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TV를 봤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 익준(조정석)은 자신이 퇴원시킨 환자가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판정을 받게 되고, 장기 적출 수술을 담당하게 된다. 그 날이 어린이날, 익준은 어린이날을 넘긴 자정 이후로 수술을 미루자고 말한다. 한시가 급한 장기적출 수술을 미루는 이유를 묻는 의사들에게 그는 뇌사자의 어린 아들이 앞으로 맞게 될 모든 어린이날을 아버지가 떠난 슬픈 날이 되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미 넘치는 의사의 돋보이는 배려에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 가족의 4월 5일은 식목일, 한식날에 더해 아버님의 기일이다. 매년 식목일은 제사를 대신해 성묘길에 오른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지만, 면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간 촌, 사람이 북적거릴 염려가 전혀 없는 고향의 산소를 올해도 가족끼리 조용히 찾았다. 결혼 이후로 지난 30년간 한 번도 빠짐없이 왔다.
식목일이 기일이어서 남편은 더 슬펐을까? 시아버님 얼굴을 본 적 없는 내겐 슬픔 등과 같은 소회는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모두가 쉬는 공휴일이니 가족들과 모두 같이 갈 수 있어서 좋고, 오가는 길에 마구 다가오는 봄을 맞을 수도 있어서 좋고, 아직 식물이 무성하지 않을 때니 가을처럼 벌초를 신경 쓰지 않아서 좋고, 어쩌다 다른 친지들도 합류하면 회포를 풀거나 즐거운 식사 자리가 마련되니 좋다고 생각했다.
시아버님의 기일이 식목일 또는 한식날이라는 것에 특별히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는데, 드라마에서처럼 어린이날 같은 특별한 날이 기일이 되는 것은 정말 아픈 일이겠구나 생각했고 깊이 공감했다.
친정 부모님의 기일은 내게만 특별한 날이다. 아버지는 오랜 날을 노환에 시달리셨고, 때문에 자주 친정을 찾았었다. 위독하다는 말을 들어서 며칠을 곁에서 지켜보다가 마침 집에 돌아온 그날, 밤을 넘기자마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겨울이었지만 유난히 따뜻했던 날이었다. 엄마도 응급실을 찾고 며칠을 보내며 차도가 있는 것 같아 안심하고 출근한 그날, 급한 호출을 받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서 엄마의 부음을 들었다. 차창으로 햇살이 머리에 쏟아질 때였다. 두 분 모두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드라마에서처럼 내 가족의 죽음에 대해 타인이 가족의 입장에서 배려한다는 것, 조절이 가능한 것이어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감 없는 인물들이 의사 역을 맡아서 드라마에 주목하지 않았는데, 그 장면을 보고 갑자기 드라마에 확 끌리게 되었다.
산소에서 한 시간 가량 쑥도 뽑아내고, 자잘한 나무의 싹이 올라오는 것도 잘라내며 시간을 보냈다. 한식날의 산소 돌보기가 이렇게 수월하다는 것에 아들은 기뻐했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얼굴도 보지 못한 할아버지와 증조, 고조할아버지까지의 벌초를 몇 해 전부터는 혼자서 책임졌고, 유난히 풀과 가시나무가 많은 산소여서 때마다 고생을 많이 했었다. 이번에도 흔쾌히 따라나섰지만 마음속으로는 걱정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아침 먹고 느긋하게 출발해서 시간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산소에 가면 늘 들르는 고향식당에서 청국장과 김치찌개를 주문해서 먹고 나와 숨을 돌리며 옛 관청 터가 조성된 곳을 둘러보았다. 깨끗하게 단장된 관청 옆, 수령이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늘 보고 그냥 지나치던 것이었는데, 앞에 놓인 팻말을 읽으니 소원 비는 나무라고 소개되어 있다. 회화나무라고 옛날 과거에 급제하면 꽂아 주는 어사화 꽃나무고 시험을 앞둔 사람들은 소원을 빈다고 적혀있었다.
산소에 가면 처연한 느낌이 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침묵의 만남 같은.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묘지 앞에서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어려움이 있을 땐 있는 대로, 없을 땐 없는 대로 쌓인 숙제를 대화하듯 말한다. 돌아가신 분이 들으실지는 모르겠지만, 내겐 기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옛 관청이라는 유적지 옆 나무에 대놓고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어 잘 됐다 싶었고 가족 앞에 놓인 문제를 떠올렸다.
올라오는 길, 고속도로를 타고 오니 친정 부모님을 모신 고향으로 들어가는 톨게이트를 지나쳤다. 곧 엄마의 기일이고 따로 날을 잡아 와 볼 생각이지만, 이 근처만 지나도 엄마의 얼굴이, 목소리가 어른거린다. 떠나신 지 4년이 지났다. 산 사람의 시간은 빨리 흐른다. 니체는 죽음을 삶의 완성이라고 했지만, 엄마가 떠나고 난 후 나의 생각 속에서는 생전에는 보지 못했던 엄마의 다른 모습들이 완성되고 있다. 나는 아직까지도 가끔, 문득 떠오르는 엄마와의 기억들, 말들, 상황과 표정들을 모으고 모아서 엄마를 추억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미완성인 채로 기억이 흐려지고 무뎌질까 싶어 조바심이 나는 때도 있다.
남편에게 시아버님도 그럴 것 같다. 스무 살 되던 해에 갑자기 떠난 아버님에 대한 기억은 어느 날은 노래로, 혹은 몸짓으로, 함께 보았던 영화와 좋아하셨던 배우의 이름으로 완성된다.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니 그만큼만 기억해도 대단하다 싶다. 함께 한 시간이 짧고, 대개의 부자지간이 그렇듯 살갑게 다정했던 것도 아니라고 들어서 누이들의 말을 모아서 기억을 쌓은 것이 그만큼이다. 함께 한 시간에 비례해 추억할 것이 남는 것은 아닌 듯하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벌써 엄마의 모습을 완성했어야 했을 테니.
코로나로 인한 활동 일시 정지가 처음부터 이렇게 오래갈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삶은 예상한 대로, 계획한 대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살아가며 우리 가족을 통해서도,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도 확인하고 있다. 아버님의 기일, 성묘길에 소원 비는 나무 앞에서 앞으로의 삶도 코로나로 인한 일시 정지도 모두 풀리기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