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경험해봐야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상담을 하려면 부모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by 느린토끼

한때는 내 얼굴에 주름이 얼른 생기길 바랐다.


20대 중반에 처음 청소년 상담자로 일하게 된 나는 부모 상담이 참으로 부담스러웠다.


‘선생님, 결혼은 하셨어요?’

‘목소리는 안 그랬는데 어려 보이셔서 놀랐어요.’


라는 말을 들으면 부모님께 초짜임을 들켰다는 게 당혹스러웠다.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이 지도 방법이나 양육의 어려움에 대해 말할 수 있는지 나조차도 자신이 없었다. 같은 1년 차인데도 20살 아들이 있는 동료 상담선생님이 부모 상담이 쉽다고 하니 ‘나도 아이를 키워봐야 하나?’라는 의문을 머릿속에 무겁게 달고 살아왔다.


부모 경험은 물론 상담에 도움이 된다. 아이 상담을 의뢰할 때 상담사에게 우리 아이를 믿고 맡겨도 될지 여러 요소로 가늠한다. 그중 하나가 상담경력과 더불어 양육 경험이다. 상담사가 아이가 있으면 공감대가 형성된다. 아이를 키우는 것 자체가 아동의 발달 및 훈육 방법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의사가 치질에 걸려보지 않아도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것처럼 직접 경험은 필수는 아니다.


한 사람이 하는 경험의 세계는 한정적이다. 모든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경험이 같을 순 없다. 오히려 상담사의 개인적 경험이 내담자 부모에게 투사되어 내담자를 보는데 객관성을 잃을 수도 있다.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내가 알코올 중독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상담에서 높은 효과를 내기 위해선 연구, 근거를 바탕으로 한 개입이 필요하다.


상담을 잘하고 싶고 유능해지고 싶은 마음에 ‘결혼은 안 해도 얘는 키워봐야 하나.’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내가 키워야 할 건 아이가 아니라 전문성이다.


Norcross & Lambert (2011)의 메타분석에 따르면, 상담 성과를 결정짓는 요인은 상담자와 내담자와의 관계, 상담기법 및 이론적 접근, 내담자 특성 등으로 직접 경험은 포함되지 않는다. 즉, 상담 효과는 직접 경험보다 '많은 경험과 정확한 이론적 접근'이 좌우한다. 예를 들어, 주요우울장애가 있는 내담자에게 효과적인 방법이 인지행동치료라고 하면, 관계를 잘 형성하고 인지 행동적 접근을 활용하는 것이 상담을 잘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수많은 사례 중에 단지 몇 가지만을 경험하는 것이다. 상담을 잘하기 위해선 문제유형별 효과적인 상담이론, 효과가 입증된 기법을 훈련받는 것이 더욱 정확한 방법이다. 내가 영유아 부모라면 집안일에 양육에 치여 충분히 상담 능력 개발을 할 여유가 없을 수 있다. 이 경우 상담역량 개발에 시간을 내기 어려워 상담에 직접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난 결혼을 하지 않아 시간 여유가 많기에 연수를 맘껏 듣고 수퍼비전 보고서 작성에 오롯이 시간을 쓸 수 있다. 자기계발 시간이 충분한 것이 전문성 향상에는 더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생각하니 애엄마가 되어야한다는 무언의 압박에 벗어나 내가 정말 원하고 잘하고 싶은 것에 집중할 수 있다.


나에게 없는 것보다 있는 것, 보이는 것 보단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꿀 수 없는 것보단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다. 내게 필요한 것은 꾸준히 내담자와 사례를 연구하고 피드백을 받는 것이다. 물론 결혼 및 부모에 대한 경험이 없는 것은 다른 방법으로 보완은 필요할 순 있다. 하지만 결혼과 육아경험이 없다는 핑계나 열등감에서 벗어나고 싶다.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순 없다. 돌아보면 퇴근 후나 주말에도 연수를 듣고 수퍼비전에 집중한 결과 노력하는 상담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부모 상담을 잘하기 위해 아이를 키워볼 필요는 없다.


주름살이 없어도 부모가 아니어도 괜찮다.


상담자로서 내가 갈 방향은 나만의 방식으로 전문성을 쌓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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