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마지막 주말, 개인적인 일정이 있어 아내에게 아이를 맡기고 하루종일 외출을 하고 왔다. 놀고 온 건 아니고 당근마켓을 통한 아이용품 구매, 장보기, 아내 노트북 세팅 등등 평일에 아이와 함께 있어 하기 힘든 일들을 이것저것 처리하고 왔다. 어느 정도 일을 처리하고 오후에 집으로 들어왔는데 아내가 나를 안아주면서 말했다.
"하.... 오빠 진짜 힘들겠다."
갑자기 왜 그러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이가 계속 사고 치는 모습을 겪어보고 위로해 준 것이다. 아내가 아이를 잠깐 거실에 놔두고 눈으로 살짝살짝 보면서 자기 할 일을 하려고 했으나,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아이가 아니었다. 의자를 잡고 일어서서 잘 놀고 있다가 갑자기 힘을 빼면서 뒤로 쓰러지질 않나, 타고 다니라는 보행기를 타지는 않고 밀고 다니다가 넘어지지 않나, 침대에서 기저귀를 갈아줬는데 갑자기 몸을 뒤집더니 침대 머리맡으로 다가가 박치기를 하질 않나. 정말 조금만 방심하면 언제 어디서 사고를 칠지 가늠이 되지 않는 질풍노도의 시기 같다고 느꼈다. 물론 정말 사춘기가 온다면 지금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조금 달래주다가 다시 아내가 다른 일 좀 하려고 하면 다가와서 아내 다리를 잡고 징징징 끌면서 놀아달라고 하고, 두 팔을 벌려서 안아달라고 하고 안아주지 않으면 울먹울먹 거리고. 참다못한 아내가 "엄마도 할 일이 있어. 엄마가 언제까지 널 계속 안아줘야 돼. 엄마도 좀 쉬자. 저기서 혼자 잠깐만 있어봐"라고 하자 바로 울음버튼을 꾹 눌러서 엄마를 당황시키고.
이런 것들을 하루 종일 겪고 나자 체력적으로 조금 데미지를 입은 것 같다. 아이를 같이 목욕시키면서 나한테 "아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워. 근데 그만큼 정말 힘들어. 아오"
2021년 1월 31일. 평소와 다를 것 없는 1월의 마지막 날이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조금 더 특별했나 보다. 평소에도 그다지 날짜 감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더욱 날짜 감각이 없어졌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핸드폰에 찍힌 1월 31일이라는 날짜를 보고, 조금은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올해가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데 지금까지 뭐 했지?'
아이를 보기 위해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개인적으로 특별히 뭘 한 게 없다. 한 거라고는 책 한 권 읽은 것?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열심히 나가는데 나 혼자 제 자리에 서 있는 느낌.
물론 나도 안다. 회사에 다닐 때라고 해서 엄청난 걸 하고 있는 것 아니고 그 때라고 해서 꼭 앞으로 열심히 나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 그냥 아이 핑계를 대고 싶은 거라는 것. 생각해 보면 오히려 지금이 더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임을. 살면서 아이와 이렇게 온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까? 주어진다 하더라도 아이가 그때 나랑 놀아줄까 등등 지금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끔은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나온 한 달보다 남은 11달이 많기 때문에 매 순간 더 집중하고 보다 온전히 아이와 함께 소중한 추억을 쌓아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