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스민 엄마의 자리

엄마와의 이별 그 후

by 바람

나는 용서한다.


한 낮,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병원까지는 한 시간 거리. 병원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엄마의 부음을 들었다.




열흘 전이었다. 엄마는 다시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이번에는 힘들 것 같다는 연락이 가족들 모두에게 전달이 되었고 그날부터 매일 병원을 찾았다. 어느 날은 저녁에, 어느 날은 밤을, 어느 날은 새벽에. 7남매 중 멀리 있는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병상에 빙 둘러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자신의 얼굴을 엄마와 마주하고, 몇 째 딸, 누구누구 신랑, 누구누구의 엄마, 아무개 등등의 확인 절차를 거쳤다. 새로운 방문객이 병실에 들어올 때마다 확인 작업은 처음 온 것처럼 계속됐다.

엄마가 알아보네.

아까도 누구라고 이름을 말했어.

정신이 돌아오시나 봐.

맞아, 엄마가 정신이 맑으셔.

그렇게 자잘한 웃음꽃도 피우면서.


산소포화도를 확인하고, 경고음은 계속 울렸다 정지했다 하고, 링거는 주렁주렁 걸려 있고, 영양 주사를 놓는 것이 필요하니 마니 하는 간호사와 큰 언니, 큰 오빠 사이에서의 이야기가 병원 곳곳에 시도 때도 없이 울렸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어른이니…….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것 같은데…….

길지는 않을 거 같은데…….

더 이상 엄마의 존재는 그 자리에 없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원이라도 없게 할 수 있는 것 다 해드려. 선심 쓰듯 내뱉는 아무 말들이 마구 뒤섞이며 날카롭게 귀에 꽂혔다.


응급실을 통해 중환자실을 거쳐 간호사의 말대로 그야말로 잠시 머물 병실에서, 엄마는 본인의 의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난감해 했다. 맑지 않은 정신에서도 스스로 화장실을 가려 했고, 그 움직임이 너무 격해서 주삿바늘을 타고 흐르는 수액에 거꾸로 피가 고이도록 손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키려 했다. 몸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호흡은 계속 불안정했고, 보호자들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며 간호사는 병실에 모인 가족을 질책했다.


엄마의 두 팔은 침상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투쟁은 계속되었다. 진정제가 투여되고, 진통제도 투여되고, 약의 세기를 조절하는 것 뿐, 할 수 있는 상황은 제한적이었다. 엄마의 상태를 알리는 기계음이 경고음으로 바뀌어도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침대 옆 간이 의자에 앉아 손과 발을 닦았다.




책<모리와 함께한 화요일>과 같지 않구나……. 老교수는 당당했다. 내가 이렇게밖에는 더는 움직일 수가 없네. 이번 주는 일어설 수도 없게 됐어. 먹는 것도 이젠 혼자서는 안 된다네. 더 이상 내 힘으로 앉을 수도 없다네. 나를 안아 화장실에 갈 수 있게 도와주게나. 이젠 그마저 필요 없다네. 한결 편해졌지.


책에서는 수치(羞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기억나지 않았다. 아름답게 죽음으로 걸어가는 모습만 기억이 났다. 사려 깊고, 따뜻하고, 존중 받는 느낌들, 죽음을 향한 걸음을 스스로 통제하고 조절하는 너무도 인상적인 그 장면들이.


내 엄마도 그렇게 보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얇은 막을 씌워 놓은 것 같은 가는 다리에서는 투명한 막들이 자꾸만 자꾸만 벗어져 내렸다. 아무리 닦아도 그 막들은 기어코 뼈에 이를 때까지 벗어지고야 말 것처럼 한 꺼풀씩 흩날렸다. 뼈를 갈아 날리는 먼지처럼 공기 중으로 부유했다.


발끝은 푸르스름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놀라고 당황했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드러내면 안 될 것 같았다. 다행히 그날은 어찌어찌 감출 수 있었다. 생명이 잦아드는 상황을 마주하며 나의 마음에는 두꺼운 벽이 둘러졌다. 무서움인지 두려움인지 모르게 무작정 아팠고 소리를 낼 수 없게 슬펐다. 어떤 여유도 없는 준비 안 된 이별이었다.




장례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 날 이후, 연수에서, 상담에서, 그 밖의 모든 모임에서 나의 화두는 죽음이 되었다. 엄마의 죽음과 나의 죽음을 연결지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죽음을 맞이할 때의 자세라고 늘 얘기했다. 잘 죽기 위해 잘 사는 것이 필요하다고,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 한다고, 잘 죽고 싶다고 강조했다.


나는 엄마의 죽음을 마음대로 재단했다. 잘 떠나시지 않았다고 규정하고 단정지었다. 그러한 생각의 바탕에 나의 책임을 끼워 넣었다.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각들이 많아졌다. 형제들을 향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전했다. 아이들에게는 평온함을 포장해서 보여주었다.


일곱 남매들은 엄마의 부재를 나름 견디고 있었다. 만날 때마다 상실감과 그에 따르는 상황들을 저마다 솔직하게 고백하곤 했다. 아쉬움과 원망, 한탄이 담긴 말들은 함께 들이키는 맥주의 거품처럼 풍성하게 쌓이고 곧 소멸되었다. 그런 하루마다 자책은 더 두터워지고 덕지덕지 들러붙었다.




3년이 지나는 동안 혼자, 또 둘이, 다섯이, 엄마 모신 곳을 찾았다. OK목장, 엄마를 모신 그곳의 입구, 산길로 오르는 비좁은 길을 찾는 표지판. 처음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 이름을 겨우 기억해 냈고 찾기 위해 같은 장소를 수없이 맴돌아 도착했다. 이후에도 어두운 길눈 탓에 여러 시간을 헤매다 낯선 길을 돌다 우연히 찾아들었다.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스쳐 가며 그 언저리에서 인사하기도 했고, 긴 시간 우두커니 머물기도 했다.


그곳에 서면 항시 서늘한 슬픔이 밀려들었다. 단정하게 깔린 잔디에도, 노랗게 핀 꽃에도, 주렁주렁 매달린 매실나무 열매에도 감동하지 않았다. 마음은, 발라 놓은 시멘트가 다 깨져 벌건 흙이 뒤덮인 이름만 포장인 비틀린 진입로를 따라, 아무렇게나 싸질러진 소똥처럼 푹 퍼졌고 짓이겨지고 바짝 말라 굴러다녔다.


그러는 동안 엄마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나란히 누워 무심히 걸친 손에 잡히던 말캉말캉 늘어진 뱃살도, 거친 바람의 결대로 깊게 패인 얼굴의 어색하고 수줍은 미소도 없었다. 낮은 음성으로 모질게 던지던 한풀이와 가난한 살림살이의 고단한 이야기도 더는 없었다.




자책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새로운 화두를 쥐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날, 밤새 영정사진 속을 비집고 나온 기억의 단서들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떠나시는 길에 너저분하게 치렁치렁 걸어 놓았다. 어리고 메마른 감상이었고 어설픈 존중과 배려였다. 그것이 나를 가두고 엄마를 가둔 것은 아니었을까.


잘 죽는 것은 여전히 숙제지만, 제출할 대상도, 마무리 짓지 않는다고 다그칠 사람도 없다. 천천히 다독다독 마무리하고 싶다. 나의 부족함을 감추려고 당신을 서걱거리고 부유하게 만들었던, 자책이 무서워 가로 막고 매달렸던, 서늘한 기운으로 나와 당신을 경계세운 그 철없음을, 이제는 용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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