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미, <홀딩, 턴>
한때 춤을 배워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 타고난 몸치를 극복할 수 있다면 방송댄스나 스윙댄스도 좋고 피트니스에서 많이 배우는 에어로빅도 좋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가장 접근성이 쉬운 에어로빅에 참여했다가 뒷자리에서 어설프게 따라 하기를 이틀, 몸과 마음의 부조화를 심각하게 경험했다.
<홀딩 턴>의 지원은 다르다. 몸치지만 댄스에 도전한다. 거기서 남편이 될 영진을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한다. 결혼까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펼쳐지지만 결혼생활 5년 만에 둘은 이혼을 결심한다. 이혼의 결정적 원인은 불분명하다. 불분명하고 자잘한 사유를 뭉뚱그려 성격차이로 정의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지원은 말한다.
제목 '홀딩, 턴'은 스윙 댄스 용어다. 홀딩은 파트너와 만나 손을 잡는 동작, 턴은 돌면서 춤을 도는 동작을 말한다. 파트너와 만나 손을 잡고 돌면서 파트너가 바뀐다. 제목 홀딩과 턴은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을 암시한다. 지원과 영진은 결혼생활의 홀딩이 아닌 턴을 선택했고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한다.
책을 읽으며 30년 전의 나의 결혼과 결혼생활에 대해 생각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시작과 서로에 대한 감정의 탐구와 탐색을 거쳐 확신과 믿음의 단계를 통과하는 연애의 과정, 그리고 결혼은 이전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책은 결혼 이후의 민낯과 서로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의 충돌에 따르는 상처와 치유의 과정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여주지만 이전 세대(나의 세대)와는 달라 보였다.
잘 지내는 것 같던 연인이나 부부의 관계가 깨질 때 상대의 불륜이나 변심, 파산, 폭력, 중독은 선명한 파경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로 명명하기 어려운 이유들이 자잘하게 집 여기저기에 곰팡이처럼 번져버린 경우도 있다. 볼 때마다 닦고 주기적으로 꺼내서 말리는데도 은밀하고 깊숙하게 번져나간 곰팡이를 목격할 때면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리며 손을 놓고 싶어 진다. 곰팡이가 관계를 삼켜버리는 것이다.
결혼생활의 파국을 은밀하게 번져나간 곰팡이가 관계를 삼켜버리는 것으로 비유한 것은 적절하게 느껴진다. 불륜, 파산, 변심, 폭력, 중독 등의 명백한 사유가 아니라면 결혼생활을 끝내는 과정은, 주인공 지원의 경우처럼 자잘하고 은밀하며 눈에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크기로 도드라지는 곰팡이를 어찌할 것인지의 문제다.
사랑은 '눈 맞춤, 짜릿했던 키스, 온몸과 마음이 살아 있다고 느꼈던 순간이 고스란히 담긴' 값 비싸고 귀한 티백처럼, 우려먹고 우려먹다가 더는 어떤 맛도 향도 느낄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결혼은 환상을 벗어난 실체가 된다. 이때부터는 '세탁의 코스'처럼 흘러간다. 모든 삶의 과정처럼 다음코스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요구르트를 떠먹으며 흐르는 물에 세제가 풀어지고 옷의 부피가 줄어드는 걸 지켜보았다. 푹 젖은 세탁물이 물속에서 고요하게 돌아가고 젖은 옷들이 미미한 소음과 출렁이는 물결을 따라 흔들리는 걸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세탁기의 외양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데 안에서는 코스에 따라 정해진 일이 진행된다는 것, 때를 빼기 위해 통 속에서 솟구친 물살이 빨래를 돌리고 누르고 비비며 분주하게 일한다는 것, 안에 든 것들은 이리저리 치이며 시달리지만 결국 깨끗해진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 결혼생활을 여성의 시각에서 다룬 결혼생활 탐구소설로도 읽히는 이 소설은 2015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2023년의 세대에게 결혼의 결심은 더 힘들어졌고, 새롭고 복잡한 관계의 실타래가 어수선하게 엉켜있는 것을 정리해 나가야 하는 결혼생활은 더 큰 문제라서 소설은 생각할 여지를 넉넉히 준다.
