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Mar 06. 2020

눈더러 보라고 마음껏 기침을 하자

눈이다.

올 겨울 들어서 처음 보는 눈 같은 눈이다.

나무에 일부러 누군가 척 걸쳐 놓은 것처럼 늘어져 있다.

그러다, 차곡차곡 불어오는 훈풍에 눈물을 뚝뚝 떨군다.


순간, 밑을 지탱하던 것이 무너진다.

후드득!

사람들은 비명을 지른다.

즐거운 환호다.


사진을 찍는다.

똑바로 눈을 뜰 수 없다.

단 몇 초도 깜빡이지 않고 버티기 힘들다.

결국, 셔터를 여러 번 누르고 난 후에야 찡그리지 않은 사진을 겨우 건진다.


새하얀 빛이 눈에 닿을 때마다 쨍한 이명이 들린다.

티끌 한 점 없다.

눈을 앞에 두고 나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눈을 만나면 모두 어린아이가 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문득, 눈은 살아있다,고 말한 까닭을 이해할 것도 같다.

눈은 밟아도 바닥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모든 것을 덮고 감싼다.

스스로 흔적이 없어질 때까지 지킨다.


투명한 반사로 인해 눈이 감긴다.

그것 앞에서,

나의 실체를 마주하기 부끄럽다.

보란 듯이 속을 드러 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껏 해 보라,는 격려가 필요하다.

쟁투[爭鬪]하는 불쌍한 영혼을 위해,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는 눈더러 지켜보라고,

더러운 마음을 다 토해 낼 때까지.


              눈  
                                         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매거진의 이전글 형제 많은 가정,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