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길 사람들
구영길의 한 골목, 사내가 앉아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거리를 바라보는 그에게 시간은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사내가 일어선다.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것일까. 마시던 커피를 비우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가게 이름은 거북이 식탁. 이성당으로 통하는 구영7길에 위치한 닭볶음탕 전문점이다.
editor 서용원 photo 손영배
거북이 식탁을 운영하는 김은영 대표를 만나 물었다. 방금 무슨 생각을 했냐고. "아무 생각 안 했어요."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별생각 않고, 천천히 살고 싶은 소망은 그의 가게에서도 드러난다. 문을 열면 마치 시골 할머니 댁이라도 온 듯 얼기설기 엮인 공간이 펼쳐지고, 실내는 옛 물건으로 가득 차 있다. 시간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곳. 그래서 어쩐지 편안하다.
수염을 깎으셨네요?
네. 하하. 어떻게 아셨어요?
다른 매체랑 인터뷰한 사진을 봤거든요. 수염으로 덥수룩하실 줄 알았는데 말끔한 분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제가 결혼 준비를 하고 있어서, 어머님을 만나 뵐 때마다 수염을 자르고 있습니다. (웃음)
군산 출신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인스타그램을 살펴보니까 동네의 '인싸'시더라고요.
인싸요? 하하. 인싸는 절대 아니에요. (웃음) 그냥, 주변 분들과 술을 많이 마신 것뿐입니다. (웃음) 그래도 이거는 있어요. 서울 살 때부터 좋아하는 식당이나 술집을 만들어 자주 가고, 사장님도 저한테 더 잘해주시는 그런 관계를 좋아했거든요. 지금도 손님들이랑 술을 마시게 되면 형 동생 하면서 친해지려고 하는데, 그런 모습이 인싸처럼 보인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군산에는 어떻게 내려오신 거예요?
동업하려고 내려왔어요. 압구정에서 군대 후임이랑 가게를 같이 했거든요. 그게 잘 안 되고 회사에 들어갔는데 어느 날 후임한테 연락이 온 거죠. 군산에 내려왔는데 같이 일해 보자고.
어떤 일을 하셨는데요?
나운동에서 양식집을 했습니다.
그래서 메뉴에 크림 국수가 있었군요.
아니요. (웃음) 파스타는 원래 안 팔았어요. 그런데 이전 가게 단골손님들이 물어보시는 거예요. 파스타는 왜 안 하냐고요. 자꾸 물어보셔서 시작했어요.
단골손님이 많은 편인 가봐요.
정말 감사하게 이전 가게도 그랬고, 지금도 많은 편이에요. 저는 이곳이 군산 현지 분들이 찾아 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거든요. 그게 저와 가게에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동업을 그만두시고 이곳 구영길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을까요?
음, 그 친구랑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하고 다시 서울에 올라가려고 했는데 자신이 없는 거예요. 저는 서울에서 너무 바빴거든요. 구로구 개봉동에서 강남까지 차를 끌고 출근하려면 새벽 6시 반에 나와야 해요. 그러면 1시간 20분이 걸려서 강남에 도착하고, 정신없이 일하다가 집에 돌아올 때는 1시간 40분이 걸려요. 왕복 출퇴근 만으로 3시간 이상을 버리는 건데, 집에 와서는 저녁 먹고 조금 쉬다가 10시에 잠드는 게 다예요. 여유가 없었죠. 그런데 군산, 특히 구영길은 정말 여유로워요. 관광지인데 사람이 별로 없어요. (웃음) 그게 단점이자 장점이에요.
그래서 가게 밖에 앉아 여유로움을 즐기시는 거군요.
제가 오후 5시부터 새벽 1시까지 영업을 하는데, 보통 서너 시쯤 준비가 끝나요.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밖에 앉아 커피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멍하니 있는 거죠. 젊은 사람들이 한낮에 그러고 있으면 누가 봐도 백수 같잖아요. 그래도 5시가 되면 가게에 들어와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니까. 어떻게 보면 그런 시간은 힘을 충전하는 거예요. 이런 게 구영길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일과 내 시간을 모두 가질 수 있는. 다른 동네에서 장사할 때만 해도 이런 여유는 못 느껴봤거든요. 이건 들은 이야기인데. 군산에 오신 관광객들은 두 분류로 나뉜대요. 왔다가 볼 것 없다고 실망하는 분들이거나 여유로운 매력에 빠져 계속 찾아오시는 분들로요. 조용한 동네 걷고 여유로운 거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정말 좋은 곳이에요.
