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일 뿐일까

by 바람
늦게 시작한 공부...


남들보다 훨씬 늦은 서른네 살의 나이에 시작한 대학 공부였다. 내처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이곳저곳 대학원을 검색했다. 첫 후보는 일반대학원이었다. 다음 날 교육대학원의 면접도 있었다. 일반대학원은 탈락이었고 교육대학원은 합격이었다.


대학원을 준비하며 추천서를 써 주신 교수님께서는 늦은 출발인데 일반대학원보다는 교육대학원을 나와서 교원자격증이라도 취득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는데, 그분의 말씀대로 시작은 하게 된 셈이었다.


교육대학원에서의 수업에서 욕심을 많이 부렸다. 헛 돈을 버린다는 생각을 스스로가 갖지 않도록 열심히 찾아서 공부했다. 저녁 6시 수업, 일주일에 3일, 왕복 3시간 거리, 몸은 무거워도 마음만은 가볍게 그 시간을 즐겼다. 도서관도 마음껏 이용했고 학교 식당도 부지런히 찾았다. 수업이 끝난 후 교수님들과의 식사 자리, 종강, 뒤풀이 등 학우들과 같이 움직였다.


마흔 살, 대학원 5학기가 시작되었다.


시작과 동시에 교생실습을 나가야 했다. 다니는 학교는 서울의 북쪽 끝이었고 집은 부천이었다. 스스로 실습 학교를 찾을 수 없으면 대학 부설 중·고등학교로 실습을 나갈 수 있다는 안내가 있었다. 그러나 부천에서 그곳까지 4주의 교생실습을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집 근처의 학교를 알아봐야 했다.


집 근처의 몇 학교로 전화를 했다. 교생실습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먼저 어느 학교인지를 물었다. 이어 출신 고등학교를 물었고 그리고 나이를 물었다. 모두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담당자의 결정이 아니었고 학교의 방침 때문이라고 말했다. 본교의 졸업생만을 받는다고. 가장 편한 거절 이유라고 생각했다. 서너 곳에서 거절을 당하니 더는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실습을 확정해야 하는 날을 일주일 앞두고 딸이 다녔던 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딸의 초등학교 때 학부모회의 일을 했었기에 졸업하고 나서도 같이 일을 했던 학부모들과 모임을 이어가고 있었고, 다른 곳으로 전근 가셨지만 당시 전화번호도 가지고 있을 때였다.


몇 번을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는데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셨다.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말씀도 덧붙였다. 고마웠다. 집에서 멀지 않은 학교, 친구분이 근무하시는 중학교였다. 오지랖 넓게도 같이 공부하던 학우와 함께 가도 되느냐고 했고 다행히도 함께 교생실습을 할 수 있었다.


교생실습 나간 학교


지도교사는 신규 3년 차였다. 3년 차의 신규지만 나이는 좀 있어서 그나마 나이 든 교생을 지도할 수 있다고 학교에서는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담당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겠지만. 4주간의 실습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아이들은 정말 순수하게 우리를 반겨주었던 것 같다. 젊은 교생은 아니지만, 우리를 학생과 교사의 중간으로 친밀하게도 정중하게도 대해주었던 것 같다.


교사들이 교생을 기피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새로운 업무가 한 달간 생기는 것이다. 지나고 나서도 보고도 해야 하고 행정적 처리도 해야 하니 한 달이 다는 아닐 것이다. 후에 학교 현장에 나가니 교생 담당 교사의 일이 더 분명하게 보였다. 행정 업무 외에도 매일 그들의 움직임을 신경 써야 했고 불편하지 않도록 이것저것 살피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나중에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게 되었다.


수업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수업을 참관할 수 있도록 동료 교사들에게 당부를 해야 했고, 그들에게 수업할 수 있는 기회를 되도록 많이 주기 위해 지필 평가가 임박해서도 자신의 수업에 부담을 느끼며 진도를 빼야 했다. 교생들이 혹시라도 잘못된 정보를 주거나 너무 넓게 가르치는 경우 아이들이 시험 부담은 물론이고 혼란을 느낄 수 있어 조정해야 한다는 것도 나중에 현장에 나가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 길의 끝, 다시 새로운 시작...


그렇게 늦은 대학 입학에서 대학원 공부를 마치기까지 7년,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 13년. 그렇게 다닌 학교를 그만두었다. 겨우 나이를 극복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더는 학교와의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 길은 끝이 났고 이제는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다.


글을 쓰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이 길은 중간중간 혼란스럽다. 예전의 길은 시작만 하면 가야 할 길이 있어서 따라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는데, 지금의 길은 시작을 했어도 정지한 느낌이고 심지어 어느 순간 나는 없는 것 같은 느낌도 있다. 무기력에 빠지지 않으려고 무작정 움직이고 이것저것 하는데, 명확한 목표 설정이 어렵고 잡히지도 않는다. 방향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나이’에 대하여...


공부하던 당시에 학우들에게서 들려오는 말들 중에 내 귀에 꽂히는 말이 있었다. "언니를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같아." 기운을 주기 위해 칭찬으로 하는 말이었겠지만 그 소리가 나올 때는 민망했다. 굳이 나이를 셈하는 것이 필요한가, 싶었다.


요즘은 "나이에 밀리지 않고 진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책도 있고, 날마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랫말도 들려온다. 조심스러운 경고도 마주한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조심성이 많아질 뿐이다."라는 말. 헤밍웨이의 말이 주춤거리라는 의미는 아니겠지, 마음대로 해석한다.


브런치에도 이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역의 블로그 기자로도 활동을 시작했다.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의 자격으로 기사를 올리기도 한다. 오십 대를 정면으로 통과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주춤거리지 않고, 나이에 구속되지 않고 요즘 아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찐' 인생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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