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시장 속 작은 스페인
<돈키호테>

구영길 사람들

by 서용원

맛있다는 말만큼 요리사에게 기분 좋은 말이 또 있을까. 하지만 고은 대표는 그보다 값진 칭찬을 꿈꾼다. '오늘 즐거웠다'는 말. 자신이 만든 공간에서 자신이 요리한 음식을 먹고 문을 나설 때, 즐거웠다는 기분이 들기 바란다는 그의 표정이 번뜩였다. 음식 한 접시에 즐거움을 담아 파는 곳. 영화시장 골목길에서 만날 수 있는 스페인 음식 전문점 돈키호테의 모습이다.

editor 서용원 photo 손영배


돈키호테는 지난 6월부터 성업 중인 영화타운(구 영화시장) 안에 자리해 있다. 스페인 시장 골목 한 귀퉁이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가게는 대낮부터 찾아오는 손님으로 분주하다. 실내를 가득 채운 유럽풍의 분위기는 어둑한 내부와 조리되는 음식 냄새에 묻어, 마치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이곳, 주인장 역시 스페인 여행 마니아인 게 분명하다.



#4-1.jpg
#2-1.jpg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방문인데, 올 때마다 분위기에 먼저 취하는 것 같아요.

하하. 감사합니다. 여기가 시장 안에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분위기가 더욱 잘 살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런 질문을 초반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스페인에는 한 번도 다녀오신 적 없다면서요? (웃음)

네. 사실 제가 스페인이랑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는 건 아니에요. (웃음) 오히려 가려고 했었는데, 비행기가 맞지 않아서 못 갔을 정도로 연이 닿지 않았던 곳이죠.


그런데도 스페인 음식점을 열게 된 이유가 있나요?

스페인 식문화 중에 타파스를 먹는 문화가 있어요. 보통 점심과 저녁 사이 간단한 요기를 술과 함께 즐기는 건데, 이게 한국에서는 결국 낮술이거든요. 왜냐하면 스페인에서는 점심을 오후 2시나 3시에도 먹고, 저녁을 밤 9시 넘어서 먹기 때문에 타파스는 주로 오후 6시부터 먹는대요. 해질녘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저녁을 오후 6시부터 먹으니까, 그 시간이 낮으로 당겨질 수밖에 없는 거죠. 제가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게 이런 낮술 가게라서 타파스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3-3.jpg

그 전부터 요리는 계속해오셨던 건가요?

네. 주방에서 일한 지 12년, 13년쯤 됐을 거예요. 대학교 3학년 때 자퇴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까요. 저는 원래 법대를 다녔어요. 그러다가 아르바이트로 주방 일을 잠깐 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설거지만 엄청 시켰어요. 슬슬 지겨워질 때쯤 간단한 메뉴를 하나 알려주셨는데 어느 날 제가 만든 요리가 빈 접시로 돌아오는 걸 보니까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조금은 묘한 기분도 들면서 뿌듯하기도 하고요. 그때부터 조금씩 더 배워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계속 일을 하다가 학교를 먼저 자퇴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죠. (웃음)


요리가 적성에 딱 맞으셨나 봐요.

개인적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으면 법대 안 가고 고등학교 때부터 요리를 전공해서 배우고 싶을 정도예요. 물론 힘들지 않았다는 건 아닌데,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힘든 줄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아요. 제가 베트남에서도 한 4년 정도 일했었거든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날씨도 덥고 언어도 안 통하니까 힘든 점도 많았는데, 막상 지낼 때는 하루하루 배우는 기분이 들어서 오히려 좋았어요. 미쉐린 식당, 현지 식당에서 찾아가서 몰랐던 음식이나 조리법도 알게 되고, 재료나 향신료에 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고요. 이런 일들이 적성에 맞았다기보단 그냥 재밌는 것 같아요.


그럼 베트남에서 돌아오셔서 가게를 여신 건가요?

