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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Mar 02. 2021

대만은 어디까지 왔을까

대만 경제의 무서운 성장세

대만 경제의 성장세가 무섭습니다. 대만은 작년 코로나 확산 속에서도 3%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1991년 이래 처음으로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뛰어넘었습니다. 작년 한 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는데요. 대만 당국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4.64%로 예측했는데, 우리 경제의 내년 성장률 예상치가 약 3%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입니다. 과거 만 불 가까이 차이 나던 우리나라와 대만의 1인당 국민소득도 그 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요. 작년 대만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9,205불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 추정치인 3만 1,000불에 거의 근접했습니다. 이제 대만의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를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평가도 있는데요. 오늘은 대만이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가 됐는지 다뤄보려 합니다.

대만의 경제성장률 추이 (출처 : 한국경제)

‘하청기지’에서 ‘전자강국’으로

대만은 과거부터 전자 산업으로 유명했습니다. 전반적인 교육 수준이 높고 기술력도 탄탄해 전자기기 생산에서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대만은 세계적인 IT 강국으로 꼽히는데, 전체 GDP에서 정보통신기술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7%, 이중 전자 부품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30%가 넘습니다. 풍족한 농업 생산량과 수출산업 육성으로 대만 경제는 1990년대 후반까지 연간 10%를 넘나들며 성장해왔습니다. 한때 대만은 우리나라가 본받아야 할 나라로 인식되기도 했죠. 하지만 2000년대 초반 IT기업들의 거품이 꺼지며 주가가 폭락하는 ‘IT 버블 붕괴’ 이후 경제성장률은 3%대로 추락하고, 경제성장률에 비해 임금이 상승하는 속도가 더뎌지면서 국민들의 생활 경제도 크게 좋아지지 못했습니다.


전자 산업이 강한 대만은 꽤나 독특한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요. 대만 경제를 떠받들고 있는 대기업들은 다른 기업의 물건을 위탁 생산하는 하청기업이 많습니다. 스마트폰과 반도체 등 많은 전자기기와 부품이 대만에서 생산되고 있죠. 삼성전자의 경쟁자로 알려진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최강자 TSMC도 미국 빅테크 기업의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며 몸집을 불려 왔습니다. 대만에서 가장 매출이 높은 기업이 애플의 제품을 위탁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한 ‘폭스콘’일 정도입니다. 폭스콘은 연내 전기차 생산까지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애플카 생산의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청 기업들이 많다 하더라도 대만은 꽤나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다른 기업이 설계한 제품을 위탁생산하는 OEM 방식보다는 아예 설계부터 생산까지 다 한 다음 위탁기업의 상표만 붙여 판매하는 ODM 방식이 위탁생산의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미국과 일본 기업의 하청을 받으며 성장해왔지만, 지난 수십 년간 대만은 중국의 강력한 견제로 ‘일본의 하청기지’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부상으로 전자 기기와 부품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과거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던 대만의 하청기업들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는데요. 대만 정부도 2000년대 들어 대기업을 중심으로 생산과 유통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유명한 TSMC, 폭스콘, 포모사그룹, HTC도 이렇게 성장한 대기업입니다. 높은 기술력과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재편, 그리고 반도체 사이클이라는 외부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대만의 기업들은 업계에서의 영향력을 크게 높여가고 있습니다.


빛을 발하는 ‘실리콘 아일랜드’

대만 정부도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를 게을 하지 않았는데요. 대만은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가 IMF 경제 위기로 반도체 투자를 축소하는 와중에도, 당시 약 70조 원가량을 투자해 대만 전체를 ‘실리콘 섬(Silicon Island)’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대만은 이후에도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시장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왔습니다. 2018년에는 1,500억 원 넘는 돈을 투자해 AI 반도체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했습니다. 


