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가 부러운 이유
딸부잣집에서 자란 우리 엄마는 자매가 넷(엄마포함)이나 된다.
이모들이랑 사이도 가까워서 왕래를 자주 하는 편인데,
하루는 냉면집에 갔다가 이런 일이 있었다.
"사장님. 여기 물냉으로 3그릇 주세요."
"예. 금방 갖다 드릴게요."
"아참, 그리고 거냉이요. 사장님."
"예, 알겠습니다."
엄마가 냉면을 주문하고 잠시 한숨을 돌리는 사이,
옆에 앉아있던 이모가 놀라면서 물었다.
"어머, 언니도 임영웅 좋아해?"
"응? 갑자기? 임영웅은 왜."
"언니가 방금 사장님한테 건행~이요. 했잖아. 요즘 유행하는 임영웅 인사법 아니야?"
"아니, 얘는. 건행이 아니라 거. 냉. 얼음 빼고 달라고."
"아..."
잠시 침묵.
"건행이 뭐니? 뭔 인사가 그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줄임말이야..."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 됐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듣고 나는 빵 터졌는데,
이런 식의 에피소드가 꽤나 자주 있어서 그런지 전달하는 엄마는 웃지도 않는다.
덕분에 엄마는 그날 건행이라는 단어를 배웠고, 이모는 앞으로 더 자연스럽게 냉면을 주문할 것이다.
나는 이것이 자매가 좋은 이유를 보여주는 짧은 일화라고 생각한다.
같이 있으면 웃을 일이 많고 자연스럽게 배우는 트렌드도 많다.
나는 남동생이 있지만 자매는 없다.
그래서 가끔 자매들끼리 즐겁게 지내는 걸 보면 부러워진다.
물론 자매도 자매 나름이라 사이가 좋은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그런데 신기한 건지 내가 부러움의 렌즈를 끼고 봐서 그런지
내 주변에서 그들의 관계는 대체로 좋아 보였다.
모든 걸 같이하는 '일단 내편'이 추가된 느낌이다.
어려서는 공부, 취미생활부터 커서는 자취 독립, 공동 육아까지
혼자서 도전하기 어려운 것들을 같이 해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시시콜콜 잡담하고 묵은 감정을 해소해 가면서
함께 진취적으로 나아간다.
게임으로 치면 2인용 플레이가 가능한 것이다.
"Nothing can hurt us as long as we're together."
(우리가 함께라면 그 무엇도 우리를 해칠 수 없어.)
슈퍼마리오브라더스에 나오는 마리오와 루이지의 명대사인데,
동성의 자매와 형제가 하나로 힘을 합치는 것은 마치 순리처럼 보인다.
자매가 많은 엄마는 고정적으로 이모들을 만난다.
주로 함께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나들이를 하는 일정이다.
반찬도 나누고, 운동도 하고, 보고 싶은 게 있으면 함께 관람한다.
다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면 힐링도 되고,
평소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하면서 영감도 얻는다.
무엇보다 부러운 점은, 가만히 있어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부담 없이 누군가에게 고민 이야기를 털어놓다 보면 저절로 해결책을 깨달으면서 조언을 얻기도 한다.
가장 친한 존재인 자매가 그런 역할이 되어 줄 수 있다.
그냥 맞장구를 쳐주면서 들어줄 뿐인데도 도움이 된다.
별 거 아닌 일도 같이 하면서 유대감을 쌓아가는 자매의 관계는 선물과 같다.
반면 남동생과 나는 2달에 한 번씩 문자로 생사정도를 확인한다.
동생한테 문자를 보내려고 이름을 찾다가,
최신연락처에서 너무 멀리 내려가 있어서 깜짝깜짝 놀랄 때도 있다.
그나마의 연락도 주로 프로야구 이야기인데,
LG광팬인 남동생이 초보자인 나에게 남은 일정이나 감독, 선수기용 등에 대해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
가끔씩이나마 동생과 주고받는 연락도 재미는 있다.
자매만큼은 아니어도, 부모님 삼촌 조카 자식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가족은 함께한다.
때로는 친한 친구가 가족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편한 관계이면서도 서로 배려하고 지지하며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도 자매못지않다고 생각한다.
늘 자매를 부러워하는 나이지만, 아쉽더라도
내게 주어진 다른 존재들에 감사하며 관계를 소중히 해나가는 건 어떨까 싶다.
이번엔 아직 2달이 되진 않았지만,
간만에 그나마 하나 있는 무심한 남동생과 오래된 친구들에게
안부 연락이나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