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을 통해 어머니를 만나다

by 바람

지난주 채널을 돌리다 인간극장을 틀었다. 사실 인간극장은 우리가 아침시간 잘 보는 프로그램이기는 했다. 보다가 깜짝 놀랐다. 전남 곡성에 산다는 할머니가 나오셨는데, 그 할머니의 목소리와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엄마의 목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툭툭 던지는 말투나 가족들과의 대화, 옷차림과 행동,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하는 모든 것이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주 여사와 같았다. 강한 전라도의 사투리가 아닌 서울 말씨와 약간 다른 말투도 엄마의 목소리 그대로였다. 새삼스럽게 엄마의 목소리가 저랬었지,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엄마의 말투가 고향에서 떠나온지 오래됐고 서울 말씨가 많이 익숙해서 그런 말투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너무 늦게, 가끔 생각했던 궁금증이 풀린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남편과 나는 그 주 내내 인간극장을 시청했다. TV를 시청하며 나는 어머니의 자취를 좇고 남편은 장모님의 흔적을 찾으며 웃었다. 나이 드신 분들은 다 비슷하다지만 봄처녀 이순복 할머니의 목소리는 엄마의 목소리 그대로였다. 올해로 어머니 떠나신 지 4년. 문득 엄마가 그리워졌다.


돌아가시기 직전 병세가 악화되기 전까지 어머니는 딸들에게 매일 전화를 하셨다. 일상적인 대화였다. 밥은 먹었는지, 직장은 잘 다니는지, 힘들지 않은지, 남편(꼭 이름을 부르며 물으셨다.)은 잘 지내는지. 아이들은 건강한지, 아이들이 군대는 갔는지... 엄마의 기억 속에 우리 아들은 늘 군대에서 멈춰있었다. 제대하고 나서도 엄마는 "군대는 갔어?"라고 물으셨다. 나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군대 갔지. 벌써 제대도 했고, 다시 학교에 다녀." 거기까지 말하면 엄마는 항상 "아이고, 돈덩어리네."로 끝을 맺으셨다.


막내 딸의 고생이, 아이들이 어서 자리를 잡아 돈을 벌어오기 전까지는 당신의 딸이 그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마무리가 항상 돈 걱정으로 끝이 났다. 병세가 악화되고 난 후에는 그런 대화가 더 자주 반복되었을 뿐 특별히 자식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없으셨다. 다른 형제들에게는 어떻게 전화통화가 이어졌는지 모른다. 다만 셋째 언니에게는 외롭다는 말씀을, 둘째 언니는 자식들이 형제 중 가장 많아, 애들은 이미 다 컸고 결혼한 자식도 있는데도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한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형제마다 통화의 내용이 조금씩 달랐다.


인간극장을 들으며, 엄마의 건강했던 시절의 목소리가 소환됐다. TV에 나오신 분은 93세의 할머니였지만 정정해 보이셨다. 엄마의 건강했던 시절과는 나이 차이가 있는데도 엄마의 건강한 시절의 목소리를 듣는 듯하여 느낌이 새로웠다. 여든이 넘으신 나이에도 엄마는 집에 가면 밥을 챙겨주셨고 먹고 싶은 것이 있는지를 물으셨다. 생각나는 것을 얘기하면 그것을 만들어 주셨다. 엄마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로 돌아가곤 했었다. 이제는 지나버린 시간의 이야기다.


막내인 나는 엄마와 가장 오랜 시간을 지냈다. 엄마의 얘기도 가장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억들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까맣게 지워졌다. 엄마와의 일들이 하나도 생각나지를 않았다. 엄마를 떠올리고 싶은데, 기억나는 사건이 없었다. 오히려 남편이 툭툭 던지듯 꺼내는 얘기를 들으면 그제야 '맞아, 엄마가 그랬지.' 생각이 떠올랐다. 엄마와의 사소한 것 하나도 다 꺼내고 싶은데 그게 어려웠다. 그러던 중에 만난 엄마의 목소리였다.


다음엔 또 어떤 상황에서 엄마를 만나게 될까. 다시 엄마가 나타난다면, 붙잡아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글로도, 마음에도 새기고 싶다. 그리울 때마다 하나씩 꺼내어 추억하고 싶다. 어느 날 문득 또다시 내 앞에 나타날 엄마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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