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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 윤 Jun 20. 2023

5인가구 우리가 캠핑을 가는 이유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삶이 무료하고 단조롭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렇다고 바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뭔가 하루 루틴대로 살고는 있는데 권태를 느낀다. 이럴 때 사람들은 여행을 가곤 한다.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활력을 얻는다. 나의 경우도 책을 읽거나 판타지 영화나 소설을 보며 새로운 환경에 있는 자신을 상상해 본다. 주로 극한 환경을 상상하면서, 자신을 아주 격렬하고 도전적인 곳으로 몰아넣어 본다.



이를 테면 남극의 셰프나, 마션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무슨 영화를 좋아하는지를 통해 내가 가장 어렵게 느끼는 감정이 뭔지도 알 것 같다. 주로 고립감과 정해진 미션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교류할 사람이 없는 단절된 공간 속에서, 맡은 일을 성실히 처리해야 하는 사람들. 영화 속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현실에 새삼 감사하기도 하면서 그들의 마음가짐과 의지를 배우기도 한다.





남편과 나는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종종 캠핑을 한다. 에너지가 넘치는 세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만 있을 순 없으니 일단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돈 들여 캠핑장에 가도 좋겠지만, 이미 시골이라 동네 바다나 얕은 계곡에 텐트를 친다. 사실 아이들은 밖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좋아한다. 다 같이 여가시간을 즐긴다는 게 주목적이지만, 나로서는 캠핑이 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월화수목금금금 육아로 늘 지쳐 있는 나와 남편. 주말쯤 되면 인생이 이게 뭐냐 우울해질 수 있다. 바로 그때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편하게 살아왔는지 새삼 깨닫는 체험을 하는 것이다. 극한 상황의 영화를 보며 현실에 감사했듯이, 같은 맥락으로 야생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체험을 하고 우리 집이 얼마나 아늑하고 감사한지 절실히 느껴본다.



우리의 캠핑 일과는 이렇다. 일단 우리가 있을 곳이 필요하니 자리를 잡고 텐트랑 어닝을 친다. 자잘한 의자와 테이블 설치는 기본이고, 그 외 필요한 집기들을 정리한다. 장난감이 없어 심심한 아이들은 각자 흙이나 나뭇가지를 주우며 논다. 그들의 요구사항과 안전을 케어하며 잠시 시간을 보내다, 테이블 위에 먹을거리를 옮기고 식사 준비를 한다.





휴대용 캠핑버너에 이것저것 재료들을 집어넣는다. 조리도구가 없으니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요리를 만든다. 다행히 밖에서 대충 먹는 음식은 뭐라도 맛이 있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벌써부터 진이 빠져버린 남편과 내가 제일 많이 먹는다.



더운 날씨에 일도 많으니 땀이 뻘뻘 난다. 작은 작업도 도구가 여의치 않으니 시간이 걸린다. 그 와중에 에어컨 없이 작은 선풍기를 돌려보지만 더운 바람만 열심히 분다. 간간히 부는 더운 자연바람은 열심히 설치한 어닝을 자꾸만 무너트린다. 내리쬐는 땡볕아래 어닝을 재설치하고 있으면 자기들끼리 놀던 애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우는 아이를 몇백 미터 밖의 이동실화장실까지 데리고 다녀와야 한다.



덕분에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집에 있을 때는 무료하게만 흐르던 시간이, 밖에서는 설거지나 화장실 다녀오기만 해도 순식간이다. 돌아오자마자 첨벙첨벙 계곡에서 물놀이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그 사이 얼른 다음 식사와 수건과 여벌 옷을 준비해 둔다. 자연을 느긋하게 즐긴다기보다는 그야말로 실전이고 생존이다. 웨에엥 어느새 찾아온 모기떼와 파리떼를 피해 모기향을 피워본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작업들. 계속되는 전투 육아. 하나도 편한 게 없는 상황.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저녁까지 먹고 나서야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정말 편안하게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한잔의 음료를 마시는 이 순간을 위해 달려왔나 싶을 정도다. 조용한 음악을 틀고 온 가족이 의자에 둘러앉아서, 버너에 구운 마시멜로우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숨을 돌린다. 고생한 하루 끝의 작은 보상이다. 물론 그 뒤로 집에 돌아올 때는 모두 반쯤 기절해 있다.





캠핑에는 아이들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육아 시간을 해결한다는 것 말고도 장점이 있다. 돈을 아낀다는 것이다. 5인가구인 우리는 뭘 해도 돈이 많이 들게 마련인데, 집에 있는 음식을 싸 가서 원한다면 숙박까지 하고 올 수 있다. 주말에 돈을 써야 바쁜 주중을 보상받고 좀 쉰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생각이 바뀌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좋은 집과 차를 가지기 힘들어 경험을 소유하는 형태로 여행을 가서 사진을 남긴다는 말을 들었다. 현실이 무료하고 답답하다고 느낄 때 여행은 좋은 선택이다. 미디어 속 특이하고 화려한 여행지에서 활력을 얻기도 하지만, 역으로 가까운 지역 캠핑과 같은 저렴한 활동으로 일상에 새로움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캠핑 장비에 집중해서 너무 사들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소유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불편하고 뭐가 없는 곳에서 지내다 보면, 지금까지 가져온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 꿉꿉하고 후덥지근한 야외에서 화장실 한 번 편하게 가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는 그간 얼마나 편하고 쾌적하게 화장실을 다녀왔는지 깨닫는 것이다. 간헐적 단식으로 몸을 정화하듯이 간헐적 문명단절로 삶도 정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 물론 갔다 와서 몸살은 덤이다.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 같은 기분으로 나무늘보처럼 움직인다. 남은 하루는 다 같이 드러누워 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시간도 가져 보자. 그리고는 충분히 재충전이 되었을 때, 평소와 같은 삶을 평소와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다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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