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큐레이션
살어리 살어리랏다 선유에 살어리랏다
고려가요 <청산별곡>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살어리랏다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 구절에서 '청산'은 이상향을 의미합니다. 머루와 다래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곳이죠. 신선들이 노니며 장기를 두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부터 우리 조상님들은 이상적인 세상, 혹은 그에 준하는 장소에 신선이 산다고 믿었으니까요. 갑자기 왜 이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느냐. 제가 선유도에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editor 서용원 photo 서용원, 손영배
신선이 노니는 섬이라 하여 선유도라 불렀다고 합니다. 섬 북쪽 봉우리의 형상이 바둑을 두는 신선의 모습과 닮았다는 말도 있고요. 그만큼 속세를 벗어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뜻이죠. 선유도는 불과 몇 해 전까지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는 섬이었습니다. 손꼽히는 노을과 호젓한 군도의 풍경은 꽁꽁 감춰질 수밖에 없었죠. 그 매력을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비밀의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다리가 개통되어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심지어 대중교통으로도 갈 수 있다고 하네요.
그리하여 '군산 수집' 그 세 번째 주제로 선유도를 선정했습니다.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1박 2일 선유도 여행 코스를 소개할 예정인데요. 일하러 갔다가 제대로 힐링하고 돌아온 선유도 이야기, 빨리 들려드리고 싶네요. 에디터가 직접 다니며 만난 5곳의 장소와 5명의 사람들.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Day1) 12:30 새만금 방조제
군산에 도착해 차를 빌려 선유도로 향합니다.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3시간 정도 걸린다는 말에 차를 빌리기로 했습니다. 선유도로 들어가는 관문인 새만금 방조제에 다다랐을 때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망망대해를 끝없이 가로지르는 방조제와 저 멀리 보이는 고군산군도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새만금 방조제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약 34km)로 기네스북에 올랐는데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반짝이며 흐르는 푸른 바다까지 더해지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뽑혀도 손색없을 것 같습니다. 방조제 한편으로는 차를 세우고 전경을 감상하거나 방조제로 내려갈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가까이서 즐길 수도 있습니다. 마치 저 아래 낚시꾼들처럼 말이죠.
Day1) 13:30 안정민박식당
새만금의 매력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경치를 감상하다 보니 제법 시간이 흘러있었습니다. 배가 고파 발걸음을 재촉해 선유도로 향합니다. 선유도 주변으로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섬이 있는데요. 이를 통틀어 고군산군도라고 부릅니다. 총 63개의 섬 가운데 현재 16개의 유인도가 있다고 하네요. 선유도는 주변 섬들과 다리로 연결되어 육로로 왕래가 가능한 거죠. 길을 따라 고군산대교와 선유대교를 차례로 건너면 선유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선유도는 차로 닿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섬인지라 대부분 식당이 횟집입니다. 점심부터 먹기에는 부담이 있죠. 그래서 찾아간 곳이 바로 안정민박식당. 바지락 칼국수 전문점입니다. 공용 주차장 바로 앞에 위치한 식당은 눈에 띄는 간판 덕에 멀리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선유도 주민 부부가 운영하는 이곳은 선유도에서 잡은 바지락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덕분에 더욱 신선하고 깊은 맛의 칼국수를 즐길 수 있죠. 고추로 국물 맛을 낸 것도 특징입니다.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이 아침 해장으로도 좋을 것 같네요.
"여기서 20년을 넘게 장사했어요. 주위에서 다들 생선탕, 매운탕도 하라고 하는데, 우리는 칼국수만 해. 다른 건 힘들거든. 또 내가 몇 년 전에 수술을 해가지고. 그 대신 선유도에서 잡은 바지락만 쓰지."
짧은 말과 함께 칼국수를 내어주곤 이내 사라지는 사장님. 8대째 선유도에서 터전을 일궈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사진은 한사코 거부하셔서 찍지 못했지만, 사장님과의 대화에서 섬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따끈한 칼국수 한 그릇에 오롯이 녹아들어 있죠. 오랜 세월 지켜온 사장님의 칼국수는, 결국 선유도의 맛 아닐까요? 사장님의 뚝심이 담긴 칼국수 덕분에 속을 든든히 채울 수 있었습니다.
