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기도에서 주는 그거 신청했어?"
"아니, 어떻게 하면 되는데?"
딸과 하루의 시간차를 두고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을 신청했다. 본인 인증 과정에서의 몇 번의 에러가 있었지만, 옆에서 안내하는 딸의 말을 따라서 무사히 신청했고 어제는 확인 문자도 받았다. 직장에 다닐 때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오던 월급 대신 구직활동이나 취업을 위한 배움을 병행하며 받았던 실업급여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경기도에서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한다는 날짜가 가까워지며 지인들과의 단톡 방에서 적은 금액이지만 국가로부터 챙김을 받는 느낌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서로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아는 대로의 대답이 이어졌었다. 얘기할 당시는 신청일이 아니었고, 우선 경기지역화폐를 신청하고 그것으로 입금되게 처리하면 간단하다는 말들을 나누었다.
처음 재난기본소득 얘기가 나올 당시 인터넷에서는 어려운 사람에게만 주어야 한다는 말과 모두에게 공평하게 모두에게 주는 것이 맞다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그중 눈에 띈 댓글은, 60년을 살아오면서 나라에서 주는 것은 처음 받는다고,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다는 말과 함께 자신은 기쁘게 받겠다는 댓글이 추천 많은 댓글 상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대상을 특정해서 지원하는 것에 대해 누구는 안 된다, 누구는 불공정하다, 고 말했다. 여기서 ‘공정함’의 문제는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 사회 정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의의 영어 표현인 'justice'는 몫을 의미하는 라틴어의 'ju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의는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이다.
적은 금액이라도 일단 받는 입장에서 볼 때, 내가 생각하는 '공정함'은 모두에게 같은 금액을 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각자의 몫을 따지기 위해 수혜 범주를 나누고 구분하고 판정하는 것도 상당한 재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또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준다는 논란도 있다. 각자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많고 적고를 떠나 그동안 많이 낸 사람들도 그 나름의 국가로부터의 작은 돌봄이나마 받는 기쁨을 갖는 것도 좋은 점이라고 생각된다.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적 파장을 매일 뉴스를 접하며 느낀다. 음식점에 사람이 오지 않는다는 말과, 학교 급식이 중단되어 급식 재료 납품 업체가 겪는 어려움도, 동대문의 의류 업체들이 문 닫는다는 사정도... 총선에서 어느 당은 표를 주면 국민 모두에게 얼마씩 지급하겠다는 선거공약을 펼치기도 했고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모든 당에서 보편복지를 얘기하고 나서기도 했다.
살아오며 나름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다른 양상의 곤란함이 곳곳에서 다가온다. 개인으로서도 그렇지만 국가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가장 위대한 풍요와 가장 큰 즐거움을 끌어낼 수 있는 비법을 '위험하게 살기'라고 니체는 말했다.(니체, <즐거운 학문>) 지금의 우리 사회는 매 순간 위험에 도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무도 모르는 세상을 헤쳐 나아가고 있다. 그 세상이 어떨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오늘은 투표일이다. 코로나 상황에서의 투표,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다시 실현되고 있다. 코로나 19의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각 나라의 민낯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우리나라의 민낯은 그래도 아름답다. 국가도 국민도 각자의 역할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나도 한 사람의 역할을 열심히 하면 된다.
우주에 '끝End'이란 없다. 계속 이어지는 '그리고And'의 연속이다.
우주에서 만물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바뀔 뿐이다.
(양승권, <니체와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로 인한 사망이 10만 명을 넘어섰다. 이 고비가 지나면 또 다른 바이러스가 찾아온다는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위험한 경고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이 위험한 삶이 가장 위대한 풍요와 가장 큰 즐거움을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큰 풍요는 아니라도 소소한 불로소득의 기쁨을 주기도 하니까.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사는 우주는 끝은 없고 그리고의 연속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