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말 하는걸 좋아하는 나는 그 만큼 어이없는 말 들을 내뱉어서 오해를 산적도 꽤나 많다.

미숙한 생각으로 내뱉었던 말과 행동들을 떠올릴 때면, 이불을 두어 번 걷어찬 뒤에 지우개로 기억을 쓱싹쓱싹 지워 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얼마나 강렬하게 뇌리에 새겨졌는지, 아무리 지우려고 애를 써도 흰 셔츠에 묻은 김치 국물처럼, 빠지지 않는 얼룩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언젠가 꽤 괜찮은 방법을 발견했다. 이제 막 친분을 쌓아가기 시작했었던 지인과의 대화 중이었다. 딱히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도 않았는데, 그는 이야기를 꺼내기 전 나에게 먼저 이 말을 했다.

“있잖아, 오해하지 말고 들어~?”

신기하게도 이 말 한마디는, 이야기를 듣는 나를 듣는 입장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말하는 입장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별로 오해 살만한 이야기도 아니구만 뭘...”

사실, 그가 오해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도 나에게는 크게 오해가 될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앞서 들은 말에, 말하는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니 자칫하면 오해를 살만한 상황도 여럿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줘.”라는 말. 과거를 지울 수는 없지만, 앞으로의 실수를 예방하기에 아주 좋은, 말이 담긴 물컵을 실수로 쏟아 버리지 않게 도와주는, 관계의 안전장치가 되어주는 말이었다.

이미지출처
[ Volodymyr Hryshchenko, @lunarts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