Day1) 14:30 선물(선유도에 물들다) 펜션
따뜻한 식사를 마치고 짐을 두기 위해 숙소로 향했습니다. 숙소는 선유도에 물들다 펜션으로 정했는데요. 최근 선유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곳은 건물과 주인장에 얽힌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집입니다. 섬 주민이자 섬에서 태어난 임동준 사장은 자신이 나고 자란 한옥을 직접 펜션으로 개조했습니다. 1974년 그의 할아버지가 지은 집은 4개월 동안의 공사에도 끄떡없었죠. 원형을 최대한 보전하고자 했던 그의 마음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덕분에 집은 고군산군도 유일의 근대식 한옥 펜션이 되었습니다. 체크인 시간을 조금 앞두고 찾아온 손님에게 그는 직접 내린 드립 커피 한 잔을 내밀었습니다.
"선유도다운 장소가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요. 외지에서 일하면서 봤을 때 제가 알고 있던 섬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고향을 지키기 위해 돌아왔어요."
조상 대대로 선유도에서 살았다는 그는 섬을 진심으로 아끼는 듯 보였습니다. 대화의 물꼬가 한번 트이자 섬의 역사까지 줄줄 꿰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시간이 나면 근처 산책을 해보세요. 기와나 도자기 파편이 쉽게 눈에 뜨일 거예요. 이 주변이 고려 시대 때 송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군산정이 있던 자리였거든요. 여기만 그런 게 아니라 왕의 별장인 숭상 행궁, 그들을 위한 자국사 등 섬 전체가 고려 유적지라고 보시면 돼요. 저기 건너편에는 조선 시대 때 사용하던 수군 주둔지가 있었고요. 선유도는 역사적 배경을 알고 오시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요."
실제로 선유도는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설화적 이야기도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새 나라 새 주인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망주봉 전설과 신라 시대 명필 최치원의 탄생 설화가 대표적이죠.
"제가 잠깐 공부했던 미국만 보아도 짧은 2백 년 역사를 부각하기 위해 노력을 엄청나게 들여요. 그런 거에 비하면 천 년 역사가 깃들어 있는 선유도에서 역사가 방치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죠."
군산이 '군산'이라 불리기 전, 선유도의 이름은 군산도였습니다. 지리적 요건이 뛰어나 왜구를 방어하는 수군 부대가 주둔하던 곳이기도 했죠. 이후 부대가 육지(지금의 군산 땅)로 이전하면서 고(古)군산으로 이름이 바뀌긴 했지만, 선유도 일대는 이전부터 서해안의 요충지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섬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활용하고, 키우고 싶다는 임동준 사장. 환하게 웃는 그의 미소에 마침 밝은 햇살이 비추었습니다.
Day1) 15:00 선유3구 어항 마을
사장님의 추천대로 펜션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펜션을 나와 왼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옥돌 해변이 나오는데요. 모래 대신 매끈한 조약돌이 널려 있는 조그마한 해변입니다. 섬 외곽에서도 끝에 위치해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해변이라고 하네요. 한쪽 면이 절벽으로 막혀 있어 감춰진 나만의 공간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을 위해 섭외라도 한 것처럼 수영을 즐기는 외국인까지 보이고. 마치 유럽의 한 프라이빗 해수욕장에 들어온 기분입니다. 수영복만 챙겼다면 바로 뛰어들었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립니다.
기도하는 손 모양을 닮은 등대가 있다는 말에 어항 마을로 향했습니다. 한적한 어촌 마을을 지나면 작은 항구가 보이기 시작하는데요. 유람선을 타려는 관광객과 고기잡이배에 물건을 싣는 어부들로 제법 활기찬 모습입니다. 두 손을 모으고 있는 기도 등대를 바라보며 걷는 길, 어부와 낚시꾼들로 길은 좁아지고 바다 먼발치에는 김 양식장이 둥둥 떠 있습니다. 인류를 풍요롭게 해주는 바다. 그 바다와 연을 맺으며 살아가는 이들의 마을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사실이 문득 실감 납니다. 이방인을 경계하는 듯 거세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어촌 마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Day1) 16:00 선유도 해수욕장
마을을 벗어나 해수욕장으로 향합니다. 선유 3구는 좁은 흙길로 이어져 있어 걸어 다니기 좋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라는 펜션 사장님의 말이 옳았던 거죠. 역시 현지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해수욕장이 보입니다. 선유도 해수욕장은 육계사주(陸繫沙洲) 가운데 그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한 곳인데요. 원래는 두 개의 섬이었던 선유도는 섬과 섬을 이어주는 모래가 퇴적되면서 하나의 섬으로 이어지게 된 거죠. 그 때문에 해수욕장 앞뒤로 두 개의 바다가 공존하는 특이한 지형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조수 간만의 차도 커 물이 빠지는 시간 해수욕장 안쪽으로는 모래사장이, 뒤쪽으로는 갯벌이 넓게 펼쳐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지형 덕분에 멀리 나가도 물이 얕아 안전하게 수영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죠. 이뿐만 아니라 해수욕장 양쪽에 자리한 산봉우리와 그 사이로 보이는 바다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햇빛을 받아 노랗게 물든 모래사장과 눈부시게 반짝이는 바다만큼은 두 눈으로 직접 보셨으면 좋겠네요. 괜히 왕들의 별장이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걸 단번에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해수욕장 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으며 뜻밖에 찾아온 여유를 실컷 즐길 수 있었습니다.