미국에 이어 반도체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주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면, 대만은 설계(팹리스)와 위탁생산(파운드리), 후공정(패키징)까지 시스템 반도체의 주요 분야 모두에서 높은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 반도체 업체인 AMD와 엔비디아를 이끄는 리사 수와 젠슨 황 모두 대만 출신일 정도로 반도체 생태계에서 대만의 영향력은 높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두각을 드러내는 반도체 업체가 없는 우리나라와 달리, 대만은 시스템 반도체 전 공정에 걸쳐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를 여럿 가지고 있을 정도로 탄탄한 반도체 생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반도체 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워오던 대만은 작년부터 노력의 결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작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과거엔 반도체 업체들이 설계해 생산해놓은 반도체를 전자제품 제조업체들이 구매해서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AI 기술이 발달하고 기업마다 원하는 반도체의 사양과 기능이 달라져, 설계는 IT기업들이 직접 하고 생산만 반도체 업체에 맡기는 경우가 많아졌는데요. 애플이 자사의 맥북에 들어가는 CPU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고 TSMC에 생산을 맡긴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반도체 위탁 생산에 대한 수요가 커지자, 국가 주도로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했던 대만의 기업들이 큰 수혜를 보게 된 것인데요. 대만 기업들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만 60%가 넘는 점유율을 보이고 있어 올해 반도체 수출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최근 차량을 비롯한 각종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공급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차량용 반도체 공급 차질로 자국의 자동차 기업의 생산에 차질이 생긴 독일과 미국 정부가 대만 정부에 반도체 증산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기도 하는 등 반도체 슈퍼사이클 속에서 대만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반도체로 획득한 국제적 위상으로 대만은 미국, 일본과 적극적으로 연합하면서 중국을 고립시키고, 반도체 라이벌인 우리나라를 견제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풀 베팅한 대만

과거 중국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던 대만은 미-중 갈등 국면 속에서 미국 쪽에 베팅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2016년 취임한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은 ‘탈중국 정책’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중국에 진출한 대만 기업을 자국으로 돌아오게 했는데요. 미국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으로 반중 기조를 강화하면서 중국과 긴장 관계에 있는 대만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대만도 TSMC의 미국 애리조나 반도체 공장 건설과 폭스콘의 위스콘신주 패널 공장 건설을 지원하면서 확실하게 미국의 편에 서게 됩니다. 

반중 기조를 내세우는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출처 : 연합뉴스)

이렇게 미국에 베팅한 대만은 미국-일본-대만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의 핵심축으로 편입됐는데요. 특히 미국이 SMIC 같은 중국 반도체 기업에 제재를 가하면서 중국 반도체의 수입이 어려워지자, 미국은 핵심 반도체 생산 시설을 보유한 대만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자국의 반도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선 대만의 반도체 기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대만의 TSMC는 최근 반도체 핵심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즐비한 일본에 반도체 개발 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는데요. 미국과 일본의 지원 아래 대만은 전자 산업에서 안정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과 대만의 갈등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데요.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에 대만의 고위 관리가 초청을 받아 참석하자, 중국이 수십 대의 전투기를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띄워 무력시위를 벌였습니다. 이에 미국은 남중국해에 항공모함 전단을 파견했는데요. 이런 긴장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 어느 쪽도 대만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면서 아슬아슬한 관계는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는 백신과 대만의 개각을 두고 다시 중국과 대만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요. 대만은 중국이 대만의 화이자 백신 도입을 막았다며 성명을 냈지만, 중국은 “날조”라고 반박했습니다. 여기에 최근 대만은 안보 라인 개각을 통해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입장을 분명히 했는데요. 중국은 이에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전투기를 출격시켜 항의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미국을 택한 대만은 미국의 지원과 높은 반도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높은 성장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최근 대만의 모습은 과거 미일 반도체 협정 이후 큰 수혜를 본 우리나라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는데요. 1986년 일본 반도체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자 미국은 ‘미일 반도체 협정’을 맺어 일본 반도체 업계를 초토화했습니다. 그 와중에 큰 혜택을 본 것이 우리나라의 반도체 업체였는데요. 삼성전자는 일본 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휘청이는 사이 시장 점유율을 무섭게 늘려갔고, 어느새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가 됐습니다. 대만도 중국 기업을 압박하는 미국의 편에 서서 반사이익을 누리고 반도체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늘려가며 높은 성장을 이룩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를 무섭게 따라잡고 있는 대만. 과연 대만은 반도체를 무기로 ‘다시 떠오르는 용’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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