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시대를 배웁니다

- '카공족' 입문기

by 바람

직장을 그만두고 8개월에 접어들었다. 처음엔 게을러도 된다고 유혹한다. 내일이면 또 다른 유혹이 따라온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드라마 좋아하니 그동안 못 본 것 오래도록 보고 있어도 된다고. 나태도 나를 반길 것이다. 청소며 빨래며 안 해도 된다고 하며 오래 누워있자고 하겠지. 이렇게 가다가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잡힐 것만 같다. 허리에서 일어설 근육을 앗아갈 것이다. 흐물흐물해진 일상은 몸을 파괴한다. 그렇게 육신을 잠식당할 것이고. 생각만으로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렇게 처음엔 무료해서, 또 무기력해질 것 같아 집을 나섰다.

우리나라 평균 수명에 비춰 나에겐 아직 30년 정도의 삶이 남았다. 복잡했던 머리를 비우는 쉼도 생각해 보았다. 몸을 편하게 하는 쉼과 마음을 편하게 하는 쉼, 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사이에서 나는 빨리 벗어났다. 고민은 내버려 둔 채로 무작정 새로운 시작이었다.


도서관을 떠올렸다. 반기지 않아도 혼자서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의 나에게 딱 맞는 곳이었다. 용감하게 집을 나섰다. 도서관의 수많은 문화강좌 중 몇을 골라 신청했다. 독서토론 모임, 비경쟁 독서토론 지도자 과정, 글쓰기 강좌, 북큐레이션 자격증 취득 과정을 거쳤다. 강좌가 없어도 지금은 출근하듯 집을 나선다. 평소의 출근 시간보다는 늦은, 동네 아이들 등교 시간에 맞춘 그 시간에. 그렇게 나를 위한 삶을 바쁘게 산다.


도서관에서 강좌가 없는 날은 가끔 카페에 간다. 딸과 함께 갈 때면 들어서고 30분 동안은 메뉴를 고르는 시간이다. 함께 온 딸은 오래도록 음료 프로필을 뒤적인다. 앱을 통해 메뉴, 성분, 칼로리, 음료의 색감까지 확인한다. 어제 고른 것, 며칠 전 마셔본 것, 언제 골라도 실패 없는 것, 안 먹어 본 것 등등. SNS에서 ‘핫’한 메뉴까지 확인한 후로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나의 선택은 간단하다. ‘별다방’에서 ‘가성비’를 따지다니 하겠지만, 나의 선택은 늘 가성비다. 단 것, 찬 것 싫어하고 평소 마시는 커피는 늘 아메리카노. 답은 정해졌다. 오늘의 커피다. 차 한 잔 주문하면 종일 있어도 눈치 볼 일 없는 곳이다. 외부 음식물 반입도 허락된 이곳은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성지라고도 불린다. 해서 아침 일찍 오지 않으면 그나마 편히 책을 볼 수 있는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이곳에서 나는 청춘들과 시간을 공유한다. 필기도구 꺼내고 노트를 펼치고 책도 펼친다. 요즘 하는 것은 필사다. 글쓰기 강좌를 들으며 선생님이 강력하게 권유한 것이 필사였다. 몇 권의 필사에 적합한 책을 항상 들고 다닌다. 그날의 느낌에 끌리는 책을 고른다. 글쟁이들의 글을 필사한다.

사실 나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며 겉멋 들어 정신 못 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집중에서 해도 공부가 될까 말까다. 하물며 늘 음악이 흐르고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가 1미터 이내로 촘촘히 의자와 테이블이 배치된 카페라니.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만만찮은 음료의 가격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직장 잡고 스스로 돈을 벌어야 좋은 카페를 가든 취향에 맞는 차를 마시든 하는 것 아닌가 해서. 숨어 있던 꼰대가 고개를 든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카페에 꽤 왔다. 카페에서 책을 펴는 것이 조금은 익숙해졌다. 다양한 우드 테이블과 그에 어울리는 톤의 내부 디자인, 그리고 벽에 걸린 그림들. 문화를 판다는 홍보처럼 다양한 콘셉트로 청년들의 일상에 깊이 침투하고 있다. 모두가 공부하듯 한 쪽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은 여전히 낯설다. 차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변함없다. 어차피 쓰는 돈이고 얼마 차이도 안 난다고. 이왕이면 맛있는 것을 마시는 것이 어떠냐고 딸은 아직도 강력히 권고한다. 나의 선택을 아쉬워하는 딸에게는 나의 취향이라고 덧붙인다. 확신은 없지만. 굳은 생각은 바꾸기가 어렵다.

오늘도 나는 도서관 대신 카페에 간다. 오늘은 노트북을 끼고서다. 자판을 두드리는 작은 소리가 마음에 닿으며 동시에 진한 커피향이 훅 들어온다. 그동안의 메모를 모아 글을 써 내려간다. 카페 가는 횟수가 더해지며 ‘카공족’이 모두 시험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재택근무자, 프리랜서 등. 다양한 목적으로 공부하는 그들 곁에 나도 한 자리 차지하고 나란히 앉았다. 누군가에게는 나도 ‘카공족’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면서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문화를 만나고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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