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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y 07. 2020

이번 주엔 이부자리를 싹 갈아 보자

 

꽃샘추위도 지난 것 같아 각 방의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두툼한 침대 시트와 이불을 바꾼다. 오전 내내 세탁기의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들린다. 베란다에 빨래를 널어놓을 공간이 넓지 않아 계속 세탁할 수는 없다. 빨래가 마르는 정도를 봐서 차근차근한다. 아마도 한 주간 각 방의 이부자리 교체 작업을 할 것 같다.


이부자리를 바꿀 때면 엄마가 생각난다. 예전에, 친정 엄마가 오시는 날에 맞춰 이부자리 홑청을 갈았다. 풀 먹이고 다림질하고 바느질까지, 도깨비방망이라도 휘두르시는 것처럼 뚝딱 해주셨다. 호청을 꿰맬 때에는 바늘에 실을 양 팔을 벌리고도 남을 만큼 길게 걸었고, 마주 보고 앉아서 이쪽저쪽 누가 먼저 하나 겨루듯 바느질을 했다.


엄마의 손이 늘 빨랐지만, 내가 감탄한 것은 속도도 속도였지만 바느질 땀의 균일함이었다. 드문드문 가볍게 바늘이 이불 홑청과 솜 사이를 스치듯 지나갔지만 이불이 움직이지 않을 만큼 단단하면서도 너비가 넓지도 좁지도 않게 딱 적당한 간격을 보이는 솜씨. 엄마의 솜씨를 따라가려고 흉내를 내어 보고 나름 애를 썼었다.


엄마가 있으면 아무리 큰 일도 한나절이 못 돼서 끝이 났다. 이불 홑청을 되는 대로 뜯어 빨아 놓기만 하면, 풀 먹이고 말리고 다림질하고 바느질까지 복잡한 과정이 어느새 지나갔다. 옆에서 거든다고 왔다 갔다 하면 엄마는 늘 쉬고 있으라고 말했다. 혼자서는 며칠을 고생하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야 겨우 끝이 날까 말까 한 일이 엄마 앞에서는 손바닥 뒤집듯 작은 일이 되어버렸다. 앞이 까마득한 일거리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엄마 찬스'를 아낌없이 썼다.


지금은 그때처럼 이불 홑청을 쓰지는 않는다. 요나 이불의 커버 안쪽의 끈과 솜 귀퉁이의 고리를 묶어 뒤집어 씌우면 끝난다. 이렇게 바뀐지도 오래되었다. 이불 커버를 바꿀 때마다 당시의 엄마의 모습과 함께 그 시절의 뽀송함과 빳빳한 촉감이 항상 생각난다. 하도 빨아 드문드문 해진 호청의 늘어진 실밥도 정겹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이불 빨래는 사실 무척 간단하다. 그래서인지 끝내고 난 후의 상쾌함도 그때보단 덜하다. 그러고 보면 수고의 깊이와 끝낸 후의 상쾌함은 비례하는 것 같다.


이부자리 끝나고 커튼까지 빨아 교체하고 나면 집이 가벼워질 것 같다. 마음도 무게도 한 겹 덜어낸 것 같은 기분이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번갈아 바꾸고 빨고 치우고 하면 큰 일을 마친 뒤의 여유가 더 크게 찾아들 것이다.


아기를 낳아 키우던 시절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친구 집에 놀러 갔었다. 꽤 오래된 아파트였는데 안은 새집처럼 깨끗했다. 특히 화장실은 마치 새로 지을 때의 상태처럼 잡티 하나 없었다. 깨끗하다고 말하니 자랑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남편이 매일 대청소하듯 공들여 청소를 해준다고 친구는 말했다. 남편의 청소가 익숙하던 시절이 아니었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다른 친구의 집에도 놀러 갔다. 그 친구의 남편은 음식을 잘한다고 했다. 집안일만 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더구나 남자가 설거지도 아닌 음식을 만드는 것이 흔한 시절은 아니었다. 신기하고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나이가 드니 지금은 우리 집 남편도 음식을 자주 하고 잘한다. 어떨 때에는 나보다 더 열심히 주방일에 열중하고 맛도 잘 낸다.


아직 빨래나 이부자리 청소를 맡아서 한다는 다른 집 남편 얘기는 들은 기억이 없다. 계절마다, 한두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이부자리를 바꾸고 커튼을 바꾸고 하는 큰 일을 맡아서 해 준다는 자랑을 들을 수는 있을까. 이제라도 듣는다면 시샘보다는 반가울 것 같다.  


주부의 일은 해도 표가 나지 않는다. 혼자서 힘들고 혼자서 상쾌하고 혼자 뿌듯하다. 가족들은 이불이 바뀌든 커튼이 바뀌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모르는 체하는 것인지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아무 말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공치사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의 크기에 비해 공이 없다. 굳이 이야기를 꺼내며 이렇게 바꾸었다고 말하면, 힘드니까 자주 하지도 열심히 하지도 말라고 말한다. 대충 살자고 한다. 공연히 얘기를 꺼냈다 싶은 때가 많다.


오늘도 바삐 움직였다. 다 식은 쓴 커피 한 잔으로 오늘을 정리하고 내일을 계획한다. 방 하나가 상쾌해졌고 내일은 다른 방이 바뀔 것이다. 집안에서 보는 창밖의 풍경같은, 초록잎의 색감과 싱그러운 풀의 향까지 집안으로 들여놓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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