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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Feb 02. 2021

'게임스탑', 게임은 멈추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자세한 게임스탑 사태 설명과 '진짜' 문제점

지난주 뉴욕증시가 급락한 요인 중 하나로 게임스탑 발 공매도 대란을 말씀드렸는데요. ‘게임스탑’ 주식에서 시작된 미국의 공매도 대란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게임스탑 발 충격은 미국 증시에 엄청난 변동성을 가져온 데 이어 우리나라 주식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요. 오늘은 이번 공매도 대란의 자세한 내막과 이번 사태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를 총정리해 보려 합니다.


‘게임스탑’에서 시작된 불씨

이번 공매도 대란이 ‘게임스탑’이라는 기업의 주식을 두고 시작됐다는 것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게임스탑(GameStop)은 미국의 오프라인 게임 소매 업체입니다. 주로 비디오 게임이나 콘솔 게임기를 판매하는 업체인데, 미국의 쇼핑몰이나 동네에 꼭 하나씩 있던 ‘추억의 게임가게’ 느낌이었죠. 하지만 여느 오프라인 소매 업체들이 그렇듯, 게임스탑은 온라인 시대를 맞아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의 코로나 확산은 게임스탑의 사업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2017년 약 25달러였던 게임스탑의 주가는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걷다가 코로나 확산 이후 한때 2달러 선까지 떨어졌죠. 그러다가 연말에 엑스박스와 플레이스테이션 5와 같은 신형 콘솔 게임기 출시 소식이 들려오고, 게임스탑의 이사진에 유명 창업가 라이언 코언이 새롭게 참여한다는 소문이 나오면서 주가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게임스탑의 주가는 다시 20달러 수준을 회복했죠.


이렇게 조금씩 주가가 올라가던 게임스탑은 공매도 세력의 좋은 표적이 됐습니다. 공매도란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뒤,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을 사서 갚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일단 빌려서 먼저 매도한 뒤 이후 주가가 내리면 더 싸게 사서 갚으면 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주식투자와는 달리 주가가 떨어질 때 이익을 얻게 됩니다. 공매도를 하기 위해선 주식을 빌려야 하는데, 개인 투자자들에겐 주식을 잘 빌려주지 않아 주로 기관투자자들이나 헤지펀드가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죠. 게임스탑은 애초에 오프라인 기반의 소매 사업이어서 장기적으로는 경쟁력 약화가 뻔한데도 주가가 올라가니, 헤지펀드들은 공매도하기 딱 좋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언젠가는 사업이 잘 안돼 주가가 내려가고, 그때 주식을 사서 되갚으면 그만큼 이익을 낼 수 있으니까요. 특히 이번에 수조 원 대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진 맬빈 캐피털은 게임스탑의 주식을 무려 5천 만주나 공매도했다고 하죠. 심지어 이들 헤지펀드가 공매도한 주식이 총 유통주식의 140% 일 정도였습니다. 


영-차! 영-차! 헤지펀드를 무너뜨리자!

한 편에서는 헤지펀드들의 막대한 공매도가 있었고, 다른 한 편에는 ‘레딧’ 이용자들의 협공이 있었는데요. 사실 게임스탑의 주가를 폭등시킨 것은 미국의 한 커뮤니티였습니다. 미국에는 유용한 정보나 새로운 소식을 공유하는 ‘레딧’이라는 초대형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는데요. 레딧에는 WallStreetBets(WSB)라는, 모험적인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투자성과와 의견을 공유하는 게시판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작년 7월경부터 몇몇 이용자들이 게임스탑에 엄청난 공매도가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고, 개인들이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해 버린다면 공매도를 건 헤지펀드들을 망하게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이후 유명 투자자들의 투자 소식과 라이언 코언의 이사회 합류 소식 등 긍정적인 소식들이 전해지자 개인 투자자들이 게임스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요. WSB의 이용자들은 서로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게임스탑의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합니다. 

