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강의를 듣고
생애 처음으로 들은 글쓰기 강좌 제목이었다. 일상을 차곡차곡 담는 것까지는 생각지도 않았다. 글을 시작할 수 있다면 족하다는 마음뿐이었다. 처음 모집인원 30명이라고 했다. 첫날 출석 인원이 절반 이상인 17명이었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 낯선 얼굴들에서 기댈 구석을 찾아보았다. 한번 본 적도 없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머릿속은 집에서 나오며 망설이던 시점에서 머물고 있었다. “가서 아니면 다음부터 안 가면 되지 뭐!” 딸의 말을 응원 삼아 발걸음을 내디뎠고 아직 그 생각은 유효하다고 속으로 다짐하고 있던 차였다.
첫 시간 자신을 얘기하는 키워드 세 가지를 제시하며 자기소개를 하자고 하셨고 강사 선생님의 첫 시작으로 주춤주춤 하던 사람들이 조금씩 말문을 열었다. 아직 글쓰기는 멀었다는 생각이 마음에 한가득인데, 마지막에는 8편 정도의 글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김영하 작가의 대학 강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나를 용서한다’를 시작으로 문장을 써보자고 하셨다. 젊은 대학생들도 자기 안에 무슨 사연이 많은지 그 글을 이어 쓰면서 눈물을 펑펑 쏟는다는 덧붙임이 있었다. 나는 경계했다.
낯선 사람들도 불편하고 내가 쓴 글도 불편하고 주제인 나를 용서하는 사연도 불편했다. 그것을 쓰라고 독촉하는 이 상황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앞쪽에서 벌써 쓰기 시작했다. 옆에서도 종이에 주섬주섬 열심히들 적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나를 누가 용서하나. 잘못한 것은 많겠지만 이런 식으로 용서를 누군가에게 받을 사연을 내가 만들었나를 떠올렸다. 그즈음의 나의 화두는 죽음이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3년이 지났어도 나는 여전히 어머니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마음은 다양한 종류의 자책이었다. 이 기회에 어머니가 아닌 내가 나를 용서한다고 해 볼까. 그럴 수 있을까. 될지는 모르겠지만 글은 써지고 있었다.
글쓰기가 어설프게 마무리되고 앞서 몇 분의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발표할 차례가 되었다. ‘나는 나를 용서한다.’ 글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눈물 콧물 다 쏟는, 말도 이어갈 수 없는 눈물의 회고를 하고야 말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글을 완성해서 우리끼리 만든 카페에 다음 주 강의 시작 하루 전까지 올리라고 하셨다. 어설프게 쓰고 울면서 읽는 중에는 몰랐던 엉망인 글의 실체를 마주했다. 정리하고 다듬고 첨가하면서도 이 글의 완성도를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런 글을 읽었다는 사실을, 그 민낯의 부끄러움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슬픈 사연을 이런 어설픈 글에 담았고 혼자 펑펑 울었으니 강의가 진행되는 내내 자다가도 ‘이불 킥’이 절로 되었다.
14주간 우리가 배운 것은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다. 물론 당나라 시인을 호출한 것은 아니었다. 단계에 따라 다양한 책을 소개받았고, 카페에 매일의 필사를 사진을 찍어 올리기로 하였다. 각자의 스타일과 하는 일에 따라 글 쓰는 방향을 코칭받았고 다독을 위해 매주 단계에 맞는 책과 본인의 스타일에 맞을 법한 작가분을 여럿 소개받았다. 스토리를 이어가는 법, 주어와 술어의 호응, 적절한 단어의 선택을 위한 방법, 문장과 문장의 긴밀성 등 적절한 예가 되는 글을 통해 읽고 익혔다. 다작은 충분했다. 한 주에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이 과제였다. 지금 수준의 다작, 그것만은 꼭 해내리라 마음먹었다.
시작이 어렵지 시작만 하면 이야기가 쏟아졌다. 한 편을 시작하면 그 속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담겼다. 이야기들의 부조화도 몰랐고 그것들을 덜어낼 용기도 없었다. 다음 시간에 만나면 그것들을 이야기했다. 하나씩, 하나씩 계획된 단계에 따라 매일 다른 주제로 나의 과거와 만났다. 다상량은 필사와 읽기를 통해 생각의 돌파구를 찾았다. 처음 들어 본 작가의 이름을 소개받았고 서점으로 도서관으로 다니며 찾았다. 많은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이 생각을 파고들게 하였고 글이 되도록 이끌었다. 필사해서 사진 찍어 올리고, 또 필사하고 고운 단어를 만나고 숨은 뜻들을 찾아내고 알아갔다.
강의가 시작되고 매일을 쓰기와 읽기와 생각하기에 시간을 쏟았다. 일정 시간을 나누어 매달렸고, 매일 무언가를 발견하는 듯했다. 7주 차를 넘어서니 글이 5개가 모였다. 첨삭을 받은 것이니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리해서 브런치 서랍에 넣어 둔 글로 작가 신청을 했다. 2일에서 5일 걸린다는 문구가 있었지만 2일이 내겐 간절한 기다림의 시간이었고,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사인이었다. 같이 작가 신청한 모두는 그렇게 같은 조바심을 가졌고 그렇게 작가가 되었고 브런치에서 글을 주고받으며 격려하고 있다.
내가 처음 한 부분도 빠짐없이 필사한 책의 작가를 시립도서관 문학의 밤 행사를 통해 만났다. 강의 시간 내내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정면을 응시했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나를 나에게 설명하기, 자기 언어를 갖기.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자는 누구나 약자다. 자기 언어가 있어야 자기 서사를 말할 수 있다. 그래야 힘이 생긴다.’ 한 번도 연예인을 향해 팬심을 열렬히 표현해 본 적이 없는 나였다. 그런데 팬심이 불끈 솟구쳤다. 나의 언어를 갖고 사회적 힘을 길러보리라 굳게 결심했다.
14주간 진행된 글쓰기 수업이 끝났다. 수료증과 우리끼리 만든 문집 10권이 앞에 놓였다. 우리끼리의 종강 파티 겸 조촐한 대화를 이어갔다. 시작한 글쓰기는 모두의 로망이었고 가슴속 끄집어낼 만한 사연들은 아직도 넘치게 남아있었다. 계속 동아리 형식으로 이어갈지를 논의했다. 아직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과분한 작가(라는 이름)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 결심했다. 그 길에 동료가 10명이 있으니 큰 위로가 되고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