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을 준비할 때 전자레인지로 데워도 되지만 물로 중탕하는 게 아이한테 더 좋을 것 같다는 왠지 모를 생각이 있어 물로 중탕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아무래도 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기 때문에 이유식을 준비하는 중에는 부엌으로 아이가 절대 오지 못하도록 한다. 엉금엉금 부엌 쪽으로 기어 오면 영차 들어서 다시 거실로 놓고, 다시 또 슬금슬금 기어 오면 또 영차 들어서 거실로 놓고. 한 3~4번 정도 반복하다 보면 이유식 준비가 마무리된다.
오늘도 그렇게 한 번 아이를 거실로 옮겨놨는데 웬일인지 거실로 오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줬다. 아이가 엎드려서 있어서 뭐하고 있는지 자세히 못 봤지만 혼자 뭘 꼼지락꼼지락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드디어 아빠가 이유식 준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구나. 우리 아이 다 컸네'
그동안 그렇게 기를 쓰면서 나한테 오다가 안 오니 한편으로는 조금 서운하기도 해서 슬쩍 아이에게 다가가봤다. "왜 이렇게 조용해? 아빠 기다려주는 거야?"라고 했는데 맙소사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을 마주해 버렸다.
질겅질겅 음냐음냐. 뭔가 종이를 뜯어서 입에 넣고 씹고 있던 것이었다. 얼른 아이 입을 벌려 종이를 빼내어 확인해 봤는데 동화책에 있던 거미 다리였다. 이걸 뜯어서 씹고 있을 줄이야.
잘 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조용히 사고 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구나. 뭔가 조용하면 한 번 더 아이를 유심히 봐야겠다는 것을 느낀 하루였다.
아직 걸어 다니지는 못하고 뭔가 잡을 것이 있으면 잡고 일어서는 정도에 불과한데도 슬슬 불안하다. 소파와 이동식 트롤리가 있는데 얘네들이 아이가 생각하기에 잡고 일어설만한 것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요즘 들어 두 가지만 보면 잡고 영차 일어나서 흔들지를 않나, 춤을 추지를 않나.
오늘도 영차! 트롤리를 잡고 일어나서 열심히 흔들고 있는데 갑자기 기우뚱~하더니 뒤로 휙 넘어지려고 했다. 아이가 뭔가를 잡고 일어설 때면 항상 불안해 뒤에 앉아 주시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다행히 아이를 잘 잡아주었다. 물론 트롤리는 와장창.
자기도 놀랐는지 엉엉 울기 시작한다. 너 잘못한 거 없다고 안아서 달래준 다음, 뒷정리를 주섬주섬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더니 다시 또 해맑게 웃는다. 마치 언제 울었냐는 듯. 웃으면서 중간중간 정리해 놓은 것들을 다시 던지기도 하고. 역시 사고 치는 놈 따로 있고, 정리하는 놈 따로 있다는 말이 틀린 것이 아니다.
그래. 그것 좀 던지면 어떠냐. 다치지 않았으면 됐지. 그나저나 매트가 부족해서 비어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비는 부분이 없도록 얼른 추가주문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나 뒤로 넘어져서 머리부터 다치면 큰일이니까.
그나저나 정리해 둔 옷은 왜 또 다 빼고 있는 건지. 오늘도 일거리를 만들어주는 너.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