Day1) 16:30 장자도
입구에 다다르자 자전거와 전기 오토바이 등을 대여해 주는 가게가 늘어서 있습니다. 제법 많이 걸은 터라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는데요. 오토바이를 타면 다리로 연결된 섬들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겠지만, 풍경을 찬찬히 눈에 담고 싶어 자전거를 선택했습니다. 자전거는 공공 대여소를 이용했는데, 3시간에 천 원밖에 하지 않는 가격이 아주 흡족했죠. 안장이 아주 조금 불편한 점을 뺀다면요. 하하.
자전거에 올라타 장자도로 갔습니다. 선유도와 장자도는 장자대교로 연결되기 전부터 자전거, 또는 걸어서 오갈 수 있는 다리가 있었는데요. 선유도에 비하면 작은 섬이지만 군도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대장봉이 있어 예전부터 찾는 발걸음이 많았다고 합니다. 대장봉은 142m의 낮은 봉우리지만 우뚝 솟은 바위산이 가파르다고 하네요. 산을 오르는 건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장자도 해상 산책로로 향했습니다. 해상 산책로는 바다 위에 다리를 세워 먼바다를 쉽게 구경할 수 있게 만든 길입니다. 서해의 지평선을 방해물 없이 보고 싶다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죠. 돌아오는 길에는 대장봉 산기슭 마을이 눈에 띌 텐데요. 마치 알프스의 산골 마을처럼 주황색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이국적인 느낌을 줍니다. 반대로 건너편에는 해 질 녘 어촌 마을의 고즈넉함을 머금은 방파제가 뻗어 있죠. 동양과 서양, 산과 바다 등 상반된 아름다움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섬. 크기는 작지만 다채로운 볼거리가 넘치는 장자도입니다.
Day1) 17:30 카페 폴폴(For Fall)
다시 선유도로 돌아와 쉴 곳을 찾습니다. 세 시간 가까이 돌아다니느라 힘이 빠진 탓이죠. 일하면서 적당한 휴식은 필수입니다. 여행도 마찬가지. 해수욕장 입구 근처 카페 폴폴로 들어갑니다. 카페를 찾기 힘든 선유도에서 폴폴은 몇 안 되는 커피 전문점입니다. 그마저도 식당 사이 감춰진 편의점 건물 2층에 자리해 발견하기도 쉽지 않죠. 하지만 긴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 보면 유수민 사장이 꾸민 담백한 공간이 펼쳐집니다. 분홍색 내벽에 무심하게 놓인 식탁과 의자들. 그리고 바깥이 한눈에 들어오는 대형 유리창까지. 인테리어의 전부입니다. 그 대신 주인장을 닮은 아기자기한 소품과 그림들이 빈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죠.
"아인슈페너를 드셔보세요. 매장에서 직접 만드는 수제 크림인데 진짜 맛있어요. 예전에 근무했던 호텔 베이커리에서 크림빵을 팔았는데,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많았거든요. 그 레시피를 바탕으로 만든 거라 자신 있어요."
앳돼 보이는 그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메뉴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호텔관광학과를 졸업하고 어렸을 때부터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네요.
