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흔적이 주는 의미

시어머니의 싱거 미싱

by 바람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집안의 셋째 딸. 관습적으로 듣고 흘려버린 그 말을 곱씹어 보았다. 늘 대접해 주기 때문에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점잖을 떠는 맏이와 온갖 귀여움과 좋은 것들은 독차지하는 막내 사이에서 위아래로 치이며 오로지 눈치로 적당히 말하고 적당히 비위도 맞추고 적당히 가꾸고 적당히 희생하고 적당히…… 적정선을 잘 지키며 살아남아서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셋째 언니는 모든 식구들의 가슴에 맺힌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며 두루두루 마음을 받아주는, 모두가 편해하고 편애하는 언니였다. 그 언니를 만나러 집을 나섰다.


결혼 이후로 가족과의 만남 전에 늘 셋째 언니와 먼저 통화를 했다. 오는지 안 오는지를 묻는 것이 시작이었다. 혼자 답답한 마음에 지쳐 엄마 없는 친정이 그리울 때에도 무심한 듯 셋째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날은 멀리 타국에서 5년을 있다가 모처럼 한국에 들어온 넷째 언니와 우리 형제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일곱 남매 가운데 위에 언니와 오빠를 제외하고 아래로 다섯이 만나기로 한 약속이었고, 주제넘게도 막내인 나는 셋째 언니의 사는 모습이 걱정도 되고 가 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어, 약속 장소로 가기 전 언니와 같이 있다가 이동할 계획으로 길을 재촉했다.


아이 둘을 키워 딸은 시집보내 멀리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고(요즘은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언제든 볼 수 있지만), 아들은 따로 직장 다니며 지내고 있어 혼자 조촐히 작은 집을 마련해서 속 편하게 산다고 당당히 말하는 언니였다. 언니가 하는 일은 미싱 일이었다. 외주를 받아 홈쇼핑으로 판매하는 옷들을, 한 파트를 맡아해서 생활을 하고 있고, 어지간한 직장인보다 시간도 자유롭고 벌이도 낫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일이 고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마는 어린 시절 큰 공장에 다니며 여러 사람들의 눈치와 속도에 맞추기 위해 실수도 하고 야단도 맞으며 배우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낫다는 말로 알아듣었고, 상황이 많이 달라져 이제는 웃을 수도 있게 되었다.


집에 가 보니 작은 마당을 지나 두 개의 방 사이로 작은 거실이 위치한 일자형의 단출한 단독주택이었다. 쏙 파묻혀 있어 느낌에 작다는 생각보다 아늑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방 하나는 침실, 하나는 작업실로 쓰고 있었고 작업실에 공업용 미싱 두 대가 용도에 맞게 놓여 있었다. 너풀거리는 어깨 장식을 만들고 있었다. 넓적한 고무 밴드를 일정한 크기로 잘라 그 위에 댄 천을 주름을 균일하게 잡아 예쁜 모양이 나오도록 하는 작업이었다. 미싱을 보다 보니 예전에 시어머니가 집에 들여놓은 미싱이 떠올랐다.


신혼 초 어머님은 당신이 쓰던 미싱을 우리가 사는 집에 가져오셨다. 앉아서 무릎으로 누름 판을 눌러주면 바늘 추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크기는 작지만 전문가용 미싱이었다. 미싱이란 것을 처음 만져 보았다. 무딘 손은 아니어서 고등학교 가정 시간 솜씨를 발휘해 만드는 것마다 칭찬을 받은 기억이 있다. 주로 손바느질이었지만. 기계는 달랐다. 바늘 근처에 손이 지날 것 같으면 그 무서운 바늘에 손이 콕 박힐 것 같은 두려움이 번졌다. 바느질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기계를 만지는 것이 겁이 났다. 처음에 몇 번 상자에 들은 기계를 꺼내 놓고 바느질을 시도하다 곧바로 상자 속으로 들어가 구석 자리에 장식처럼 놓아두게 되었다.


집에 들르면 어머니는 그 미싱을 확인했다. 미싱이 담긴 나무상자를 이리저리 조립하면 뚜껑이 미싱을 받치는 테이블로 마치 트랜스포머의 자동차처럼 변신하던 그것. 모퉁이 고임용 나무 대가 빠져 몇 번을 삐걱거리다 간신히 구멍에 맞춰 미싱의 형태를 유지하던. 손은 야무지다 생각했지만 기계치였고 그 미싱은 손을 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삐걱거리는 상태로 그냥 두고 말았던 그 미싱을 제일 먼저 찾았고 사용하는 지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직접 꺼내서 몇 가지를 드르륵 박으며 사용하시다 자투리 옷감들을 바구니에 아무렇게 놓아두시고는 했다.


뜨끔 거리는 뒤통수를 외면하고 식사를 차리고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어머님이 머무신 그 시간을 간신히 보내곤 했다. 당시 젊은 주부들 사이에서 미싱으로 아기 옷을 만들어 입히는 것이 유행이긴 했다. 그들의 미싱은 다루기도 쉽고 기름기 없는 플라스틱 외장에 가볍고 색도 하얀 것이, 옷감을 올려놓으면 구름판 없이도 자동으로 바느질이 된다는 미싱이었다. 그런 것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집에 있는 것을 외면하고 새 것을 살 수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식사를 마치면 어머니는 하던 것을 그대로 둔 채 당신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셨다.


며칠 전 들른 카페에서 미싱이 놓여있던 테이블을 만났다. 발판을 구르면 미싱과 연결되어 바늘이 저절로 움직이던, 전문가의 포스가 풍기던 그것. 집에 가져왔던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 집에서 보았고 다시 언니 집에서 보았던, 그 발구름판과 연결된 미싱 테이블이 카페 테이블로 변신해서 놓여있었다. 커피물은 잔뜩 머금은 색으로 근사하게 변신한 카페 테이블에 커피와 각종 필기구와 책을 올려놓고, 미싱 없는 발판을 한참 구르며 여러 단계를 거쳐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배우고자 했으면 배웠을 것이다. 집에 있는 미싱도, 어머니 집에 있던 좀 더 전문가용의 미싱도. 강요는 안 했지만 어머니는 그것을 배우기 원하셨던 것 같다. 그것을 외면한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미싱에 내 삶이 묶일 것 같았다. 그 미싱이 유명한 싱거 미싱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 마음을 더 닫았다. 한 번 시작하면 그 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고 다른 이도 아닌 시어머니의 권유여서 더욱 싫었다. 미싱을 집에 가져왔을 때 고생스럽게 살던 언니의 모습을 떠올린 것인지도 몰랐다. ‘시’ 자 들어간 것은 우스갯소리 말도 입 밖으로 한 번도 내지 않았지만 마음은 그보다 더했다.


그렇게 지독한 마음을 갖고 살았는데 지금 미싱의 발판이 반가운 것은 무엇일까.

씁쓸하지만 그것도 추억이라고?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해 주어서?

지난 시간을 정리해서 털어내고 싶어서?

그래도 이것으로 언니의 삶이 살아져서?

마음이 어떻든 이렇게 덤덤히 마주할 수 있다는 것과 반가움이 인다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 커버 이미지 : 싱거 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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