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즈음하여

- 학생 회장 선거

by 바람


아침부터 아파트 안이 시끌벅적하다. 무슨 일인가 창밖을 내다보니 초등학교 뒷문에서 아이들의 큰 소리가 울려 퍼진다. 부부젤라도 동원되었다. 8번 팻말, 7번 팻말, 구석에 5번 팻말도 눈에 띈다. 번호만 붙인 팻말과 아이들의 응원이 요란하다. 물어볼 것도 없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 후보 알림 팻말은 물론이고 부부젤라까지 동원된 아이들의 외침은 내년 학생회 임원 선출을 위한 선거유세다. 현장을 실시간으로 멀리서 보고 있다. 응원문화와 선거문화의 융합을 마주한 순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악을 쓰다시피 번호를 외치는 아이들의 표정이 눈에 본 듯 그려졌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끝나는 2월에 이곳으로 전학을 왔다. 딸아이가 전학을 온 그때는 2월에 학생회장 선거가 있었다. 일주일쯤 학교에 다니고 아이는 친해진 친구들 몇 명을 집에 데려와 밥을 함께 먹으며 회장 후보로 출마했다고 말했다. 데리고 온 친구들은 선거인단으로 활동해주겠다는 친구들이었다. 당황스러운 마음도 잠시, 도와주겠다는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열심히 해 보라고 일단 응원도 해 주고. 주말을 끼고 있어서 우리는 주말 내내 집에 있는 앨범을 뒤져 아이의 후보 유세 팻말에 붙일 사진을 찾았다. 색종이로 후보 지명 번호를 오리고 붙이고 공약을 정해서 적게 하고……. 함께 왔던 친구들이 휴일에 집에 와서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아이들은 오지 않았고 일요일 오후 급하게 가족끼리 아이를 위한 협업이 이루어졌고 뚝딱거리며 팻말을 만들었다.


웃음과 눈물의 장면들이 있었다. 우정과 배신의 장면도 있었고, 시기와 질투의 스토리도 있었다. 딸은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엄마의 입장에서) 아깝게 탈락했다. 전학 오자마자 학생회장 후보로 나선 무모한 용기를, 담임은 전화로 칭찬의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우리 아이의 눈물 어린 사연을 오해할까 싶어 무마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에서의 선거였다. 이후 아이는 그렇게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학생이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학급의 회장은 자리에 대한 무게보다 진정한 봉사의 개념으로 생각했고, 특히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고3 시절의 학급 회장은 귀찮고 힘들지만 열심히 역할을 수행했다.


학교 아이들의 선거운동이 떠올랐다. 길거리에 대통령 선거 포스터처럼 아이들의 학생회 임원 선거 포스터는 모 사진관을 통해 멋들어지게 완성된 것이었다. 고등학생이라 보여지는 것의 중요성을 이미 아는 아이들이었다. 얼굴을 포토샵으로 보정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뽀샤시한 얼굴들을 더 빛나게 만들고, 45도의 각도를 유지해 턱선이 날렵하게 드러나게 찍은 그럴듯한 포스터를 번호까지 붙여서 완성이 되도록 사진관에 맡겼다. 선거인단을 선거관리위원회 규정에 따라 정해진 숫자만큼 운용해서 수업 시간 사이사이 교실을 돌며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장점을 이야기했고, 이어 후보의 이름을 호명하고 소개하며 친히 후보를 만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고등학생이면 막연히 어른 흉내를 낸다고 볼 수 없었다. 어른들이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다른 후보와의 차이점을 분석하여 어느 것이 유리한 공약인지 파악해 자신의 공약으로 내세우고, 어느 것이 실현 불가능한 공약인지를 파악해서 후보 토론회 때 맹공을 퍼부었다. 참신한 공약을 내세움으로써 후보의 입장이 뚜렷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도 있지만, 두루뭉술하게 해서 학교의 정책과 맞아떨어지도록 하는 것도, 학교교육과정의 반영을 미리 파악하여 은근슬쩍 자신의 공약에 넣고 실현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꼼수 아닌 재치를 보이는 공약도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호감도였다. 얼마만큼 아이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지가 바로 이어지는 투표에서 당락을 좌우하는 관건이었다.


정치지도자가 꿈인 그 아이도 회장 선거에 나섰다. 후보 추천인에 서명해 달라고 해서 추천 교사로 이름을 적었다. 그 아이의 당선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전의 임원 경력도 없었고 선생님들의 물망에 오른 후보도 아니었다. 파트너로 내세운 부회장 후보도 인지도가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학생회장 선거의 분위기를 띄우는 후보로 맞춤이라고 생각했던 그런 후보였다. 결과는 그 아이가 학생회장으로 당선이 됐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학생회 담당 부장과 교사도 당황했다. 궁금해서 미리 전화로 물었는데, 선거의 결과보다 관계자들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그 아이를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담당 교사의 입장에서는 학생회 일을 추진해나가기에 버거운 후보의 당선이었다.


학생회장이 되었던 친구는 정말 열심히 회장의 역할을 했다. 물론 많은 부분에서 구멍이 보였지만, 겸손하고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가진 친구였다. 그 아이의 생애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었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걱정하는 나를 향해 학교 대표로 역사 골든벨 참가 소식도 알렸고, 회장 자격으로 원고를 투고한 것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책 읽는 것을 싫어했고, 글 쓰는 것을 어려워했던 그 친구는 역사 골든벨에 학교 대표로 나갈 정도로 역사 공부를 열심히 했고, 때마다 글을 써서 학생회장으로서의 위치와 소신을 밝히고 학교를 홍보하기도 했다. 1학년 때부터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정치지도자로서의 꿈을 위해 배우고 노력했고, 사회단체에서의 봉사 활동을 통해 시야를 넓히는 경험도 곁에서 지켜보았다.


개인적으로 학생들의 사회 참여를 환영한다. 그들이 만들어 나갈 사회를 그들이 직접 경험하고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만난 아이 중에는 국회의원이 되어서 온갖 정보를 빼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진지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바람직하지 못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사고였지만, 정치적 해법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아이의 생각을 돌려보려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는 정치에 대한 혐오를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칭) 정치지도자들의 욕심이 그 아이에게 비틀린 욕망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렇게 살면 왜 안 되냐고 물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결국 교육이, 그 아이를 잘못 가르친 것이었다.


지난 정부의 모 지도자를 향하는 말로 무식하고 부지런한 지도자를 가장 위험한 지도자라고 했다.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위한 끝없는 욕심이 나라를 망치고 있었고,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한 행동만을 부지런히 하는 것을 비꼬는 말이었다. 정치지도자가 모든 것에 다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방향만 바로 잡히면 각 방면의 전문 집단을 잘 이끌어 올바른 정책을 만들고 그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만드는 리더십과 판단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학생회장에 당선된 그 아이는 바람직한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 국민을 위한 정치, 약자를 위한 정치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지금은 부족해 보이지만 노력을 했고 지금도 노력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는 부를 축적한 가문에서 욕망의 성취 수단으로 어느 날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키워져야 하고 바르게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