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칠이 끝나기 전엔, 잘 알 수 없는 것들.
학창 시절 미술시간을 떠올려 본다.
나는 도안은 꽤 잘 그렸다. 하지만 막상 색을 칠하는 데 있어서 그림을 망치곤 했다. 도화지에 붓을 꾸욱 누른 채로 곡선을 따라 색을 칠하고 나면, 선 밖으로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는 색들이 나의 실력을 증명했다. 특히 물감을 사용하는 방법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로 질감을…? 예..? 뭘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요...?”
학교를 졸업하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오랜만에 붓을 잡을 기회가 생겼다. 나는 오른손 잡이지만, 마치 왼손을 쓰는 것처럼 붓을 움직이기 버거웠다.
그래서 그냥 나는 색을 채우기보다는, 색을 표현하기로 했다. 먹구름이니까 회색, 노을 지니까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을 한 번씩, 눈 내리는 건 하얀색. 자신의 단순하고 명료한 표현에 만족스러웠던 나는 그렇게, 자화자찬에 빠져 버렸다.
이게 나지. 어른이 된 나는, 더 이상 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 색을 칠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고 싶은 대로 도화지를 물들였다.
이게 나였다.
색이 입혀지지 않은 무채색의 밑그림들은 마치 누군가에게 처음 보여주는 나의 첫인상과 같았다. 나의 색으로 가득 채워지기 전, 낯을 가리는 듯한 나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만의 개성으로 그림이 가득 채워졌을 때. 그때 누군가 내 그림을 보게 될 때도, 너와 어울린다며 예쁘다고 말해줄 수 있는 이가 있을까?
누군가를 알아갈수록 나는 그 사람의 깊은 내면의 그림을 만나게 된다. 그때 나는, 예쁘게 칠 해졌을 수도, 엉망진창으로 번져있을 수도 있는 그의 그림을 사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