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맘때 나는 향기!
나는 매일 아침마다 카페에 간다. 카페에서 나의 하루를 견딜 수 있게 해 줄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딸을 위한 시원한 라떼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어제 아파트 입구에 들어올 때 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향기가 발걸음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매년 이맘때 나는 향기였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향기의 정체를 입에 올렸다. 라일락 꽃이구나!
오늘 아침 역시 카페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어제의 향기를 떠올리며 천천히 조심스럽게 현관을 나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니 꽃향기가 훅 들어왔다. 발걸음을 멈추고 휴대폰 카메라에 꽃을 담았다. 꽃봉오리가 활짝 벌어진 탐스러운 꽃 한 무더기가 카메라 앵글 속으로 들어왔다. 향기도 담았다. 훅 들어마시는 호흡에 먼 기억을 불러오는 향기였다.
예전에 다니던 학교의 교정에는 라일락 꽃나무가 많이 있었다. 교실에 앉아 있으면 화단에 핀 라일락 꽃나무에서 하루 종일 꽃향기가 뿜어져 창을 넘어 교실로 들어왔다. 따뜻한 봄기운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에서 꽃향기까지 들어오니 수업의 내용은 정말 눈꼽만큼도 나를 사로잡지 못했다.
수업을 그렇게 보내고도 쉬는 시간만 되면 밖으로 밖으로 다들 우르르 몰려 나갔다. 창가의 꽃향기는 여학생들을 그렇게 밖으로 불러냈던 것 같다. 꽃향기를 맡으러 나간 것은 아니었다. 꽃나무 아래에서 수없이 자지러지는 웃음들과 손짓과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높은 음정의 목소리들을 노래 삼아 듣다 보면 어느새 수업종이 다시 울렸고, 매일이 그렇게 환희와 환호와 어설픈 감동과 감상으로 짧은 봄날은 향기처럼 날아가곤 했었다.
이곳에 이사 오고 십수 년이 지나는 동안 스치듯 지나는 라일락 향기를 따라서 해가 바뀌어 갔다. 늘 바쁘게 스치듯 지나치는 입구였고, 목적지로 가기 바쁘고 귀갓길 고단한 몸을 내려놓고 싶은 바쁨이 있어서 향기를 미처 느끼지도 못하고 지나쳤던 순간들이 훨씬 많았다. 그러다 문득, 꽃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늘 익숙한 향기가 나던 곳에서의 향기를 추적하면 때면 이미 계절은 지나 있기 일쑤였다. 그렇게 무심히 보내기도 많이 했었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 자체가 소중해졌다. 밖에 나가면 오가는 사람들이 발길이 드물고 그렇다 보니 근처 화단의 꽃나무, 풀, 나뭇가지에서 나오는 새순 등에 오래 눈길을 보내게 된다. 오늘도 이름도 생소한 나무들의 생장을 가만히 지켜보기도 한다. 어제의 모습과 색감을 명확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어린싹들은 분명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색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나무의 색은 물기를 가득 담아 줄기에서는 푸른빛이 언뜻언뜻 보였다. 얘들도 열심히 사는구나 싶었다.
자연이 우리에 대해 아무 의견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즐겁게 자유로운 자연 속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
찬찬히 주목하고 새로운 빛깔을 담을 수 있어 매일이 감사하다. 늘 뭔가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고 그래서 더 마음만 분주하고 불안하고 그랬는데, 이제 나의 여백을 들여다본다. 스치는 향기에서 기억을 소환하고 정리하는 여유도 생겼다. 비어있는 것이 부족이 아니라는 마음도 갖게 되었다. 대단한 성취를 이룰 것처럼 달려온 시간은 그 시간의 의미로 남아있을 뿐이다. 현재의 시간은 지금, 여기의 삶에서 또 이야기를 이어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관록, 연륜, 지혜라며 자신을 이야기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나도 있다고 거들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내세울만한 관록도 연륜도 지혜도 없다. 세상의 많은 현상에 대해 논평할 재주도 없다. 즐겁게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때로는 '의견 없음'의 자세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마침 어제 세계가 주목하는 선거가 있었다. 만 18세 어린 학생들이 투표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당선된 사람들도 조금 더 젊어진 것 같다. 그리고 오늘은 세월호 6주기다. 라일락의 꽃말처럼 친구가 생각나는 계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