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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라 Feb 21. 2019

#2. 아들 같은 사위



나는 사과를 먹지 못한다. 백설공주라도 된 마냥 먹으면 입술이 붓고 아프다. 사과뿐 아니라 웬만한 과일들은 대부분 그렇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 냉장고에서는 과일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결혼 전에는 매일 같이 과일을 찾아 먹던 아내도 이제는 남편 닮아 과일을 점점 찾지 않게 되었다.

결혼 전 처갓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때의 심경은 마치 취업 직전 면접장에서의 긴장감과 비슷했다. 멋쩍은 웃음만 짓고 있던 게 생각이 난다.

첫 만남에 너스레를 떨 만큼 성격이 쾌활하지 않아서 굉장히 소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였다. 아니 사실은 진중하고 진실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했으나, 소심하고 말 수 적은 사위로 보였으리라.

넉살 좋은 사위이고 싶으나 본래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식사 내내 물어봐 주시는 말에 대답이나 할 뿐이었다.

어찌어찌 식사를 마치자 장모님이 과일상을 내오셨다. 오 마이 갓.
안 그래도 소극적인 나의 이미지에 방점을 찍는 대사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저는 과일 알레르기가 있어서...'


유난까지 떤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서 도저히 그러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포크로 사과 한 조각을 콕 찍어 입에 집어넣었다. 그렇다, 집어넣었다.
중학교 때 어머니가 억지로 나에게 사과를 먹여 본 이후 처음 있는 사과와의 재회였다.

사과를 내 입에 전달 후 슬그머니 쟁반 위에 내려놓은 나의 포크는 야속하게도 장모님 손에 의해 다시 사과가 콕 찍혀 내 손안에 돌아왔다.

사실은 굳이 먹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민하고 소심함의 극을 달리는 나의 성격상 도저히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입이 짧네'


혹여나 나올 말들을 원천 봉쇄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때의 마음이랄까.

그 후로 약 30분 후, 내 입술은 퉁퉁 부은 붕어처럼 되어버렸고 나는 못 먹으면 못 먹는다고 말도 못 하는 바보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아들 같은 사위라는데, 나는 여전히 손님 같은 사위이다. 그것도  불편함이 있어도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공짜 손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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