제가 여기 영화타운 운영 맡고 계신 조권능 형님이랑 친분이 있었거든요. 군산으로 돌아와서 연락드렸더니, 영화타운에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하셔서 여기에 가게를 열기로 했죠. 그런데 바로 열지는 못했어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영화타운 사업이 조금씩 지연돼서 기간이 애매하게 남았거든요. 그런데 또 다행인 건, 그 기간에 제가 바이에른 식육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는 거예요. 독일에서 정육점이나 소시지 제조를 하려면 자격증(마이스터 Meister)이 있어야 하는데, 바이에른 식육학교는 독일에서도 인정받는 교육 기관이거든요. 그곳에서 교육받은 한국인 마이스터 한 분이 학교와 연계해 분교를 세우셨고, 그곳에 다니며 육가공 기술을 배울 수 있었어요. 연장 선상으로 최근에는 독일에서 3년마다 열리는 육가공 전시회도 다녀왔고요. 부족했던 부분도 채우고, 새롭게 공부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준비는 독일에서 돌아온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3-1.jpg
#3-2.jpg
#4-2.jpg
#4-3.jpg

매장 인테리어도 그렇고, 소품 같은 것들을 보면 준비를 정말 철저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이 식당에서 하고 싶었던 게 '영화시장 속 작은 스페인'이었거든요. 그래서 오픈 과정에서부터 스페인 한 골목에 있는 식당 느낌을 내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현지 느낌을 구현하는 데만 힘을 쏟지는 않은 것 같아요. 무조건 스페인 제품만 사용한다든지, 어느 한 가게를 똑같이 베낀다든지 하는 것들 있잖아요. 그런 것보다는 현지에서 장사하는 분들도 여행 갔다가 사 온 물건 갖다 놓고, 선물 받은 물건으로 장식하면서 그들만의 가게를 완성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스페인풍이 나도록 꾸몄지만, 세부적인 것들은 선물 받은 물건도 있고 그래요. 알록달록한 조명은 군산 플리 마켓에서 샀어요. 지역 작가분이 만드시는 유리 공예예요. 다른 조명은 앞에 노래 주점에서 버린 거를 주워 온 거고요. (웃음)



#4-4 (1).jpg

서로 어울리는 물건을 가져다 놓으신 대표님의 안목도 훌륭하신 것 같아요. 식탁 위에 있는 물병도 너무 예쁘고요.

아, 그 친구는 이탈리아에서 왔어요. 원래는 기름병인데 코르크 마개 대신 와인 보관 뚜껑을 사용해서 물병으로 쓰고 있죠. 실제로 가게에서 사용하는 집기나 식기류 같은 것들은 군산에서 보기 힘든 제품이에요. 프라이팬이나 식기는 프랑스제고, 접시는 포르투갈 코스타노바 제품을 사용해요. 아, 그리고 한 가지 꼭 보여드리고 싶은 제품이 있는데 저기 슬라이서(Slicer) 보이시죠? 저게 나름 슬라이서계의 페라리라고 불리는 제품이에요. (웃음) 베르켈 사 제품인데, 국내 정식 수입이 안 돼서 직구를 했어요. 어렵게 구한 제품이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하하.


가격 생각을 안 할 수 없었을 텐데, 비싼 외국 제품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유해물질이 나오는 집기, 식기들로 요리를 하고, 손님들께 대접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검증된 브랜드를 찾다 보니 가격대가 높은 제품으로 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하지만 찾아오시는 분들께는 최고로 대접하고 싶은 저의 마음이 녹아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시장 속에 있는 작은 가게일지라도 말이에요. 그래서 식기류나 초기 인테리어값을 메뉴 가격에 녹이지는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저의 욕심인 거니까. 이런 부분까지 고려하면, 다른 스페인 식당을 가보신 분들은 저희 매장이 저렴하게 느껴지실 거예요.



#9.jpg
#7-2.jpg

이렇게 멋진 대표님의 생각과 좋은 식기들로 만들어진 요리가 맛이 없을 리가 없겠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음식은 음식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긴 해요. 한 가지 예를 들면 미트볼 요리인 알 본 디가스(Albondigas)에 올라가는 가니쉬(Garnish)가 두 개인데, 베이컨 칩과 마늘 칩이에요. 마늘 칩 같은 경우는 우선 트러플 커트로 마늘을 얇게 자르고, 물에 담가서 전분기를 뺀 뒤 물기를 말려야 해요. 그다음은 낮은 온도에서 타지 않게 조심하면서 튀겨야 바삭한 맛이 살아납니다. 베이컨 칩 역시 낮은 불에서 타지 않게 기름기만 쫙 빼고 구워야 맛있고요. 함께 나가는 양파 볶음에는 여러 향신료를 배합해야 하고, 소스는 한 시간 동안 끓인 토마토소스를 사용해요. 이런 노력이 모여, 드시는 분이 맛있게 즐기실 수 있다면 그걸로 저는 좋아요.



