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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Sep 03. 2020

스트레스와 함께 살아가기

극심한 피로가 몰려오는 순간이 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해결이 안 되는 문제들이 쌓여간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염려하고 해결되지도 않을 일을 끙끙거리며 애를 쓴다. 스트레스다. 모든 것이 멈춘다. 어느 것 하나 치고 나갈만한 것이 없다. 정체의 늪에 빠진다. 한나절 이상을 고민을 뚫고 들어가려 한다. 기운이 빠진다. 온몸의 기가 땅으로 꺼지는 듯하다. 생각이 주저앉으니 몸도 주저앉는다. 자연스럽게 몸을 웅크린다. 다른 생각은 하나도 나지 않는다. 우선순위랄 것도 없는 문제가 다른 고민을 덮어 버린다.


이럴 땐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문제의 늪에 빨려 들어가 침잠하거나 그게 싫다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말은 하기 싫다. 입도 뻥끗할 힘이 없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을 해야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지배한다. 입을 잠근다.


꾹 다문 입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읽혔나 보다. 가족들이 차례로 말을 걸어온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완강하게 거부했는데,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입이 열린다. 한번 열린 입은 누가 멈추게 할까 봐 서둘러 말을 쏟아 낸다. 내 생각과 다른 이의 생각을 교차해서 풀어낸다. 어느새 다른 이의 입장까지 고려해서 말하고 있다.


고민 한나절, 혼자서 하는 말 두어 시간. 그늘이 걷힌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마음은 좀 편하다. 누군가가 뺏어가는 것처럼 급격히 떨어지던 기운이 조금씩 회복된다. 다른 해야 할 일들이 생각난다. 다른 자잘한 문제들도 눈에 들어온다.



문제들의 순서를 정리하며 걸래에 물을 묻히고 집안을 닦는다. 구석구석 먼지도 털고 눈이 가지 않던 모퉁이도 꼼꼼히 닦는다. 방과 거실, 책장과 TV장, 책상 위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의 먼지까지 닦아내면 깨끗해진 집이 마치 내 마음 같다. 어느새 어지럽던 문제들의 순서가 정해지고 해야 할 일들의 순서도 나란히 정렬된다.


드문드문 찾아오는 스트레스가 정돈되는 순간이다. 해결되지 않는 것은 해결되지 않는 대로 두고,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한 염려는 덮어 둔다.


스트레스가 나를 스쳐 지나가는 과정을 점검하다 보니, 한나절 정도의 깊은 고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스트레스에 크게 영향을 받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다, 잘 견디는 사람이었다. 깊이 우울에 빠지지 않는다. 정말 심각하게 느껴도 이런 나를 알고 말을 걸어오는 남편이나 가족들에게 못 이기는 척 얘기하다 보면, 일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견딜 만 해진다.


이쯤 되는 나는 그냥 스트레스와 함께 사는 사람이다. 완벽하게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닌 조금 묻어두고 덮어두고 눌러둔다. 내 안에 스트레스를 그냥 두고 다른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다 보면 스트레스가 잠들기도 하고 저 밑에 눌려 있어 가끔 보이지 않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다시 올라오면? 그땐 또 한나절 고민하고 두 시간 정도 말로 풀고 나머지 시간은 다시 스트레스와 함께 사는 거다.


나에게 찾아오는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느끼는 심리적ㆍ신체적 긴장 상태' 느슨하게도, 너무 팽팽해서 끊어지 않게도 비교적 탄력을  유지하는  같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어떻게 해?


가까운 이가 묻는다. 장난 같지만 진지하게 대답한다. 스트레스가 나고 내가 스트레스야. 난 그냥 같이 살아.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좀 더 편안하게 바라보는 습관을 갖게 될 때, 비로소 결코 해결될 수 없을 듯했던 문제들이 사실은 쉽게 다룰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리처드 칼슨, <100년 뒤 우리는 이 세상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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