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많이 찍어놔. 사진도 좋지만 영상이 최고야"
주변 육아선배들에게 들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고 도움이 되었던 조언이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를 출산한 부부에게 내가 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사진으로도 충분한 거 아닌가? 굳이 영상을 찍어야 되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물론 사진만으로도 엄청 좋다. 그런데 가끔은 사진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들이 있다.
아이를 재우고 가끔은 아내와 함께 아이의 예전 사진을 보며 추억여행을 떠날 때가 있다. 예전 사진이라고 해봤자 불과 1년 전 사진인데, 어느 순간들은 벌써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렇게 사진과 영상들을 하나씩 보다 보면 몇 장 안 본 거 같은데 1시간이 지나가버린 적도 있다. 이건 뭐 유튜브 숏츠 수준이다.
눈도 뜨지 못하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던 순간, 낑낑거리며 용을 쓰다가 드디어 뒤집기에 성공한 순간, 처음으로 기어가는 데 성공하고, 뒤이어 본인의 두 다리로 일어났던 순간들. 그 당시에는 아이의 모든 순간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 같지만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생각만큼 좋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길 순 없겠지만 생각날 때마다 기록해 두면 꽤 소중한 자산이 되는 것 같다.
우리도 그렇다. 굳이 학창 시절까지 가지 않더라도 몇 년 전의 일만 해도 대부분의 기억은 희미해진다. 가지고 있더라도 파편화된 기억들의 조각일 뿐이다. 싸이월드가 복구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열광했던 것도 그런 이유일 거다. 사진 자체도 궁금하겠지만, 사진과 영상들을 보면서 그때의 추억조각들이 맞춰지는 것. 그것에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벌써 조금 커서 그런가. 완전 신생아 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사랑스럽고, 앞으로도 여전히 사랑스러울 딸이다. 기억은 잘 나지 않는 과거의 어느 순간에도 사랑스러웠을 딸이다. 아이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건 부모라면 모두가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자녀의 성장 과정 중간중간을 영상으로 남기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너무나도 쉽게 핸드폰으로 찰칵찰칵만 하면 영상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시대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추억여행을 떠나곤 하지만, 조금 있으면 아이와도 함께 추억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아이와 함께 그때의 추억이 가득 담긴 사진과 영상을 같이 보면서 깔깔거리겠지. 아이한테 "너 이 때는 왜 이렇게 행동했어?"라고 물어보면 아이가 "내가 이랬어??" "도대체 왜 그랬을까?"라면서.
앗 생각난 김에 백업이나 해놔야겠다. 지워지지 않도록.
그런데.... 정작 나에 관한 건 사진 같은 거 쓸데없는 추억이라고, 그런 거 볼 시간에 현재와 미래에 충실하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인간이면서 아이에 관한 건 백업까지 하다니. 나도 진짜 부모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