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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y 15. 2020

마카롱 하나를 가지고

이른 아침을 먹고 커피를 준비하고 책상에 앉는다. 책을 읽기도 하고 다이어리를 펼쳐 남기고 싶은 기억을 꼼꼼히 정리하기도 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도 한다.


늦은 아침 혹은 이른 점심을 먹는 아이들이 움직일 때쯤 나의 집중력이 같이 흐트러진다. 각자 방에서 생활하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밥을 챙기려고 부엌을 부지런히 오가는 발걸음을 옆에서 거든다. 찌개도 덥히고 반찬도 놓아주고 냉장고에 있는 먹거리도 챙긴다.


아침을 먹고 잠깐의 움직임뿐이라서 뱃속은 아직 더부룩하다. 늦은 아침을 먹은 딸은 야무지게 디저트도 챙긴다. 과일도 깎고 달달한 간식도 챙긴다. 어제 잠깐 외출해서 사다 놓은 마카롱이 냉장고에 있었다고 한다. 문 열면 훤히 다 보이는 냉장고 안인데, 넣어 둔 사람이 아니면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간식이다. "엄마도 마카롱 좋아하지? 나눠 먹을까?" 묻는다.


아이들이 먹는 치즈가 들어간 느끼한 것은 나도 좋아하지만 아직 달달한 것은 완전 정복을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오래전 아들이 사다 준 마카롱에 대한 기억은 특별히 좋게 남아있다. 달기만 하고 식감은 영 아니라고 생각했던 마카롱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꿔줄 만큼 충분히 맛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딸은 나눠 먹자고 말했고 나는 기꺼이 받았다.


마음속에서는 '달랑 하나!'를 '저 혼자 먹겠다고?' 등의 말들이 차례로 떠올랐지만 사실 많이 사 왔으면 또 다른 말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래도 '나눠 먹겠다고 물어주는 게 어디야.' 싶은 마음으로 다른 생각을 지웠다.


언젠가 남편은 마카롱 가격을 보고 "저게 뭐라고 이렇게 비싸?" 놀라며 말했다. 파는 곳을 지나칠 때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는 모습을 보고도 놀라며 한 마디 했다. "저걸 왜 사? 뭐 먹을 게 있다고..." 어쩌다 맛을 보더니 다시 놀라며 말했다. "달기만 한 이걸 왜 먹지?"


남편의 반응도 다소 과하다고 느끼지만 그것을 한 박스씩 사가는 사람들도 나는 여전히 신기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저런 예쁜 거 좋아해."라고 생각 따로 말 따로 남편에게는 조용히 말하곤 했다. 마카롱을 즐겨 사고 먹는 이들에게는 마카롱은 단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의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나름의 트렌드가 반영된 결과이지 싶다.


요즘엔 20대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는 기사를 보면, '작은 사치'를 하는 '포미(for me)족'이 있다고 하고 '글루미(gloomy)족'이나 알뜰하면서도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ET(Economical Trendy)족'이란 말도 있다고 한다.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소비(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과감히 지갑을 여는 소비형태)'에 딱 맞는 것으로 고급 디저트 종류인 마카롱이 그 시작이었고, 점점 더 소비형태가 넓어지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엊그제 명품을 가격이 오르기 전에 구매하려고 주요 백화점 앞에서 개장 전 줄을 서서 기다리다 철문이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뛰어 들어가는 명품의 구매 행렬에 대한 기사가 포털을 장식했다. 이런 풍경도 트렌드를 추구하려는 욕구 때문에 생긴 현상은 아니었을까 나름 분석해 보았다. 기사 관련 사진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목표를 향한 과감하고 단호한 열정으로 보이기도 했다.



우리 세대의 트렌드는 뭐였던가, 생각해 본다. 파커 만년필? 바닐라 아이스크림? '삐삐'라고 불리는 무선호출기였나? 거리의 최류가스 냄새였던가? 아니면 통기타와 낭만이었을까? 무엇을 가져와도 지금 세대에 비하면 너무 소박하다. 그것도 채워지면 만족이었고 채워지지 않으면 그런가 보다 했다. 생각하는 트렌드와 갖고 싶은 욕구는 별개였다.


나름 격동의 시대를 관통해 온 사람이지만,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순간의 작은 기억들 하나하나는 놓치고 살았던 것 같다.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빨리 기반을 잡아 가정을 경제적으로 안정되게 가꾸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삶이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음악다방도 찾고 새로 개봉하는 영화도 자주 보러 다니고, 일일 찻집 같은 것을 해서 불우이웃 돕기 모금과 기부도 해보았지만, 서둘러 결혼해야 했고 결혼 이후의 삶은 혼란의 시대를 정리하고 내 집 마련하는 것이 목표의 전부였다.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고 그것을 반영하여 무언가 나만의 '최애'를 만들고 하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던 삶이었다. 오로지 넉넉하게, 온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을 찾았던, 이런 세대를 살아온 사람이니 당연히 마카롱이, 그 작고 비싼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밖에 없다.



딸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뭐였지?" 가끔 묻는다. 어느 날 치즈 케이크를 맛있다고 하며 먹으면 "엄마가 치즈 케이크 좋아해서 사 왔어." 하며 사들고 들어온다. 외식하며 파스타를 맛있게 먹으면 "엄마 파스타 좋아하잖아." 하며 맛있게 먹었던 그 집으로 먹으러 가자고 약속을 잡는다.


같이 먹으며 되도록이면 맛있다, 먹고 싶었다, 음식이 깔끔하다, 고 말하면 영락없이 기억했다가 그 기억을 환기시키며 엄마의 취향을 같이 즐기자고 권한다. 그러나 남편은 단호하다. "아빠 이런 거 안 좋아해. 둘이서 먹고 와." 더는 말을 붙이지 못하게 대답하니 아이들에게 아빠는 그런 거 안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당연히 같이 즐길 수도 없다.


남편을 이해한다. 딸의 취향도 존중한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 좋아하는 것이 있는 엄마로 아이들에게 기억되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즈음의 분위기에서도, 자식과 나의 관계에서도 소외되지 않도록, 그들만의 트렌드에 나도 계속 참여시켜 줄 수 있도록. 같이 하는 무엇이든 앞으로도 긍정으로 말할 생각이다. 비록 나만의 취향 또는 '최애'는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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