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것에 기대는 마음

-길에서 만난 비름나물과 돌나물

by 바람

결혼하고 만 3년도 안 돼서 네 번째 이사였다. 의정부와 서울이 인접한 의정부시 호원동. 옛날 집들이 허물어지고 도로 주변으로 새로 단장이 되는 연립주택단지가 큰 규모로 들어서는 동네 안쪽에 2층짜리 다가구 주택단지가 있었다. 그곳 1층, 작은 방 하나 부엌 하나가 나란히 연결된 집이 우리가 이사 온 집이었다. 남편 따라 흘러온 그곳에 시댁 쪽으로 사촌 시누이가 근처에 살고 있었다. 시고모님의 외동딸, 시댁 식구들과는 막역하게 지내고 있고 큰시누와는 나이가 같아 동갑내기의 우애를 과시하며 남다르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촌이었다.


남편과 사촌 시누이는, 남편이 어렸지만 누나 호칭을 붙여 서로 이름을 부르며 통화를 했다. 그 또한 전에 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들 때문에 낯설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했고, 결혼을 빨리했고, 남자 형제 셋 사이에서 일찍부터 친정을 두루 챙기던 이였다. 억척이란 건 모르게 생긴 얼굴과 작고 수수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액수는 크지 않지만 목돈을 굴려가며 일수놀이를 해서 살림을 키우는 재주가 있던, 야무지고 단단한 몸매를 지닌 그였다.


우연찮게 깃든 동네. 제법 큰 개천이 시누이 집으로 가는 길에 흐르고 있어 한참을 걸어 차가 다니는 다리를 건너 다시 맞은편으로 와야 하는 그 집을, 저녁이 되면 남편 오기를 기다려 자주 찾았다. 사촌이라는 거리를 무시하고 친누이 대하듯 하며 갔고, 그 집의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둘은 우리 아이들을 반겼다. 시누이 부부는 어쩌다 가까이 살게 된 친척에 대해 거리를 두지 않았다. 특별한 것 없이 큰 소시지에 달걀 입혀 부친 것, 호박 얇게 썰어 양념장 얹어 쪄 놓은 것들이 반찬으로 올라왔고 그것들을 맛있게 먹었다.


시간이 지나며 사촌 시누이가 낮에 집에 있을 때는 혼자서도 찾았다. 중간에서 만나면 개천 옆에 지천으로 널린 쑥도 뜯었고, 입맛 돌게 한다는 돌나물도 뜯었다. 비듬나물로 알고 있던 비름나물도 모양을 알고 나서는 같이 뜯어 다듬고 데쳐 어느 날은 고추장에 어느 날은 된장에 무쳐 먹었다. 잊고 있던 쑥은 조물조물 쑥개떡으로 탄생했다. 맛있게 먹은 날, 돌아오는 길에 아이 하나는 걸리고 하나는 둘러업은 채로 개천 둑길에 한참을 엎드려 나물을 캤다. 집에 가져와서 같은 맛을 내보려고 노력했지만 가져온 나물은 입으로 들어가지 않고 번번이 쓰레기로 버려졌다.



돌나물도 마찬가지였다. 물김치를 담근 것도 초고추장에 무친 것도 그 집에서는 맛있게 먹었는데, 집에 와서 하면 그 맛이 나질 않았다. 물김치는 소금만 쓰고 버렸고, 나물을 초고추장만 잔뜩 만들어 양념도 나물도 버려졌다. 나물을 좋아할 나이가 아님에도 나물이 궁금해진 것도 아마도 그때부터였지 싶다. 식당에 가면 나물을 어떻게 조리하면, 어떻게 조리했기에 그런 맛이 나는지 궁금해했다.


친정을 찾았을 때 올케의 나물이 맛있다고 느낀 것은 엄마가 음식에서 손을 떼고 난 후였다. 엄마의 맛과는 달랐지만 올케는 시래기나물과 고사리나물을 맛있게 볶았다. 폭 익어 줄기가 야들야들하고 간장 베이스에 양념이 잘 배어있는 그 나물을 먹으며 처음으로 올케의 반찬이 맛있다고 생각했다. 집에 와서 같은 조리법으로 나물을 만들려고 제사 때나 명절 때마다 여러 번 공을 들였고, 이제 조금 그 맛을 흉내 내고 있다. 내처 비름나물과 돌나물도 시장에서 사서 가끔 무쳐 먹으며 버려진 것들에 예를 표하고 있다.


개천가 둑길에 지천으로 널렸던 비름나물과 돌나물은 처음부터 나에게 반찬은 아니었다. 두 아이들과 부대끼는 일상을, 날마다 조여 오는 듯한 삶의 피로와 슬금슬금 덮치는 위태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들이었다. 한 시간 나물을 보며 걸어 시누이 집으로 갔고, 다시 한 시간 걸어 나물을 만나고 오는 길에서 시들어가는 나의 삶을 위로하는 왕성한 푸름을 만났다. 그리고 내일 또 같은 모습으로 반길 것이라 기대하는 절실한 이별을 했다. 중요한 약속처럼 하루하루의 삶을, 말 못 하는 것들로부터 마음대로 허락을 받았다.


시골에서 자라지도 않았고 나물 음식을 잘하지도 못했다. 종류별로 나물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내게 익숙한 이름은 비름나물과 돌나물이었다. 비듬나물로 알고 이름도 고약하다 생각한 비름나물인 비듬나물이, 돌나물이 척박한 나의 한 때를 붙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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