게임스탑의 주가 변동과 거래량 추이

이들이 주식을 매수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주식을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주가가 오르는데요. 주가가 오르면 엄청난 수량으로 공매도를 걸었던 기관들이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됩니다. 공매도는 이론적으로 수익은 한정적이지만 손실은 무한대까지도 발생할 수 있는데요. 순서상으로 먼저 주식을 매도하고 이후 주식을 매수하는 것이므로, 매도 가격은 고정돼 있고 추후 매수 가격에 따라 손익이 결정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주가가 0원까지 떨어진다면 매도 가격만큼을 최대 수익으로 가져갈 수 있지만, 만약 주가가 올라간다면 올라가는 만큼 손실은 무한대까지 날 수 있죠. 예를 들어볼까요? 현재 100원짜리 주식을 공매도한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이후 주가가 0원까지 떨어지면 0원에 주식을 다시 사서 갚으면 되니까 100원만큼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가가 계속 올라 100만 원이 되면, 100원에 판 주식을 100만 원을 주고 다시 사서 갚아야 하니까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되죠. 지금 벌어지고 있는 공매도 대란이 바로 이 상황입니다.


사실 주가가 조금 올라도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공매도 세력에겐 별 영향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가가 폭등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게임스탑의 주가가 계속 오르는데도 협공에 참여한 개인들은 주식을 팔지 않고 연대를 이어갔습니다. 여기에 벼락 수익을 노리고 들어온 개인투자자들, 공매도 세력을 혐오하던 일론 머스크, 유명 투자자들까지 가세하며 주식을 사들였고, 결국 게임스탑의 주식은 며칠 만에 수백 퍼센트 폭등해버렸습니다. 5천만 주 공매도를 걸었던 맬빈 캐피털은 백기를 들고 공매도 포지션을 철회했고, 공매도에 동참했던 시트론 리서치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자사의 “투자 손해율이 100%”라며 “앞으로는 공매도 보고서를 내지 않겠다”라고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는데요. 개인 투자자들이 게임스탑처럼 공매도 비중이 높은 주식을 찾아 싹쓸이 매수에 나서면서 AMC, 블랙베리, 노키아 등 기업의 주가가 급등했고, 여기에 공매도를 걸었던 헤지펀드들이 또 수조 원의 피해를 보게 됐습니다. 


헤지펀드들은 공매도했던 주식을 갚아야 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가지고 있는 다른 우량 주식을 팔아 공매도 주식을 사야 했는데요. 이들이 반강제로 주식 대량 매도에 나서면서 뉴욕 증시가 급락했고, 이 여파가 코스피까지 전해졌습니다. 게다가 개인 투자자들의 투기 심리와 기관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시장에 팽배해지면서 시장의 변동성도 순식간에 높아졌습니다. 변동성이 높아졌다는 것은 작은 요인에도 주가가 크게 등락하는 것을 의미하죠. 


분노의 총공격, 효과는 굉장했나?

이번 게임스탑 사태에 불을 붙인 것은 월가의 기관투자자들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분노였습니다. 월가에 대한 뿌리 깊은 분노가 개인투자자들을 자극하고 있는 것인데요. 출발은 2008년 금융위기인데요. 월가의 기관투자자들의 탐욕이 금융위기를 촉발했음에도, 이들은 반성 없이 계속해서 개인 투자자들의 피를 빨아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죠. 특히 개인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주식을 공매도한 뒤, 공매도 보고서를 내며 주가 하락을 부추기던 기관들에 대한 분노가 컸는데요. 이런 분노가 여러 가지 요건들과 맞아떨어지며 이번 사태를 촉발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사실 기관투자자들은 개인들이 결코 이기기 어려운 존재로 생각돼왔는데, 이번 사태는 개인투자자들이 거의 처음으로 기관을 무너뜨렸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불신’의 문제는 게임스탑 사태 와중에도 부각됐는데요. 미국에서는 1,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로빈후드’라는 증권거래 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빈후드는 게임스탑의 주가 계속 폭등하자 임의로 게임스탑의 주식 거래를 중단시켜 버렸는데요. 로빈후드는 이용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개인투자자들은 로빈후드도 결국 월가의 기관들과 한 편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일부 이용자들은 소송까지 나서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로빈후드의 행태를 비판하고 나섰죠.