가게에서도 뭔가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가게가 이전에 한 할머님이 식당을 하시던 곳이래요. 그래서 건물만의 분위기가 있었어요. 여기가 빛이 잘 드는 위치가 아니라 조금 어두운데, 그게 너무 편안한 거예요. 그 분위기를 유지하고 싶었고,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큰 공사를 하기에도 무리가 있어서 그냥 할머니 집처럼 꾸미기로 한 거죠. 소품도 80년대 저 어렸을 적 봤던 물건들 위주로 가져다 놓고, 간단한 공사는 제가 직접 하기도 했고요. 가게 하나하나마다 제 손길이 녹아 있는 곳이라 그런 느낌이 드는 거 아닐까요?
자개상도 그렇고 전자레인지나 시계 같은 것들도 보면 <응답하라 1988>을 보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소개할 때 추억을 파는 사람이라고 해요. (웃음) 자개는 80년대 잘 살던 집 할머니 할아버지 방에 가구로 맞춰져 있던 거라서 가게랑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근데 구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비싸기도 하고. 그래서 식탁 만드는 업체에 자개 프린트 상을 주문하고, 다리는 떼서 다른 업체를 통해 다시 조립한 거예요. 손이 많이 갔죠. 다른 물건들은 주워오거나 지인들한테 받은 것들인데, 이제 놓을 자리가 없어서 못 받고 있어요.
메뉴도 그래요. 닭볶음탕이나 감자전, 분홍 소시지는 할머니 집에서 자주 나오던 반찬이잖아요. 물론 크림 파스타는 빼고요. (웃음)
가게 콘셉트가 정해지고 거기에 맞게 메뉴를 정했어요. 닭볶음탕은 사실 제가 20대 초중반에 많이 다녔던 가게를 떠올리며 정한 메뉴예요. 영등포역 뒤쪽에 있는 가게인데, 맛있고 분위기도 좋아서 저한테는 최고의 술집이었거든요. 가게를 봤을 때 그 집이 가장 먼저 생각났고, 닭볶음탕을 팔아보자 해서 거기에 맞게 메뉴를 정하기 시작했죠.
닭볶음탕에 특이하게 토마토 베이스 소스를 쓰시잖아요?
전에 양식집을 해서 토마토 베이스를 한식에 넣으면 잘 어울린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닭볶음탕에도 한 번 넣어봤는데, 이게 맛있더라고요. 김치찌개 끓일 때도 넣어보세요. 맛도 깊어지고 스튜 같은 맛이 날 거예요.
이게 반전인 것 같아요. 80년대 분위기 가게에서 닭볶음탕을 파는데, 안에 토마토소스가 들어있고, 크림 파스타를 팔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무슨 맛일지 정말 궁금해지네요.
이따가 해드릴게요. (웃음) 이게 음식도 저를 닮아가는 것 같아요. 저는 양식 사업을 했지만, 한식을 더 좋아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음식을 섞는 거겠죠. 또 저희 음식이 조금 거친 느낌이 있어요. 양도 많고 묵직하달까. 국물도 한 입 먹으면 '크으~'소리가 절로 나오고, 파스타는 1인분을 200g씩 잡거든요. 소스도 꾸덕꾸덕하고요.
자신과 점점 닮은 공간을 만들어 가고 계시는데, 조금 더 바라는 부분이 있을까요?
거북이 식탁을 정말 오래 지키면서 구영길에 더 재미있는 가게를 많이 만들어보고 싶어요. 예를 들면 동남아 분위기의 술집이나, 남자들 아지트 같은 바 말이에요. 군산에 내려와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생기다 보니 같이 놀 수 있는 공간을 계속 만들고 싶어졌어요.
뭔가 경리단길의 장진우 씨가 떠오르는 말이네요.
하하. 재미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어서 저도 같이 노는 게 꿈이에요.
정말 여유 있게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쉬는 날 특별한 일 없으면 동네에 나와요. 가게 앞에 앉아있다가 월요일에 쉬는 사장님들 불러서 커피 마시고, 밤 되면 술 마시고. 되게 재밌어요. (웃음) 또 반대로 화요일에 쉬는 사장님들은 우리 가게 오셔서 같이 놀고. 로컬 라이프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