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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an 11. 2021

'시한부 인생', 십대들이 주는 삶의 위로

영화, <파이브 피트>, 2019

십대라고 하면 반항, 자유분방, 상쾌, 유쾌함을 떠올린다. 시간의 접점이 멀어지니 어느 순간부터 오랜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힘들다. 어쩌다 십대를 그리는 영화를 보면 아주 오래전 그때의 모습이 언뜻언뜻 스쳐가기도 한다. 물론 그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요즘의 십 대는 바람을 좀 더 빵빵하게 넣은 탱탱볼 같다고 할까.


영화 <파이브 피트>의 주인공들도 십대다. 다만, 세상의 끝을 살아가는 청춘들이다. 낭포성 섬유증(CF) 환자들이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그들의 폐는 정상인의 50퍼센트만 기능한다. 가래가 엄청 끼는 유전병이고 폐이식을 받아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이식된 폐의 수명은 5년, 그렇게 해서라도 새 치료법이 나올 때까지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낭포성 섬유증 환자들의 목표다.


스텔라(헤일리 루 리차드슨)와 포(모이세스 아리아스)와 윌(콜 스프로즈), 셋은 같은 병을 앓고 같은 병원에 입원한 환자이며 친구다. 윌은 낭포성 섬유증 중에서도 더 심각한 B. 세파시아 감염자다. 이 박테리아는 페니실린도 잡아먹을 만큼 강력하다. 윌은 약물 임상실험에 참가하고 있지만, 살 수 있는 확률은 희박하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치료를 그는 포기한다. 그런 윌 앞에 유쾌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스텔라가 나타난다. 약도 먹지 않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윌은 스텔라의 강박증을 자극한다.


스텔라는 윌에게 다가가 엄격하고 완벽하게 치료법을 따라달라고 부탁한다. 스텔라의 강박증이 윌을 통제 범위에 넣으려고 한다. 윌은 스텔라를 그리겠다는 조건으로 스텔라의 제의를 수락한다. 같은 환자끼리는 5피트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윌과 같은 심각한 환자와는 6피트의 거리가 필요하다. 윌이 지닌 B. 세파 시아에 감염되면 폐 이식은 물론이고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 교차 감염을 염려하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둘은 사랑에 빠진다.   



윌의 18번째 생일날, 스텔라는 포과 함께 생일파티를 준비한다. 윌과 자신의 친구들까지 불러 놀고, 담당 간호사 바브(킴벌리 허버트 그레고리)의 눈에는 띈다. 바브의 눈에 그들의 일탈은 위태롭고 불안하다. 생일파티가 끝나고 그날 밤 포는 죽고 스텔라와 윌은 동요한다.


스텔라는 살아 있는 동안 삶을 즐기기로 결심한다. 스텔라와 윌은 불빛을 보러 병원 밖으로 나서고, 스텔라에게 이식될 폐는 오는 중이다. 스텔라는 이식을 받지 않겠다며 무시하지만, 윌은 병원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하던 중, 스텔라는 빙판이 갈라져 물에 빠지게 된다. 윌은 간신히 스텔라를 건져 올리고 호흡이 없는 스텔라에게 감염 때문에 주저하다 인공호흡을 한다.


다행히 감염이 되지 않았지만, 사랑해도 다가갈 수도 스킨십도 할 수 없는 그들. 윌은 스텔라를 위해 떠나기로 한다. 스텔라는 영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윌에게 전한다. 첫눈에 사랑했지만 안을 수도 키스도 할 수 없는 그들의 순수하고 뜨거운 사랑이 아프고도 아름답게 전해진다.


영화의 배경은 병원이지만 차갑지 않다. 신비롭고 아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윌과 스텔라가 함께 하는 병실, 식당, 수영장 등은 젊은 청춘들의 꿈과 개성이 담긴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환자복이 아닌 일상복을 입고 있지만, 모두가 끼고 다니는 호흡기를 통해 그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병상일기를 통해 병원 밖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스텔라의 자유분방한 모습은 에너지 넘치는 십 대의 모습 그대로다. 거기에 윌이 그리는 만화와 스텔라의 병실에 가득 붙은 그림은 동화적 연출을 통해 병실과 수술실을 환상적인 공간으로 바꿔놓는다.


영화 개봉 전, 시나리오를 토대로 발간된 동명의 소설 [Five Feet Apart]는 미국 최대 규모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에서 10대 & 청소년 로맨스 부문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또 긍정적 에너지 충만한 캐릭터를 가진 스텔라 역과 첫눈에 사랑에 빠진 애틋한 감성의 윌의 환상적 케미도 때문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청춘의 아름다움에 마음 설레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건강한 삶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것도 자신을 살릴 수 없다는 윌의 자조적 감정에 빠져들다가도, 남은 생애 동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스텔라를 통해 갖기도 한다. 영화를 보며, 우리는 먼 미래의 어느 때를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스텔라의 스킨십에 관한 이야기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스텔라의 마음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 수단이자 안전감과 편안함을 주는 작은 손길', '볼에 닿는 입술의 촉감', '기쁠 땐 하나 되게, 두려울 땐 우리를 용감하게, 열정의 순간엔 우리를 짜릿하게 만드는' 그것. '공기만큼이나 그 손길이 필요하단 걸' 스텔라는 미처 몰랐다고 고백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 간절해지기 전까지는 몰랐던 그것을 사람들을 향해 밝게 전한다. 마치 세상을 향한 절절한 고백 같다.


"할 수 있다면 만지세요, 옆의 그 사람을.
 낭비하기엔 인생은 너무 짧으니까요."


우리는 자주, 실패를 염려해 시작을 망설인다. 생의 끝에서 걱정스럽게 내뱉는 윌의 말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에게 출발점에서 매번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실패가 두려워 시작할 수 없다면, 남은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혹시 아는가, 성공할 수 있을 지도.


"실패하면 어떡하죠?"
"성공할 수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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