#5-3.jpg
#5-2.jpg
#5-4.jpg
#5-5.jpg
#1_.jpg

타파스를 포함하면 메뉴가 꽤 다양한 편인데, 몇 가지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손님들이 꽤 많이 물어보시는 질문이에요. 아무래도 낯선 음식이다 보니 어려우실 수 있어서 제가 설명도 해드리거든요. 우선 전채 요리로 토마테스 라마(Tomates rama)가 있는데, 토마토를 절인 샐러드예요. 와인 식초와 토마토의 산미를 통해서 전체적인 입맛을 돋우는, 엄청난 역할을 하죠. 타파스로는 가지에 소를 채워서 치즈를 얹어 구워내는 베렌헤나 레예나(Berenjena rellena). 그리고 많이 익숙하실 감바스 알 아히요(Gambas al ajillo)와 아까 말씀드린 알 본 디가스가 처음 도전하기 좋습니다. 가장 자신 있는 메인은 안심 스테이크(Bife de lomo)인데요. 고기 밑에 중동이나 아프리카식의 후무스(Hummus)를 깔고, 스페인의 대표적인 소스인 로메스코(Romesco)를 야채와 함께 곁들이는 음식이에요. 완전 스페인식은 아니고, 스테이크에 관한 저의 해석이 추가된 방식이죠. 가격대가 조금 높은 편이라서 막 추천하지는 않는데, 드시고 나면 왜 가장 자신 있는지 아시지 않을까. (웃음) 특별한 날 한 번 드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곳 구영길은 근대문화거리 지구라서 그런지 말씀해 주신 스페인 요리와는 약간 거리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돈키호테와 구영길이 어떤 방식으로 함께 발전하면 좋을까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스페인 중심가에 있는 비싼 식당이 아니라, 골목 식당 느낌을 내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한적한 곳으로 여행 와서 힐링하는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구영길이 제격인 거죠. 또 이 동네가 옛날에는 미군이 살았고, 그전에는 일본인이 많이 살던 곳이었으니까 그런 역사를 살려서 다국적 면모를 더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스페인 옆에 일식, 그 옆에 미국식 햄버거, 앞에는 한식집, 이런 식으로 가게들이 생기는 거죠. 여행객분들이 굳이 이곳까지 와야 할 이유가 필요하다면, 우리 쪽에서 먼저 특별한 아이템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아는 동생들, 친구들을 계속 꼬시고 있어요. (웃음) 실제로 미쉐린 식당 경력이 있는 친구 한 명은 곧 내려올 예정이에요. 이렇게 젊고 능력도 있는 친구들이랑 작은 가게를 여러 개 만들어서 동네 분위기도 조금씩 바꾸고,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런 움직임이 대표님과 돈키호테의 최종 목표와도 관련이 있을까요?

물론이죠. 하고 싶은 건 정말 많아요. 그렇지만 본업에 충실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천천히 이루어나가야죠. 당장은 가게에서 기분 좋은 한 끼를 대접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저는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지만, 음식을 파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오히려 기분 좋은 한 끼를 파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공간의 분위기부터 조명, 음악, 곁들이는 술까지 기분 좋은 한 끼를 위한 모든 것들을 준비해야 해요.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냥 맛있었다는 말보다는 '즐거웠다'는 말이 나올 수 있게끔 말이죠. 그리고 돈키호테 다음으로는 독일식 정육점을 열고 싶어요. 빵집처럼 소시지랑 햄이 종류별로 진열된 모습인데, 여기는 공간이 좁아서 생산과 진열까지 할 수가 없거든요. 더 넓은 공간을 구해서 수십 가지의 소시지를 직접 만들고 손님들께 내놓을 수 있는 가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혹시 스페인 가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웃음)

아. 하하. 안 그래도 곧 갈 예정이에요. 날짜도 정했어요. 8월 6일부터 16일까지. (웃음) 가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사 올 예정입니다. 또 많이 먹고 와야 해요. 하루에 다섯 끼씩 먹을 거예요. 준비됐어요.

#8_.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