그렇다면 이런 ‘분노의 총공격’은 월가에 대한 유효한 공격이 됐을까요? 또, 정말 주식시장을 민주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절반 정도는 맞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일단 공매도로 수익을 올리던 기관들이 실제로 큰 타격을 입고 자산이 반 토막 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일부 헤지펀드들이 공매도로 막대한 손실을 본 것은 맞지만, 이건 사태의 일면일 뿐이라는 것이죠. 실제로 이번 공매도에서 큰 손실을 본 맬빈 캐피털에 투자한 헤지펀드 ‘시타델’은 초단타 거래 전문 회사도 소유하고 있는데요. 거래량이 늘어날 경우 수익도 늘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이번 사태로 돈을 더 벌어들였을 것이라는 거죠. 월가 기관들의 포트폴리오는 워낙 다양해 공매도 기관을 때려눕힌다고 기관들 자체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또 다른 회의론은 이번 사태가 공매도의 기능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입장인데요. 물론 공매도 세력이 투기 세력인 경우도 많지만, 공매도는 동시에 투기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적정한 기업가치와 주식의 가격이 지나치게 괴리될 경우, 공매도 기관들이 손실을 볼 위험을 감수하고 그 갭을 메우는 것인데요. 가령, 적정한 가치가 50원인 주식이 과열된 투기 열풍으로 100원에 거래되고 있다면, 공매도 세력이 무한대의 손실을 볼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매도를 걸어 주식 가격을 떨어뜨리고 적정 가치에 수렴하도록 만드는 것이죠.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매도 세력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서 공매도의 기능에 대한 합의가 무너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게임이 끝나고 구름이 걷히면…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볼 것은 ‘누가 진짜 적인가’입니다. 이번 사태에선 공매도 세력을 ‘적’으로 규정하고 개인투자자들이 맹공을 쏟아부었지만, 정말로 공매도 세력이 개인투자자들의 적이 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립니다. 일각에서는 공매도 세력이 아니라,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면서 게임스탑의 기업가치를 떨어뜨린 독점기업들이 시장의 적이라는 지적도 내놓고 있는데요. 공매도 세력은 단지 떨어진 기업가치와 주가의 갭을 메꾸려 했을 뿐이라는 것이죠. 결국, 이번 공매도 대란은 ‘악의 축’을 무너뜨린 사건이라기보단 금융시장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무너졌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평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월가 점령 시위

그렇다면 이번 공매도 대란이 끝나면 시장은 어떻게 될까요? 개인투자자들은 기업의 성장성이나 거시경제의 흐름보다는 공매도 세력에 대한 분노와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게임스탑을 비롯한 기업들의 주식들을 대거 매수했는데요. 이렇게 오른 주가는 이들 기업이 앞으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언제든 폭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지금도 언제 주식을 뺄지 눈치싸움이 치열한데요. 게임스탑의 주식도 하루 만에 반 토막이 났다가 시간 외 거래에서 다시 70%가량 반등했죠. 공매도 세력에게 한 방 먹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제 언제든 다시 한 방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와 버린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하락을 기대하며 다시 공매도에 나선 기관도 있다고 하죠. 힘겨루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미국 증시의 변동성, 그리고 그에 따른 긴장감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사태는 우리나라로도 확대될 조짐이 보이는데요. 우리나라의 개인투자자들도 공매도 비중이 높은 셀트리온 주식을 막대하게 사들이며 기관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한국 주식투자자 연합회’는 공매도 대항 운동으로 공매도의 폐해를 바로 잡겠다고 나섰죠. 물론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일일 상한가와 하한가 제한선이 있어 미국과 같은 대란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과연 이 사태가 어떤 파문을 가져올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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