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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 윤 Oct 04. 2023

명절 모임, 어느 그룹에 낄 것인가.

끼인 세대의 선택지

명절이면 아직까진 가족 모임이 떠오른다. 다양한 음식들을 대량으로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그간의 밀린 이야기들을 나누고 놀이를 하기도 한다.

우리는 명절에 시댁에 들러 아버님을 뵙고 친정으로 향한다.

친정집에 가면 소소한 모임으로 2시간 내외 식사만 하는 친가 쪽과 달리,

형제가 많은 외가는 매번 20명씩 모여 저녁모임 대잔치를 한다.

이모 삼촌 이모부 외숙모 그리고 그 밑의 사촌동생들까지 잔뜩 만나게 된다.



20명이라는 많은 숫자가 함께 식사를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그룹으로 나뉘게 된다.

아무래도 20명이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우니까.

공간적 제약으로 어른들과 자식세대가 나뉘어서 앉아있다가 자식세대는 자연스럽게 외출을 한다.

나가서 술 한잔 하면서 회포를 풀다가 밤 11시쯤 집에 있던 부모님과 합류해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 관례가 벌써 10년 정도 되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30대 후반인 나는 애가 세명이다. 오래간만에 가족들을 만나서 반갑지만,

8명이나 되는 자식그룹 중에 유일하게 아기를 낳아 키우는 아줌마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서 어느 그룹에 끼어야 할지 처지가 좀 곤란해진다.

30대 초중반인 사촌 동생들과는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는 데다 하루쯤 부모님께 아이들을 맡길 수도 있지만,

어쩐지 미안하기도 하고 미혼인 동생들과 대화주제도 다르다고 느껴서 지금까지 한 번도 같이 나가 논 적이 없다. 8명 자식들 중에 혼자만 집에 남아서 집안일을 돕거나 아이들을 돌본다.



자연스럽게 나와 남편은 어른세대와 집에 남게 되고, (남편은 때에 따라 본인이 남을지 나갈지 선택)

남은 10명이 덩그러니 앉아있다 보면 약간 신기한 마음이 든다.

내가 10여년 전 20대 중후반에 결혼했으니,

30대 후반임에도 혼자 확 아줌마세대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쓸쓸하다기보다는 뭔가 시대의 변화에 중심이 된 느낌이라,

진짜 요즘에는 결혼도 안 하고 다들 자기 일을 한다는 것이 피부로 확 느껴진다.



그래도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도 했지만 결국 나 혼자만 아줌마라니.

나이대가 비슷한 동생들과 얘기하고 싶기도 하지만 영 어색하다.

그러게 네가 너무 일찍 결혼했잖니

친척들이 다들 고생한다며 나를 안타까워하는 걸 보면, 

문득 내가 혼자 구시대적인 선택을 한 것인가 싶어 진다. 나도 3~5살 정도 어리게 태어났으면 훨씬 진취적이었을까?

그렇다고 나 역시 계속 솔로로 지내며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다는 느낌은 아닌데,

그냥 같은 사람들인데 생활방식 자체가 홀로 다르다는 것이 신기한 기분이다.



암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혼자 60대인 어른들 사이에 끼어 멀뚱멀뚱 있는 게 꼭 나쁘지는 않다.

사실 오히려 이 쪽이 내 자리인 것 같은 느낌이다.

어른들과의 대화는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10명도 많은 숫자라 이번에는 반반씩 여자팀과 남자팀으로 나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남자팀은 직장과 일에 대한 이야기나 정치이야기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눈다.

그리고 여자팀은 살림 이야기나 연예 가십, 그리고 가족들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나로서는 초등학생인 딸 때문에 교육 이야기가 슬슬 관심이라 이모의 조언을 듣기도 하고,

90대가 되신 이모들 시부모님의 간호이야기 노후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간이 잘 간다.

평소 또래의 친구들과 이야기하느라 어른들 얘기 들을 기회가 없는데, 더 지혜로운 시각으로 삶의 이야기를 들으니 좋다.



지금은 어른들 기준 4 가족만 모이고 있는데, 

원래는 더 큰 어른들 가족까지 꼭 다 같이 모이곤 했었다. (큰집인원만 따로 11명)

당시 사촌오빠랑 결혼한 새언니들은 20대에 아기들을 낳고 키워서

나랑 또 살짝 텀이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언니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도

언니들이 아줌마와 아가씨의 생활은 완전히 다른 삶이라며 대화할 거리가 없을 거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아줌마가 되어 또다시 돌아온 명절에 같은 기분을 체감하고 있다.





어른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가까워지는 느낌과 비례하게 동생들과는 멀어지고 있는 기분이다.

사촌동생들은 저녁식사를 마친 후 바로 집에서 나가기 때문에,

인사는 하지만 따로 근황이나 사는 이야기를 할 시간은 전혀 없다.

어렸을 때는 몇 시간이고 내가 옆에 끼고 놀았는데 이제는 생사확인뿐이다.

다행히 내 친남동생과는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이렇게 서서히 직계가족만 남게 될 것 같다.



큰 집 어른들이 그렇듯 나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사이가 된다는 것이 아쉽다.

거처를 이동하느라 바쁘셨던 시댁이 이번에 자리를 잡게 되어,

다음 명절부터는 시댁에서 우리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예정이다.

나의 조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온 가족이 바글바글 모여 

왁자지껄 떠들며 윷놀이를 하던 그 느낌을 내 아이들도 느낄 수 있을까?



그땐 나름 정신없었지만 그래도 가끔씩 그런 소란스러움이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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