"남편 따라 군산으로 왔어요. 남편은 아래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제가 위에서 카페를 하는 중이죠. 올해 2월에 문 열었으니까 벌써 반년이 지났네요. 처음 카페는 계획에 없던 거라 급하게 준비하긴 했지만, 최선을 다했어요. 몇 군데 부족한 점이 있어도 잘 봐주시면 좋겠어요. (웃음)"
그의 말대로 아인슈페너 한 잔을 들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달콤하면서도 자꾸 당기는 맛에 크림만 골라 먹느라 커피만 남아버렸네요. 음료 외에도 샌드위치와 과일 와플 등 먹을거리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옆 테이블이 주문한 와플을 힐끗 보니 과일이 듬뿍 올라간 것이 먹음직스러웠지만, 저녁 식사를 위해 꾹 참기로 합니다.
광주에서 태어나 낯선 곳인 군산, 그중에서도 선유도에 자리 잡은 젊은 주인장은 선유도의 매력을 자연으로 꼽았습니다. 특히 석양 진 하늘과 붉은빛으로 물든 바다는 정말 아름답다고 하네요. 이번에는 현지인의 말을 믿고 석양을 보러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Day1) 18:30 선유도 해수욕장의 노을
선유도를 비롯한 고군산군도는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가 많다고 합니다. 서해의 끝자락에 위치한 지리적 요건 덕분일 텐데요. 선유도 해수욕장 역시 손꼽히는 노을 명소입니다. 카페에서 나와 자리를 잡기 위해 바다로 향하는 길. 온종일 맑았던 하늘에 구름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노을도 못 보고 갈 수는 없어 일단 대기. 하지만 짙은 구름 아래로 힘없이 넘어가는 태양과 미약한 석양을 보고 힘이 빠져버립니다. 저녁 식사도 미루고 기다린 노을이라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 미적거리며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하늘이 심상치 않습니다. 아래서부터 분홍빛을 내며 물들어 가더니 바닷물까지 자신의 색으로 물들여버립니다. 그야말로 장관. 태양에서 옮겨붙은 불이 구름으로 번지기라도 한 듯, 온 하늘이 화염에 휩싸인 것 같습니다. 불길은 하늘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육지로 번져 마침내 지켜보던 이들의 눈동자마저 물들여 버렸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기다린 끝에 볼 수 있었던 이날의 노을. 뜨겁게 타오른 석양이 낸 생채기는 오랫동안 아물기 어려울 것 같네요.
Day1) 19:00 고래섬 식당
저녁 식사는 펜션 사장님의 추천을 받고 찾아간 고래섬 식당. 낮에 방문한 선유 3구 어항 마을에 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횟집이지만 고래섬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는데요. 이야기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배 한 척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 아버지가 배에 손님들 태우고 바다낚시하고, 민박할 사람들은 재워주고 그러는 거로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저까지 배를 타게 된 거죠. 저는 육지로 나가서 학교 다니고 그랬었거든요. 벌써 20년 가까이 된 옛날 일이죠 뭐."
배의 이름은 고래섬. 선유도 바다에 고래가 있냐는 질문에 그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 고래섬인 걸까요?
"모르겠어요. (웃음) 정말로. 제가 지은 건데도 이유를 이렇게 물어보면.… 하하. 아무튼 배 이름이 고래섬이니까 식당도 고래섬 식당으로 짓게 된 거죠. 식당은 단골손님들이 하도 어머니를 귀찮게 해서 시작한 거예요. 낚시해서 잡아 온 생선에 탕이며 반찬이며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 맛을 본 손님들이 이 솜씨면 식당을 하라고 거듭 말해서 시작하게 됐죠. 하는 김에 건물도 새로 짓고 수리도 한 거고요.""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는 임장군 사장은 누가 봐도 어부입니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떡 벌어진 어깨는 그의 지난 세월이 녹록지만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죠.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바다는 우직하게 살아온 그와 가족에게 행복을 안겨주었으니까요.
"우리는 자연산 쓴다고 말 안 해요. 자연산으로는 여기 오시는 손님들 수요를 못 맞추죠. 그 대신 저희 식당은 직접 안 만든 음식이 없어요. 메인 요리부터 같이 나가는 자잘한 반찬까지 어머니 손을 거쳐서 나가죠. 회만 저나 저희 아버지가 썰고요."
