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Dec 18. 2020

집으로 책드림

'집으로 책드림',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문화프로그램이다. 신청자의 도서 선호 키워드를 적어 신청하고 채택되면 도서관 사서가 적당한 책을 골라 우편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어도 되고 내가 원하는 책을 찾아 빌리거나 사서 봐도 되지만, 누군가가 골라준다는 것이 신기했다. 거기다 책에 관한 한 전문가가 선정해주는 도서라니.



공지가 뜨고 신청하는 날짜를 기다렸다가 첫날 오전 일찍 신청했다. 사실 신청에 급급해 그쪽에서 요구하는 도서 선호 키워드를 적지 못했다. 아무리 다시 해보려고 해도 이미 신청이 되어서인지 재접수도 수정도 되지 않았다. 이번 기회도 또 놓치겠구나 생각했다.


도서관의 문화행사는 가능한 한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고퀄의 인문학 강연은 물론이고 독서 토론이나 저자 강연까지. 세상엔 배울 것 천지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쉽게 찾을 수도 있다. 내 생애 언제 그토록 유명한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볼 수 있겠는가. 하여 날짜와 시간만 맞으면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나름의 새로운 지식 습득을 위한 노력이다.


책드림 서비스는 궁금했다. 어떤 책을 골라줄지. 과연 내 취향에는 맞을지. 얼마나 신경을 쓸지. 낯선 사람에게 책을 골라준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지라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신청한 것이었다.


안 와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도서관에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는 패스하지만 이 번호는 왠지 받아야 할 것 같아 통화 버튼을 눌렀고, 도서관이라고 했다. 책드림 서비스를 신청했는데 키워드가 없어서 전화했다고 하며... 신청 당일 어설프게 허둥댔던 사연을 말하고는 되는 대로 나의 취향을 얘기했다.


내가 선택한 키워드는 네 가지였다. 다섯 권의 책을 보내주지만 꼭 다섯 가지가 아니어도 된다고 했다. 좋아하는 소설과 문과 성향의 사람이라 인문학, 요즘 급 관심을 갖게 된 환경과 그림책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다시 며칠이 지나 책이 왔다. 큰 박스에 다섯 권의 도서가 묶여서 안내문과 함께 들어있었다. 안내문을 읽고, 목록과 도서가 맞는지 확인도 하고 반납하는 방법까지 숙지하고는 책을 훑었다. 사실 한 권 정도는 내가 읽은 책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만이었다. 읽은 책이 하나도 없을뿐더러 내가 도서관에서 빌리는 것이었다면 절대로 선택하지 못했을 도서들이었다.


<찰리가 온 첫날 밤> 에이미 헤스트

<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인정받고 싶은 마음> 오타 하지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1.5도의 미래> 윤신영


리베카 솔닛은 여성 운동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어서 그의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환경에 관한 책도 요즘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내게 적합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는 건 사랑한다는 뜻입니다'로 소개하는 <찰리가 온 첫날 밤>은 유기견에 관한 이야기이다. 받은 책의 면면을 보니 괜히 전문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어린 시절만 해도 책이 무척 귀했다. 많은 책을 가지고 있는 지인의 집에 가서 어렵게 책을 빌려달라는 말을 하며 한 권씩 빌려오곤 했다. 사방이 장서로 둘러싸인 방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앉아만 있어도 배부를 것 같다는 생각을 그 방에서 처음 했던 것 같다.


요즘은 책이 흔하다. 집에 있는 책도 읽지 않은 것이 많고, 걸어서 5분 10분 거리에 작은 도서관이 3개가 있다. 거기에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하면 고전이 쏟아진다. 너무 흔해서 때론 귀한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책이 나를 키우고 사람을 키운다는 것을 믿는다.


책이 왔으니 이제 열심히 읽을 차례다. 귀한 것을 대하니 마음도 가다듬고 자세도 바로 하고. 앞으로 두 주 정도는 마음 부자로 살 것 같다. 날이 추워서, 집이 따뜻해서, 책과 함께 하는 모든 것이 좋아서 흡족한 하루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최애'가 된 드라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