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박완서의 1983년 작 소설의 제목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1984년 개봉한 영화의 제목이고, 1988년 방영된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하다. 소설과 영화는 결말이 다르지만 두 자매와 인간의 본능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소설로 읽고 드라마로 봤던 기억이 있다. 자신의 감정 그대로 행했을 때와 자신을 속이고 감정을 누르고 살았을 때의 그 행위의 무게가 각각 다르게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마음의 병을 더하는…….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다 털어버리고 난 후 그 겨울이 따뜻했다고 영화는 마무리한다.
나의 겨울을 생각하다 갑자기 떠오른 소설의, 영화의, 드라마의 제목이다. 결말이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됐다. 권선징악의 전래동화도 모두가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드라마는 누구도 해피한 결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상황에서의 억지 용서식의 표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해자는 살아서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는, 피해자는 죽어 편안한 웃음을 남긴다는 식의 결말. 서로 다른 운명을 살았던 불행한 가족인데, 죽은 자의 미소를 용서로 해석하는 가해자적 시각과 폭력, 일방적 마무리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이어 나의 겨울을 어떠했는지 돌이켜 보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나의 겨울은 두 단어였다. 겨울 방학과 겨울 여행. 그 두 가지를 여름부터 고민했고 겨울이 시작됨과 동시에 그것을 실행하고 의식처럼 겨울을 떠나보냈다. 일 년 동안의 나에 대한 보상이었다. 올겨울은 작년과 느낌이 달랐다.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여름과 가을을 보냈고 겨울을 맞았다. 두 가지가 없는 겨울은 일찍 길게 왔다. 긴 시간 내내 바람이 스멀스멀 몸을 이리저리 훑었다. 창문이나 문틈을 아무리 잘 단속하고 난방을 세게 틀어도 마음 어딘가 구멍 난 틈이 있는지 들어오는 바람을 막을 수 없었다. 바람에 마음도 흔들렸다.
마음을 여러 겹으로 무장했다. 때마침 시작한 글쓰기만 생각하려고 했다. 과거를 꺼내고 현재를 살폈다. 길을 걷다가도 빈 생각이 머리를 차지하지 않도록 관찰하고 단어를 주웠다. 간판을 보면서도 생각하고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들의 일상을 추적해보며 머리를 바쁘게 했다. 머리와 마음이 하나가 되어 바빠지도록 노력이라는 것을 했다. 집에서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종일 집안을 왔다 갔다 몸을 움직였다. 중심이 되는 무언가가 빠져나간 자리에 자잘한 것들을 잔뜩 집어넣었다.
똑똑한 한 개가 없으니 손발이 고생했다. 아니다, 마음도 고생했다. 몸과 마음의 시달림이라도 없다면 정신이 황폐해질 것 같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나니 매일 새로운 것으로 다가온 일상적 스트레스가 사라졌고, 시간은 나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를 지배하던 삶이 비워진 밋밋한 일상은 내게 안정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복잡한 상황을 즐기는 사람이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가끔 가슴 시린 상황은 있었어도 내내 찬 바람이 나를 잠식할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빈 울림이 나를 가두고 슬프게 하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의 자질이 집요함, 끈질김이라고 하면, 그 방면에서 나는 자격 상실이다. 겨울에 한정된 목표의 상실도, 마음속의 고요도, 공허도, 그로 인한 마음의 동요와 그 원인도 끝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지 못한다. 끝까지 파고 들어가 무엇이든 결론을 내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다. 이러한 상태에서 굳이 나의 작가로서의 자질이 될만한 덕목을 찾자면, 딱 그 상황에서의 버팀이다. 영상의 일시 정지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 그대로 유지한 채 잊거나 덮거나 하는 것, 그렇게 버텨보는 것이다. 좀 길게 이어져도 그런 상태에서의 상실과 흔들림은 괴롭지만 버텨진다.
오늘도 집이고 여전히 손발이 바쁘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지만, 나는 정신을 묶어 두기 위해 손과 발을 고생시킨다. 아침에 눈을 뜬다. 책을 펴고 앉는다. 글을 읽는다. 글에서 건져 올린 말들을 새기고 생각의 변화를 다시 글로 적는다. 저자의 말을 한 자도 빼놓지 않고 그대로 옮기기도 한다. 손을 바쁘게 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그 말이 내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두 번째다. 우선 무언가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읽을 것이 많아지니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니 쓸 것이 생긴다. 내가 마치 대단한 사색가나 문장가처럼 머리에 떠오르는 단상들을 포착한다. 내 말로 챙긴다. 챙긴 것을 다듬는다.
나의 겨울도 소설의 운명적인 가족사만큼 복잡하다. 이 겨울,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손과 발을 바쁘게 한다. 내 속에 남은 냉기가 큰소리치지 못하게 지그시 눌러 놓는다. 매일 조금씩만 나를 누르는 무게를 덜어낸다. 마음이, 정신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렇게 서서히 가벼워질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