실제로 식당의 안주인이신 어머니는 음식 일로 바빠 간단하게 인사만 나눴을 뿐 제대로 얼굴도 뵙지 못했습니다. 대신 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어떤 분인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죠. 이날 주문한 회 정식에도 어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음식은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한 상 가득 차려진 식탁 앞에 앉았습니다. 사장님이 직접 썰어 주신 광어회와 해산물, 어머니의 손맛이 담겨 있는 김치까지. 완전한 정식(正食)입니다. 마치 오랜만에 시골 할머니 댁에 갔을 때 받아 보는 밥상 같달까요. 그 맛에 푹 빠져 젓가락을 쉴 새 없이 놀리고 말았습니다. 두툼한 생선회를 간장과 초장에 번갈아 몇 점을 집어먹었는지, 매운탕은 또 어찌 그리 얼큰하던지. 공깃밥 두 그릇을 비우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죠. 하지만 이 역시 여행의 묘미 아니겠어요? 일상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을 잔뜩 해보는 거죠. 잔뜩 볼록해진 배를 진정시키기 위해 밤바다를 바라보며 펜션까지 크게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계획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즐거운 선유도에서의 밤이 저물어갑니다.
Day2) 11:30 무녀 2구 버스 카페
퇴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분주하게 아침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사장님은 여유 만만. 급할 것 없으니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라고 합니다. 짧게나마 둘러본 선유도의 아침은 오후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이 더욱 매력 있게 다가왔달까요. 그 모습을 조금 더 오래 담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한 채 섬을 빠져나갑니다.
선물 펜션은 조식을 따로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군산으로 돌아가기 전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바로 무녀도에 있는 버스 카페로 말이죠.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미국식 스쿨버스가 눈길을 사로잡는 이곳은 무녀도에서 가장 핫한 카페입니다. 버스를 배경으로 수많은 인증 사진이 SNS에 올라오고 있죠. 약간 이른 시간에 방문한 덕에 사장님을 비롯한 직원분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 애교 만점 마스코트인 볼트도 함께 말이죠.
"저기 마을에 노란 지붕 집 보이시죠? 저기가 제 집이에요. 저기서 태어나고 쭉 자랐어요. 커서는 육지로 나가긴 했지만, 여기만 오면 기분이 참 편해지더라고요. 지금도 여기 이렇게 앉아서 앞에 쥐똥섬이랑 바다랑 보고 있으면 편안해져요."
무녀 2구 마을에서 태어난 이광욱 사장은 마을에 대한 애착이 깊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요. 다른 곳에 비해 낙후된 채로 방치되는 마을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합니다.
"올해로 3년째 운영하고 있는데 원래 계획은 오시는 분들이 커피 한 잔 들고 마을 한 바퀴 구경하게 만드는 거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도로 확장 공사가 막혀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죠. 여기 무녀 2구 마을은 건너편 1구에 비해 너무 낙후되어 있어요. 또 관광객분들도 선유도랑 장자도로 가시지, 여기는 잘 오지 않거든요. 그래서 생각한 게 버스예요."
군산 시내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했던 그는 스쿨버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대한민국의 작은 섬까지 버스를 들여오겠다는 생각은 쉽게 할 수 없죠. 그의 관심과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함이었다면 선유도로 갔을 거예요. 그러면 저희 마을은 계속 뒤처지겠죠. 사람들을 무녀 2구로 오게 하고, 또 편안하게 쉬었다 가실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 하나씩 헤쳐나가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사장님은 직접 만든 수제 버거를 건넸습니다. 예전 시내에서 수제 버거 가게를 운영했기 때문에 더욱 자신 있다고 하네요. 그의 말대로 버거는 맛있었습니다. 특히 갓 구워진 고기에 올라간 신선한 채소가 신의 한 수였죠. 미리 만들어 놓은 패스트푸드가 따라 할 수 없는, 건강한 맛입니다. 마지막 한 입까지 입 안 가득 밀어 넣고 시원한 아메리카노로 마무리. 고군산군도에서의 식사는 이렇게 끝까지 완벽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돌아갈 일밖에 남지 않았네요.
길었던 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돌아가는 길, 햇빛 받아 반짝이는 섬과 바다를 눈에 담기 위함인지 속도가 나질 않네요. 반대편으론 섬의 볼거리와 먹거리를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줄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들도 섬의 이야기를 함께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꿈처럼 지나간 선유도에서의 이틀. 그사이 보고, 듣고, 먹은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러야겠습니다. 다음은 또 어떤 군산을 수집해서 돌아올까요? 에디터의 군산 수집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