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악설을 믿는다.
군대를 갓 전역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성선설을 믿었다. 사람은 착하게 태어나지만, 삶을 살면서 주위 환경이 사람을 악하게 물들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 반대다. 악하게 태어난 사람이,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아 도덕적, 양심적으로 변화하며 선한 마음과 성품을 지니게 된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윤리와 도덕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가 보다. 사람들을 교화함으로써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함께하기 위해서.
어릴 때는 참 멍청하게도, 나는 나에게 착하다고 최면을 걸었다. 여기서 어리다고 하는 건 학창 시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착한 나’라는 모습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나는 누군가의 어려운 부탁과 도가 지나치는 장난에도 역정 한 번 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뭐든 ‘이런 장난쯤이야’하고 웃는 가면을 써버리는 피에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속으로 하는 의심이 많아졌다. 사기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에는 꽤 좋은 성격이 되었다. 상대방이 나를 배려한다고 하는 말과 행동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상대방의 행동이 기분 나쁠 때는 화를 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내가 원하는 걸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조금만 손해를 봐도 역정을 부리는, 그런 불같은 사람이 되어버린 건 아니다. 그저 처음 만난 사람의 친절함을 마냥 착하게만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좋은 모습은 좋은 모습대로 싫은 모습은 싫은 모습대로 받아들이면서, 나도 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주는 건 어려웠지만, 정작 내 모습을 잃어버리기는 쉬웠다. 특히 곤란하거나 어색한 상황을 마주할 때, 나는 나의 편안함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항상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 어쩔 수 없는 부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걸 인정하는 것처럼 마음 편한 게 또 없다.
이렇게 열변을 토해 놓았지만, 사실 시간이 지나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매일 바람은 다르게 불고,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르니까. 내 모습이 줏대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저 세상의 흐름에 발맞춰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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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uel Schinner, @ciopre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