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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 윤 May 07. 2022

준비가 반이다


 인터넷 카페에서 우연히 어떤 글을 읽고 웃음을 터트린 적이 있다. 한 여성이 남편에게 빨래를 도와달라고 하자, '그래 내가 할 테니 세탁기에 세탁물이랑 세제만 넣어달라'라고 했다는 일화였다. 버튼을 눌러서 '세탁'이라는 행위를 하는 것만이 빨래의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세탁물을 꼼꼼히 분류해 넣고 정량의 세제를 넣는 준비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비슷한 일화로 '자기 내가 요리해 줄게. 간단히 재료들만 세척하고 다듬어줘.'가 있다. 지지고 볶는 것만이 요리가 아니라,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부터가(물론 설거지를 하는 마지막까지도) 모두 요리인 것이다! 요리 얘기를 하다 보니 생각났는데, 요리의 난이도는 재료를 다듬는 수준으로 결정된다고 한다. 재료를 준비할 때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갈수록 난도가 높은 요리다. 그래서인지 나도 요리할 때 냉장고에서 재료만 다 꺼내놓아도 반은 완료한 기분이다.





 새삼 준비의 중요성을 느낀다. 얼마 전에 딸과 레고로 호텔을 지었는데, 박스에 담긴 채가 아니라 한번 부순 것을 다시 만드는 작업이었으므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 호텔을 세우기 위해 레고 조각 찾기라는 엄청난 준비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쌓는 것은 금방이었다.



 헤밍웨이는 1쪽짜리 걸작을 위해 91쪽짜리 쓰레기를 썼다고 했다. 최근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라는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소개된 BTS의 말이 퍽 인상적이었다. '축제는 준비 기간이랑 치우고 뒷감당하는 거 엄청 길잖아요. 근데도 사람들은 매년 축제를 기다리고 준비한단 말이에요. (축제가 시작되면) 행복을 주는 순간이 너무 강렬한 거예요. 그게 너무 소중하잖아요.'



 열매는 달지만 인내는 쓰다. 우리는 잠깐의 퍼포먼스를 위해, 그것을 최선의 결과로 만들기 위해 '준비'라는 고된 노동을 한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이다. 언젠가는 내 글을 책 한 권 분량으로 모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그렇게 되기까지 자그마한 글 한 조각이라도 모아두는 준비운동이다. 


 


 

 근데 준비라는 건 왜 힘들게만 느껴지는 걸까?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선 싫은 것을 잘 참아내는 것이 포인트라는 말도 있는데 준비가 꼭 싫은 일이어야만 하나? 출근하기 전 출근 준비 회의하기 전회의 준비 행사하기 전행사 준비 이런 것들은 꼭 남이 대신해줬으면 하는 귀찮음이 있다.



 SNS에서 진정한 비서로 불리는 강아지를 본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버튼을 눌러 음악을 틀고, 커튼을 치고, 토스트에 빵을 집어넣는다. 그 뒤 커피를 내리고 주인을 깨우는 영리한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그 영상을 보며 주인이 진정으로 부러웠다. 왠지 저런 강아지가 있으면 하루의 시작이 한결 수월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나는 마음가짐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가짐이 바뀌어도 할 일은 다 해야 한다.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좋아하지는 못해도, 해치우지는 마음이 될 때까지는 그 일을 하는 시간이라도 좋아하는 시간이라도 만들도록 커피를 마시거나 음악을 듣는다. 고등학생 때 공부하면서 음악을 들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니었을까 싶다. 음악을 감상하는 척 내 뇌를 속이고 있다가, 공부를 조금씩 곁들여 그 세계에 빠져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아니면 이 준비 과정 자체가 진짜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남이 해주는 것도 좋지만 내가 그 과정을 즐긴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때로 진짜 그냥 좋은 경우도 있다. 데이트도 화장할 때가 설레고, 여행도 짐 싸고 문을 나서기까지가 제일 즐겁다. 



 이 준비과정이 나에게 주는 미래를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싶다. (아직은 희망사항이지만 또 뇌를 속여보도록?) 

 그러다 보면 언젠가 우리가 그리는 기분 좋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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