통과 의례와도 같았던 나의 세대에게 결혼은, 여자의 인내와 희생의 미덕을 바탕으로 한 그럴듯한 가족공동체의 완성이 목표였다. 주인공 지원에게는 없는 전통적인 틀에서의 제재와 간섭은 다양하고 무수했다.
퇴근한 남편이 발을 씻지 않는 것, 맞벌이인데 집안일은 지원이 더 많이 하는 것, 요리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음에도 영진이 좋아하는 반찬을 위해 시어머니에게 레시피를 배워야 하는 등의 상황은 입밖에 낼 거리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주인공 지원에게는 이혼이 행복을 위한 결정임을 이해한다. 지원과 남편은 이혼과정에서의 지지부진한 다툼도 없다. 쿨하고 깔끔하다. 아마도 "한쪽의 관계가 끝나지만 다른 관계는 따뜻하고 돈독하게 그리고 싶었어요. 관계가 상처를 주지만 또한 관계가 사람을 위로하고 사람을 살게 하잖아요"라는 작가의 말이 그 이유가 될 것 같다.
나는 맞고 당신은 틀린 것이 아닌 서로를 향한 최선과 선의를 우선시하는 투쟁. 부정적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상대를 향한 혐오의 감정을 냉정하게 진단하며 서로의 접점을 찾는 과정이 둘의 이혼과정에서 보인다. 좋은 태도에 숨겨진 악의를 굳이 드러내 상처 주지 않으면서 가면을 벗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는 둘의 모습에서 이혼에 대한 부정적 생각들이 희석되는 느낌이다. 이런 이혼이라면 나쁘지 않겠다, 싶은.
결혼과 만남은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며 익숙한 사고와 고정된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질서를 정립하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동등함'을 위해 여성도 남성도 함께 노력해야 하는 과정이 결혼이고 그 과정에서 보다 까다롭고 냉정한 성찰이 요구되는 것이 요즘의 풍속도가 아닐까 싶다.
나의 세대에게도 홀딩이나 턴, 선택의 기로는 많았다. 마영신 작가의 <엄마들>에는 다양한 환경과 조건의 엄마들이 나온다. 인물들의 너무 솔직한 모습에 헛웃음이 나지만, 지금의 세대와는 다른 만남과 결혼과 이혼에 대한 무던한 선택과 상대와 가족공동체를 두루 배려하는 판단이 두서없이 나온다. 이들에게도 선택의 기로가 여러번 있었고 엄마들 대부분의 선택은 홀딩이었다.
엄마들은 시간이 흘러 남편이 떠나고 난 뒤에야 뒤늦게 자신을 돌아본다. 늦었지만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도 솔직하다. 복잡한 문제는 끌어안았고 삶은 매번 엄마들을 속였지만 견뎠다. 이제는 새벽을 깨우며 일하는 청소노동자로 사는 엄마. 사이다 같은 청량감은 없지만 막걸리와 소주가 주는 찌릿함은 삶 곳곳에 녹아 있다.
노후 자금은 없지만 다만 현재를 열심히 살고, 자식들 자기 앞가림하는 것으로 삶의 보람을 느낀다. 그렇게 살다 불현듯 찾아드는 외로움과 스트레스는 약간의 파격으로, 나름의 사연을 두둑이 가진 친구들과의 걸쭉하고 끈끈한 연대로 풀어나간다. 그 모습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가식은 없다. 엄마들은 당당하고 씩씩하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 지원에게 아이라는 변수를 배제한 것은 다행스럽다. 아이 문제를 끌고 오면 지원의 선택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행복의 기준도 척도도 달라졌겠고. 그러면 너무 무겁고. 지원의 선택과 이혼의 과정이 너무 무겁지 않아 좋다. 어떤 선택을 해도 그 길이 행복을 위한 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원의 턴이든 엄마들의 홀딩이든 옳다 그르다를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결혼생활의 모든 문제는 시시비비를 명백히 가릴 수 없다. 다만 치열한 고민이 행복한 삶을 위한 동력이 될 거라는 사실은 믿고 싶다. 경험만큼 배운다는 것을 요즘 느낀다. 삶에서 사이다 같은 결말은 아니더라도 모든 관계는 무겁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요즘 들어 부쩍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